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지옥으로 만든다. 스티븐은 40년 전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는 모두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스티븐은 40년이나 지난 일에 여전히 뭔가를 느꼈다. 그는 이 감정에 어떤 이름표를 붙여야 할지 몰랐다. 이름표가 없는 감정은 줄곧 마음을 돌며 울렁인다. 이해의 틀에 포획해 산산이 분해하려면 감정에 이름이 있어야 한다. 분노, 불안, 원망, 서운, 슬픔 같은 것들.
스티븐은 자신의 삶이 망가지기 시작할 때쯤 여행을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끊임없이 마음을 울렁이던 그 감정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40년 전 자신을 떠났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촉망받던 교수였던 시절 아버지와 어울렸던 동료.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가 종신 교수직 심사에서 떨어진 이후 그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데 일조했을 친구들. 다음으로 가족. 나의 아버지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아버지의 동생. 나의 작은 아버지.
스티븐은 여행을 통해 아버지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나간다. 조각을 전부 모으면 아버지가 완성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각은 전체를 맞추기엔 너무 작았고 그마저도 중복된 자리가 많았다. 문제는 같은 조각이어야 했던 것들, 분명히 같은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내놓는 것들이 실제로는 조금씩 다른 모양이었다는 것이다. 스티븐은 그중의 무엇이, 아버지라는 실체에 들어맞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를 직접 만나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 사설탐정을 고용하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스티븐은 그토록 오랜 시간 그렇게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스티븐은 자기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아버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아들아. 너의 인생은 모두 너의 선택 때문에 그 자리에 서게 된 거란다. 아니면 그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뭐라고 물어야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그 해묵은 감정을 흩어낼 수 있을지.
앤드류 포터는 망가진 삶 속에 가능성을 놓아두는 사람이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한 그 지점이 사실은 전혀 우울해할 것이 없는, 그저 변화의 과정임을 이야기해 주려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랬다면, 그때 저런 선택을 했다면,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었다면. 상상 속의 삶에서 우리는 늘 완벽한 모습으로 서 있다. 아무것도 잃지 않은, 온전한 모습으로. 두 손에 무궁한 행복을 안은채. 상상 속의 삶, 상상 속의 삶,
상상 속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