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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깨치고리뷰쓰기
  • 7분: 죽음의 시간
  • 최들판
  • 16,200원 (10%900)
  • 2024-12-06
  • : 791

녹둥항에 변사체가 떠올랐다. 사망자의 신원은 어렵지 않게 밝혀졌다. 그 동네 사람이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얼굴. 한칠규였다.


한칠규는 전문 시비꾼이었다. 젊을 때는 권투를 했는데, 아시아 태평양 챔피언을 눈앞에 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은퇴했다. 평생 한 곳만 바라보며 살다 좌절한 사람들이 그렇듯 한칠규도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세계를 노리던 엘리트 복서는 전문 시비꾼으로 추락했다. 달리는 차로 뛰어드는 자해, 외지인을 골라 일부러 부딪힌 뒤 싸움을 벌여 합의금을 받아내는 공갈. 한칠규가 동네의 골칫거리가 된 이유는 외지인에게만 행하던 자해와 공갈이 녹둥항 주민들에 대한 협박으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한칠규는 심각한 술꾼이었다. 가게에서 질펀하게 술을 마신 뒤 돈을 내지 않기 위해 행패를 부리거나 앞으로도 계속 영업을 방해하겠다며 주인들을 협박했다.


놀랍게도 한칠규에는 두 자녀가 있었다. 한혜성과 한혜리. 한칠규는 종종 자녀들의 학교를 찾아갔다. 사건은 한혜리를 찾아갔을 때 터졌다. 종잡을 수 없는 한칠규는 그날따라 가족 여행이 하고 싶어 졌고, 수업 중인 한혜리를 찾아갔는데, 술에 취해 교무실로 들어가 딸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니, 당연히 교사의 제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한칠규의 대답은? 강력한 라이트 스트레이트. 환호중의 기간제 교사 민지욱은 그 펀치를 자신의 연약한 코로 받아냈다. 허공을 5미터는 날아올랐는데, 사방으로 코피가 쏟아져 주변의 교사들이 도망을 칠 정도였다.


한칠규를 이렇게 만든 건 윤 회장의 공이 컸다. 윤 회장은 누구인가? 소싯적엔 꽤 규모가 있는 범단에서 깡패짓을 했던 인물이다. 일이 잘못되어 실형을 살고 나온 뒤에는 합법적인 사업을 벌여 겨우 겨우 녹둥항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칠규를 부른 것도, 그의 뒤를 봐주며 전문 시비꾼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운 것도, 바로 윤 회장이었다.


사업은 말이 좋아 합법이지 양아치 근성을 버릴 수는 없었다. 전부 차명이었고, 돈세탁의 정확이 드러났다. 윤 회장은 최근에 서울의 큰 손을 만나 사업을 스케일 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한칠규가 전화를 걸어와 퇴직금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린 것이다. 퇴직금? 윤 회장이 필요할 때마다 한칠규를 이용해 먹은 건 사실이었다. 그 이유로 월급을 주기까지 했으니까. 고향 후배라며 살뜰히 챙기는 척했지만 이 바닥 형 동생이 다 그렇듯 이해가 얽힌 얄팍한 관계였다. 한칠규는 윤 회장이 서울의 큰 손을 모셔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장소에 들이닥쳐 윤 회장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비즈니스를 부러뜨렸다.


쉽게 말해 이 녹둥항에는 한칠규를 죽이고 싶은 인간이 가득했다는 말이다. 소설은 서로 무관계한 이야기를 별도로 늘어놓으며 조금씩 전진한다. 실로 하나씩 구슬을 꿰는 것이다. 마지막 구슬이 과연 무엇일지, 그 궁금함에 페이지를 넘기는 소설. <7분 죽음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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