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의 쇠맛을 보고 싶어 골랐는데 몽글몽글 따뜻하다. <유원>은 2019년에 제1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수준이 참 높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섬세한 소설을 이해하고 즐겼다는 얘기니까.
유원이라는 여고생이 주인공이고 그녀의 학창 생활이 주무대다. 유원은 특별한 아이인데, 그 언니가 아주 특별했기 때문이다. 유원의 이름도 언니가 지었다. 원할 원, 외자. 빨리 나오기를 너무 원해서 그렇게 지었다. 두 사람은 터울이 컸다.
윗 층의 할아버지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그 재가 유원의 집에 떨어진 게 화근이었다. 원이 언니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고 베란다에 한 가득이었다. 무식한 담뱃재는 그 교양을 씹어 삼키며 맹렬하게 타올랐다. 집에는 언니와 둘 뿐. 여기는 아파트 11층. 언니는 똑똑한 사람. 자기는 살 수 없을 거라 판단. 원이는 아직 어리고 가벼우니까. 이불을 적신다. 그 안에 원이를 싼다. 꽁꽁. 창문을 열고 원이를 던진다. 원이는 살았다. 언니는 죽었다.
덤으로 얻은 삶. 원이는 좀처럼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 삶은 늙지도 않고 실수할 일도 없고 나쁜 짓을 저지를 수도 없는 영원히 빛나는 존재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영혼은 너무 눈부셔 원이의 삶을 가린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영광을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원이를 아는 모든 이들은 원이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원이가 아니라 그녀에게 삶을 주고 떠난 언니를 본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유아적 환상을 찰나로 스친 뒤 어른으로 멸렬하는 것이 인생인데, 그 짧은 순간조차 누리지 못한 고등학생의 영혼은 얼마나 약하고 불안한가.
소설은 안 그래도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무너지고 일어나고 무너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눈빛만 닿아도 부러질 것 같은 조각들을 하나하나 쌓아 지은 이야기. <유원>은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아슬아슬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