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나가>는 장재현이 좋아할 것 같지만 그가 영화로 만들지는 않을 소설이다. 이야기가 별로라서가 아니라 '일제'라는 소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파묘>를 만들고도 반일 종족주의자 취급을 받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연달아 내놓으면 친일극우주의자들과의 전쟁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샤머니즘이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좀 달라 보인다. 물론 미디어의 영향이 상당하다는 건 인정한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음양사>라든가 클램프의 <X>, <도쿄 바빌론>, 주술을 모에화 한 <카드캡터 사쿠라>, 아쿠타미 게게의 <주술회전> 등등. 하지만 이런 창작물이 큰 인기를 얻는다는 건 그 땅을 지배하는 주술의 정서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여우가 뱀의 허리를 물었다'는 대사는 그래서 더 귀에 꽂힌다.
원혼은 어떤 한가? <링>, <주혼>, <착신아리>. 강렬한 이미지가 눈을 채운다. 일본의 원한은 그들이 가진 주술의 정서로 더 강화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원귀들은 축축한 가시를 몸 깊이 박아 넣은 것처럼 음침하고 서늘한 느낌이 있다. 한국의 처녀 귀신과는 대화할 의사가 있지만 사다코라면 글쎄, 도망가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일본 귀신이 군산 땅에 뿌리를 박았다. 이순신 때문에 발도 딛지 못했던 한을 풀듯 일제는 군산을 통해 전라도에서 생산한 미곡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군산은 착취의 본거지였고 군산에서 돈을 번 일본인들은 근사한 집을 짓고 살았다.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남겨진 이 건축물은 아직도 그 땅에 남아있다. 착취의 유산이 이제는 관광 자원이 됐다.
<여기서 나가>는 착취를 관광으로 바꾸는 조선인의 욕망을 씨앗 삼아 다시 이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일본 귀신과의 싸움을 그린다. 그들은 원혼이 추동하는 욕망을 쫓아 서로를 물어뜯다가 마침내 누가 원흉인지를 깨닫고는 퇴마를 거행한다. 너무 늦었나 싶지만, 모든 시작에 너무 늦은 건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