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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크와 팩트
  •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 23,220원 (10%1,290)
  • 2024-07-26
  • : 17,468

재미있는 책이다. 인간의 멍청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 바닥을 좀 기어 다녀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사례들이 나오기는 한다. 그게 식상할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딱 200페이지만 줄여줬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핵심은 과학적 사고와 건강한 회의주의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점이다. 과학적 사고는 곧 비판이고, 건강한 회의는 말대꾸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모두가 다 좋다는 영화에 고고히 1점을 날리는 평론가를 떠올려보자. 정말 꼴 보기 싫지 않은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쓴소리를 싫어한다.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의 문제라서 바뀌기가 더 어렵다. 우리 뇌는 자기 신념과 맞지 않는 정보를 취득하면 이 부조화를 봉합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괴롭고, 괴롭기 때문에 자기 신념을 더 강화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지각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정치적 극단주의자, 경제 사기에 지속적으로 말려드는 사람들과 얘기해 봤다면 무슨 느낌인지 알 것이다. 논리는 명제 자체가 허튼소리인 거짓의 세계에선 종이호랑이처럼 나약하다.


왜 진화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과학적 사고는 근대 교육의 산물이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능력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생존에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자기에게 달콤한 말만 하는 아첨꾼만 주변에 뒀다 모가지가 날아간 인간의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데도 진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로 놀랍다.


생식의 관점에서 인간이 어떤 짝을 선택하느냐를 돌아보면 답이 나올 것도 같다. 나한테 쓴소리만 하는 사람과 연인이 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틀려도 공감하고, 나빠도 지지하는 게 관계 유지의 황금률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나. 매사에 똑 부러지고, 관계를 칼 같이 자르고, 뭐 하나 시원하게 응원하지 않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흠, 지금 내 집 거울에 그런 남자가 하나 서 있다.


현대 사회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는 '매스 미디어'는 '매스'라는 접두어를 달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덕분이다. 누르기가 곧 돈인 세상에서 절대 누를 법하지 않은, 내 성향과 정반대의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화약보다 설탕이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분노는 여전히 성황이다. 아니, 성황이 아니라 히스토리컬 하이, 치솟은 불기둥이 오존을 뚫고 하늘을 날아 우주를 불태우고 있다.


우리가 유튜브를 그만 보라고, 인터넷 뉴스를 없애라고, SNS를 끊으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이 허락하는 내에서 떠올려보면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회의주의자로 살아왔다. 지금의 나는 거의 비관론자에 가깝다. 물은 반밖에 남지 않았고, 그 누구도 채우지 않을 것이며, 머지않아 다 말라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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