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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울어진 평등
  • 토마 피케티.마이클 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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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02
  • : 12,296

오늘날 불평등은 능력주의 신화에서 시작하고, 능력주의 신화는 교육에서 시작하니 사실상 불평등은 교육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학이 서열화하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다. 능력을 평가하는 일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평가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평가가 과학이라면 회사에 멍청이들이 그렇게 많이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공부머리와 일머리를 구분해 이 빌런의 존재를 설명하려 들지만 나에게 이 말은 평가에 관한 우리 자신의 무능력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그냥 눈이 먼 것이다. 능력주의 신화에, 그걸 지탱하는 경력과 학력의 이름값에.


마이클 샌델은 이 문제를 대학 입학 추첨제로 풀려하고 토마 피케티는 그 효과에 부정적이다. 피케티는 좀 더 급진, 강압적이다. 아예 입학 인원의 3분의 2 정도를 저소득층에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만 입학 점수를 낮추든, 가산점을 주든, 방법은 대학의 자유로 하고 국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강력히 규제한다.


둘 다 일리가 있지만 내게는 샌델의 선택이 훨씬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피케티의 방식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낙인을 찍게 된다. 대학 졸업장은 완전히 둘로 나뉠 것이다. 입사 면접관은 출신 대학과 거주지 주소를 조합해 이 사람이 어떻게 그 대학을 나왔는지 추측하려 들 것이다. 지금도 일부 명문대에서는 출신 고등학교의 잠바를 입고 다니며 스스로를 서열화한다고 들었다.


샌델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이유는 그가 '대입과 관련된 능력주의의 오만을 줄이고, 젊은 이들이 청소년기 내내 받게 되는 극심한 압력과 불안을 줄이는'(p. 82)데 목표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학 자격을 수능 성적 상위 15% 이내로 넉넉하게 잡은 뒤 그중에서 추첨으로 최종 인원을 선발한다. "저 서울대 붙었어요!"라는 말에 "축하해요, 운이 참 좋았네요."라고 말하는 사회라면,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변화의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소득의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토론한다. 여기서도 두 가지 접근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저소득층의 소득 자체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의료, 주거 같은 기본재를 탈상품화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첫 번째 방법에는 눈길도 가지 않는다. 서울의 역세권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를 영유에 보내도 월 300으로 살 수 있다면 돈은 요즘과 같은 권력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병폐는 돈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은 데서 기인한다. 행복과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에 '충분히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 돌아보라'라고 하는 건 농담이 아니다. 그러니 그렇게 기를 쓰고 돈을 벌려는 것이고 그 첫 번째 관문인 명문대 입학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기본재를 탈상품화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거둬야 한다. 이건 그냥 다 망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망한 이유를 이민자에게 돌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내 세금으로 공짜 복지를 누리게 해 줬더니 이제는 일자리마저 뺏어간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유럽조차 점점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게 진짜 원인이 아닐까? 천문학적 이익을 내는 기업들은 전부 조세 회피처로 도망가고 누진세와 상속, 법인, 자본소득세는 낮아지는데 근로소득세는 올라갔다면?


내용을 떠나 샌델과 피케티의 성격 차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피케티는 샌델을 중도 우파 자유주의자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과격하다. 샌델은 열어 놓고 얘기하려 하고 피케티는 완전한 결론을 원한다. 샌델은 자신의 주장에 이런 목표가 있고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기꺼이 인정하고, 피케티는 그 생각은 이 문제 때문에 안된다고 마침표를 찍는다. 차이는 나이와 문화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피케티는 왕의 목을 자른 수탉의 나라에 살지 않는가!


몇몇 대목에서는 하도 샌델을 몰아붙여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샌델은 어떻게 해서든 이 토론을 봉합하고 이끌어가려 한다. 18살 차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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