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왜 당쟁이 있었는지 이해하려면 주자학을 알아야 한다. 주자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지방 관리를 하며 약간의 성과를 냈던 것 같다. 한족 역사상 가장 허약했던 나라가 바로 송나라다.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적도 있고 결국에는 무력에 굴복해 중국의 남과 북을 나눠 갖자는 오랑캐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했다. 협상이 아니라, 중화 역사상 처음으로 오랑캐의 봉국이 된 것이다. 송은 금에게 매년 은과 비단, 수만의 공녀를 바쳐야 했다.
아, 중화인이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인가. 주자는 이러한 정치 상황과 지방관리로서의 작은 성공 경험을 살려 성리학을 세운다. 이 학문의 핵심은 왕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니 중앙의 권력을 신하와 지방에 더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는 우매한 한 명의 왕이 아닌 똑똑한 다수의 신하들이 다스려야 한다. 성리학이 괜히 고려말에 싹튼 게 아니다. 고려말도 송나라와 다를 게 없었다. 오랑캐의 봉국이 됐고, 왕들은 무능했다.
저자는 조선초의 개국 공신들을 '성리학자'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강한 회의를 갖는다. 그러나 정도전을 비롯해 새 나라를 일으키려 시도한 혁명가들은 적어도 성리학의 핵심만큼은 가슴 깊이 새겼던 게 분명하다. 왕은 뒷 방에 처박아 놓고 똑똑한 자기들이 정치를 펴겠다는 것. 그런 면에서 이성계는 궁합이 잘 맞는 군주였다. 말 타고 활 쏘고 사냥하는 걸 즐겼을지언정 정치에는 큰 뜻이 없었던 사람이니까. 그들이 계산하지 못했던 건 이방원의 야심이었다. 형제를 모조리 죽이고 부왕까지 묶어 왕위를 얻은 태종의 눈에 주자 따위가 들 자리는 없었다. 모든 건 태종의 발아래에 있어야 했다.
태종의 아들은 그 유명한 세종이었고 그다음은 워낙에 단명을 했고 그다음은 이방원보다 야심이 큰 수양대군이었던지라 신하들이 까불 여지가 없었다. 성리학은 예성연중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꽃을 피운다. 중종은 사대부들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하고 추대한 왕이었으니, 실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중종은 반정의 일등공신들 흔히 훈구파로 불리는 일당을 견제하고자 혁명가 조광조를 끌어들였으나 당시의 혁명이란 곧 성리를 근간으로 할 수밖에 없었으니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조광조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중종의 자리는 없었다. 그마저 역사는 훈구의 승리를 끝났고 성리학은 다시 인명선이 될 때까지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선조 시대에 비로소 붕당이 싹틀 수 있었던 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선조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적자가 아니었다는 것. 적자란 첫째 아내에게서 난 아들이란 뜻인데 선조는 후궁의 자식이었으니 사대부의 관점에서 보면 서자였던 셈이다. 성리학은 이 정통의 균열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둘째, 뛰어난 이론가들이 있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결이 좀 달랐던 두 사람은 비로소 동서로 나뉘어 붕당을 짓는다. 이 둘이 붕당을 의도한 적도 없고, 실제로 주역도 아니었지만 이 둘을 바탕에 깐 한 사대부들은 점점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각각의 대장이(이황과 이이가 아닌 그들을 추앙한 무리) 서울의 동쪽과 서쪽에 살았느냐로 나뉜 동서 붕당은 어릴 때부터 각 당의 유력 인물들에게 배운 문하생들이 생겨나고, 그 문하생들이 다시 조정의 신하로 유입되는 순환 구조를 갖추며 조선을 당쟁의 구렁텅이로 처넣는다.
정쟁이란 게, 정말 부질없고 무능해 보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뉴스로 보는 21세기의 정치 현실을 꼭 닮아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인간은 역사로 배우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단 말인가! 자꾸만 몰려드는 절망에서 벗어나 생각을 좀 달리해보자. 이것은 오히려 인간, 그리고 역사의 본질이 아닐까? 다툼 없이 진보가 가능한가? 당쟁은 확실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막기에는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살아남았고 계속해서 싸웠다. 망국의 길로 접어든 건 세도 정치 때문이었다. 싸움을 멈추고 한 놈이 권력을 독식한 것이다. 정쟁보다 나쁜 건, 독재다.
당신이 무언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데, 모든 게 당신의 뜻대로 되고 당신의 말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을 사망의 전조로 읽어야 한다. 반대 중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도 있어 정말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모기가 싫다고 집을 태울 수는 없고, 소음이 싫다고 자동차를 부술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