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무지무지 어려운 책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장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을 만큼 흥미롭다. 작가는 냉소적이고 지적으로 대단히 날카롭다. 이런 류의 인간은 비아냥과 조롱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고 개인적으로는 유머러스하다고 평가한다. 인식론, 인지 심리, 뇌과학, 신경망, 카오스 이론, 창발, 양자역학, 심지어 부의 불평등과 능력주의 신화까지 꺼내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게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나는 뇌과학, 카오스 이론, 양자역학 따위를 좋아한다. 이 학문들은 전반적으로 보통의 인간이 상식이라 믿어온 것에 철퇴를 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싸가지가 없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데 그 이유는 대개 누군가가 하는 말을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강하게 믿을수록 내 마음은 반대로 간다. 이 태도는 본능적이다. 타고났다는 말.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타고 왔을까? 나는 나와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한 명 안다. 그것은 바로 내 아버지다.
이 책을 고른 결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방목 자생을 강조하며 울타리 안에 가두기를 싫어했던 엄마 아빠의 양육 태도, 우연한 인스타그램 광고 노출과 서점 방문이 총체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다. 이 사이에 자유의지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납득하기 어렵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 떠올린 뒤 이렇게 써보라.
나는 자유의지로 성천 막국수를 좋아하기로 결정했다.
왜 성천 막국수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이유를 댈 수는 있을 것이다. 말하면서도 느끼겠지만 그건 사후에 구성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사랑은 이유를 동반하지 않는다. 첫 젓가락을 뜨는 순간 그냥 알 수 있다. 나는 이 음식을 사랑하는구나. 그럼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음식을 좋아하기로 결정한 나의 자유의지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럼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자. 만약 서점에서 이 책을 집었을 때, 내가 나의 지적 편향을 비판하며 이런 류의 책을 그만 보겠다고 결정했다면, 이것을 자유의지라 부를 수 있을까? 확실히 자유의지는 무언가를 하려고 결정할 때 보다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에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유전자의 힘을 인지하고 거부할 정도면 생물학 체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실체, 즉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인간을 자극을 투입하면 행동을 내놓는 생물학 기계로 정의한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저자의 주장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오직 나의 생각이니 주의하기 바란다. 자극을 처리하는 알고리즘은 앞서 얘기했든 유전자, 문화, 교육, 각종 경험과 우연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구성된다. 우리가 동일한 자극에도 다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첫째, 알고리즘이 확률을 기술하기 때문이고 둘째, 자극이 알고리즘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확률을 기술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나에게 A라는 자극을 투입하면 C라는 행동이 나올 확률이 60%, D는 25%, E는 15%라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행동이 일관성을 보이는 이유는 특정 자극에 대한 주된 행동이 높은 확률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 확률이 여러 개의 행동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변덕스럽다', '예측할 수 없다' 또는 '우유부단'하다고 부른다.
자극에 따른 행동의 피드백은 알고리즘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이 세상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존재인데 그 대상이 쉴 새 없이 변하므로 우리의 특정 행동이 항상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점심 메뉴로 평양냉면을 고를 확률이 99%인 내가 그걸 먹고 심하게 체했다면 당분간 이 확률은 0%에 가깝게 떨어질 것이다. 이는 결코 나의 의지가 아니다. 경험에 맞춰 행동 양식을 바꾸는 건 아주 유용한 생존기제기 때문에 진화가 이걸 놓쳤을 리가 없다.
다시 이 책을 읽지 않기로 결정한 가정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서점을 방문하기 전 나의 싸가지 때문에 누군가와 심한 갈등을 겪었고 이런 삶에 염증을 느꼈다면 책을 선택하는 알고리즘도 영향을 받는다. 이 책을 거부한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나의 자유의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선택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 곰곰이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생물학과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초월적 의지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변하기로 결심한 것보다 그냥 변한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모든 것들, 목숨을 바칠 정도로 좋아했던 니체와 다자이 오사무는 지금 내 마음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언제부터 그들을 좀 덜 좋아하기로 결정한 걸까? 혹시,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접해야겠다는 내 자유의지의 힘일까? 살다 보면 매일 똑같이 하던 행동의 결과가 전혀 다르게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은 여러 번을 읽어야 겨우 겨우 이해되고, 가까운 글자가 흐릿해지고, 분당 천타를 넘게 치던 손가락이 삼백타에 머문다. 우리의 신체는(특히 호르몬이) 변한다. 주변의 사람도, 환경도, 마음도.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시험을 제시한다. 이 시험에 통과하면 여러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나는 이 책을 읽고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명이다.
2.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젊음을 되찾기로 결심한 뒤 실제로 노화를 늦추는 결과를 얻고 있다. 이것은 브라이언 존슨의 자유의지인가?
3.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 중 하나는 변호사가 됐고 다른 한 명은 범죄자가 됐다. 유전자와 환경의 힘을 뛰어넘는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