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배우의 말처럼 넷플릭스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재미있다. 그간 한국 문학계에서 잘 보이지 않던 궤가 그려진다. 잡다한 일상의 비루함을 연로로 삼아 이 시대의 문학을 이끌어가던 부류가, 이제는 그게 보편적 현실이 되어버린 시대를 만나, 모두의 마음을 관통하는 감성을 얻은 것 같다.
물론 자기 세계를 시대와 연결하는 재능을 모두가 가진 건 아니다. 아마 비범과 평범의 차이는 그 한 끗일 것이다. 그 작은 다리를 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걸로 세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허물을 벗는다. 그러니 얼핏 과소평가로 들릴 수 있는 이 문장들에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딱 하나만 고르라면 못할 짓이고 두 개를 고르라면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와 <혼모노>다. 선택이 더 주어진다면 <스무스>까지. 하지만 차례에 멈춰 하나하나 소설의 이름을 짚어나가다 보면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도 눈에 밟히고 <메탈>도 발목을 잡는다. 그만큼 괜찮은 소설집이다.
'덕질'이라는 소재가 특별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성해나의 <길티 클럽>은 좀 더 날카롭다. 덕질이 만든 커뮤니티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를 혼자서만 좋아하는 마음. 이런 마음은 필시 설명을 부른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하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후의 세계는 죽림칠현의 뺨따귀를 날릴 정도로 현학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공고해진 세계는 역설적으로 더 큰 담을 쌓아 '일반인'의 출입을 허락지 않는다. 덕후들이 배교하는 순간은 우리 '작은 것들의 신'이 대중의 시야에 들어올 때다. 뭣도 모르는 것들이 감히 나의 신을 만지고 환호한다. 이것은 신성모독이다. 이를 계기로 덕의 세계는 둘로 나뉜다. 입덕이 뜨기 전이냐 후냐. 나는 진짜 너는 가짜. 진또배기를 가르는 기준은 하나 더 있다. 나의 신이 윤리와 도덕의 늪에 빠져 추락했을 때조차 그것을 신으로 섬길 수 있느냐!
<혼모노>는 이미 제목부터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지 묻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소재는 무속이다. 어려운 무속은 아니고 점집의 이야기다. 자기가 모시던 신이 앞집으로 이사 온 새파랗게 젊은 여자의 몸으로 옮겨가면서 발생하는 몰락과 질투의 이야기. 지질하고 구차하게 흐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대마신전쟁 급의 에픽으로 만든 건 전적으로 성해나의 재능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결투씬'은 염력이 난무하고 부적이 날아다니는 판타지가 아님에도 숨죽여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승부가 갈리는 순간엔,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다.
나는 박정민 배우가 완전 오버를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