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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한깨짱  2026/03/01 09:44
  • 몰록
  •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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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1
  • : 6,650

듀나의 소설은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페트로그라드인민대학의 문학부에 있었던 유리 오를로프, 분열성광증을 앓던 이무혁, 머리도둑 알렉세이 부닌이 의천이라는 국제 도시에 공존하는 설정이 얼굴을 간질일 때가 있지만 이야기는 이 모든 게 농담이 아니라고 정색한다. 그 광기 어린 눈을 마주하고 나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몰록은 고대 가나안 지방(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곳)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숭배된 신이다. 그 지역 신들이 대부분 그렇듯 짐승의 머리를 하고 있고 기독교에 의해 악마화되었다. 몰록은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제물로 원했다. 사람들은 뜨겁게 달군 몰록 청동상에 비둘기와 소와 기타 등등 동물을 넣고 마지막에 살아있는 아이를 놓아 한꺼번에 태웠다. 혹자는 몰록을 이 제사의 명칭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몰록이 당시 그 지역에 존재했던 수많은 부족신들의 통칭이라고도 한다.


이 소설과 몰록을 연결하는 지점은 몰록이 갖는 다양한 기원만큼이나 모호하다. <몰록>은 척추동물의 뇌에 기생하는 미생물이 주인공이다. 화성에서 온 이 미생물은 척추동물의 뇌에 침투해 그들의 뇌를 한데 묶는 역할을 한다. 하이브를 정점으로 하는 저그처럼 감염된 생명체들의 의식은 거대정신을 낳고 이 거대정신은 다른 정신들이 추가될 때마다 더 큰 통합으로 나아가거나 분열한다. 어설픈 통합은 붕괴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분열은 다른 정신을 죽이는 전쟁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인간을 제물로 삼는다는 점을 몰록의 인신공양과 연결할 수도 있다. 고대에는 별개의 신으로 존재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 단일 악마로 정의됐다는 점에선 각각의 인간이 거대정신으로 통합되는 과정의 비유로 볼 수도 있다. 의천은 아직 국가라는 개념이 흐릿해 온갖 경계가 규칙 없이 뒤섞여 있던 고대 도시를 연상케 한다. 거대정신과 소통할 수 있지만 결코 감염되지 않고 심지어 그걸 지배할 수도 있는 초능력자 미향은 인도네시아에 피의 뿌리를 대고 있다. 머리도둑은 러시아인이고 이야기의 물꼬를 터주는 아빌라는 필리핀인이다.


흐릿한 건 국적뿐만이 아니다. 성별, 나이, 직업. 너와 나를 구분 짓는 모든 것. 화성의 미생물은 이 모든 것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 하나로 만든다. 애초에 단일 세포에 불과했던 지구의 생물들은 수십억 년의 시간을 보내며 각자 다른 무엇으로 진화했다. 개성은 종의 구분을 허용했지만 종간 전쟁의 길을 열어줬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안노 히데야키는 그 주제를 빌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다. 에바의 AT필드는 타자를 거부하는 인간의 심리적 장벽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도(angel)는 네르프의 터미널 도그마에 접근해 써드 임팩트를 일으키려 한다. 어떤 이의 입장에서 그건 인간의 멸종이지만 또 다른 이의 눈에는 모든 인간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동일자로 회귀하는 구원으로 보이기도 한다. <몰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통합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모든 종으로 확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화성의 미생물은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던 신의 약속인지도 모른다. 하나였던, 까마득한 옛날을 잊은 종의 폭주를 단죄할 천벌, 혹은 구분에서 비롯된 고통을 치유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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