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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룡 양산숙
  • 양성현
  • 22,500원 (10%1,250)
  • 2025-08-09
  • : 20

선조는 놀라울 정도로 어리석은 왕이었다. '그' 이순신을 두 번이나 파직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조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이순신의 모든 업적이 날조라고 가정해야 한다. 완전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건 이 책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


<유성룡 양산숙>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순도 높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서애 유성룡, 몰아치는 당쟁과 왜란의 와중에도 조정의 요직을 두루 겸직한 남자. 외교, 국방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어리석은 왕 선조 밑에서 고군분투한 신하. 이순신을 천거한 안목의 사나이. 그는 정말 거짓말로 무장한 간신이었을까?


당시 조선은 이른바 붕당 정치의 씨앗이 맹렬히 뿌리를 내리던 혼돈의 시대였다. 이기가 하나냐 둘이냐를 놓고 성리학이 갈렸고 이 중 어디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임진왜란 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두 신하가 완전히 다른 의견을 내놓아 양병에 실패, 결국 그 난리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형적인 당쟁의 결과물이었다. 한쪽은 다른 쪽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도 무조건 반대를 해야 한다. 오히려 일리가 있을수록 반대는 더 심해진다. 그 일리가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열쇠기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확실히 동인이 우세했다. 그 수장은 유성룡과 퇴계 이황으로 볼 수 있는데, 유성룡이 현실 정치에 발을 디딘 행동파 간신이었다면 이황은 그들에게 학문적 토대를 제공하는 철학적 간신이었다. 유성룡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퇴계 이황이 율곡 이이(서인) 보다 우세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임금의 안색을 더 잘 살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학문적으로는 동아시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인물이 전무하고 오랫동안 관료로 일하며 실무에 숱한 손때까지 묻힌 당대의 먼치킨 율곡마저 한 손으로 지그시 눌러 제압할만한 힘이었다.


이 책은 유성룡을 완전히 부정하므로 정당한 평가를 위해 확실한 사실만 나열해 보자. 우선 유성룡이 왜란을 맞아 자기 식구를 먼저 피난 보낸 건 사실이다. 유성룡은 자신의 친형을 파직시켜 어머니를 돌볼 수 있게 해 달라며 선조에게 울며 애원했다. 그리고 난 중에 그를 다시 피난지의 수령으로 임명한 뒤 면세권까지 부여했다. 그는 김시민의 진주대첩으로 큰 상처를 입은 일본군이 복수를 위해 총 집결한 2차 진주성 싸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체찰사로 왕을 대신한 군통수권자였음에도 말이다. 이것을 더 큰 승리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남은 조선의 전부였고 진주는 그 호남의 문이었다. 진주를 내준다는 건 살 대신 뼈를 주는 것이었다. 당시 진주성을 지키고 있던 자들이 모두 서인계 인물이었다는 것도 정황의 힘을 더한다. 원군을 보내기는커녕 군대를 더 뒤로 물려 안전을 도모한 권율과 홍의장군 곽재우도 모두 동인이었다.


유성룡은 다른 의미에서 확실히 전략적이었다. 2차 진주성 싸움은 후퇴하던 일본군의 분풀이였다. 유성룡은 이 싸움이 끝에 다다랐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명군은 수륙 양면으로 일본을 압박했고 그들이 동래(부산)로 후퇴해 장기전을 각오한다면 기꺼이 그 땅을 내어줄 준비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유성룡에게 중요한 건 결국 전후의 정국이다. 정쟁 없이도 서인계 인사를 한 번에 몰아 죽일 수 있다면,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할 리 있겠는가?


<유성룡 양산숙>은 개인 출판으로 보인다. 저자는 양성현이란 분인데, 공교롭게도 이 책에 영웅으로 등장하는 양산숙과 성이 같다. 어쩌면 저자 본인이 양산숙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 오탈자도 많고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친 내용이기에 모든 걸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저자가 참고한 책들이 대부분 조선왕조실록이고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왕조의 기록 또한 결국 사관의 사관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한 것이지만, 시비를 가르는데 이만한 구심점도 없는 게 사실이다.


논란을 떠나 다시 한번 기록의 힘을 느껴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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