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가 일본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다, 그나마 근래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외에 내가 알고 있는 일본 작가들이란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나쓰메 소세키 정도가 다일 정도다. 때문에 소설을 읽기 전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고, 구매도 거의
충동적으로 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구입한 수많은 책들 중에 이 책을 골라 잡은 것은 가독성 좋고 재미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예상했던 것만큼 이 책은 가독성이 좋았지만, 본래 일본어판 '세설'은
가독성이 그리 좋은 책은 아닌 것 같았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은 문장이 끊이지 않고 쉼표로 계
속해서 이어져 있는 데다 시점이 뒤죽박죽이라 번역 후에 내용을 알 수 없는 고약한(?) 상태가 되고 마는 까닭에 국내에
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사실상 번역이 불가능한 책으로 치부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번역가의 노고가 있어 나는 편히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의 번역에 후한 점수 를 주고 싶은 부분은 세세한 주석이었다. 1940년대의 소설을, 그것
도 일본의, 거기다 오사카라는 지방색이 도드라지는 소설을 2000년대의 한국인이 이해의 불편 없이 읽기란 그리 쉬운 일
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궁금할 틈도 없이 궁금증이 해결 될 정도로 주석이 잘 달려 있어 번역의 세심
함이 돋보였다.
'세설'은 그야말로 일본, 그저 일본풍이라거나 일본적이라고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 그 자체, 특히 오사카라는 지방을
그린 소설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작품 속에서 어찌보면 지리멸렬해 보일 정도의 일상까지 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때
문에 소설을 읽는 와중에 도대체 이 이야기는 끝이 날까 하는 의문이 든 적도 있었지만, 신기한 것은 그 밑도 끝도 없는 일
상이 어느 순간 몹시도 궁금해 진다는 점이다.
'세설'은 몰락한 마쓰오카 가문의 네 자매, 특히 셋째 딸인 유키코의 혼담이 중심이 된 소설이다. 유키코는 지금으로서도 올
드미스에 속하는 서른 넷이 될때까지 시집을 가지 못한 처자인데, 작품의 말미에 가서까지도 여러 차례 선을 보고 각종 이
유로 그 혼담은 성사되지 않는다. (그녀의 혼담 성사 여부는 직접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결혼 못하는 여자 이야기는 현대
에도 흔하디 흔한 소재이므로 특별할 것이 없을 것이다. '세설'은 이렇듯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 마저도 일상이라는 테두리
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은 생소한 일본의 전통 문화와 세심한 여성
심리 묘사에 있다.
앞서 밝힌 바 있듯이 이 소설은 1940년대 오사카를 살아가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것도 계절별로 꽃놀이, 반
딧불 잡이, 송별회 등을 하면서 시간은 순차적으로 흘러간다. 마땅히 돌아와야 할 계절은 돌아오고, 자매들은 그 돌아온 계
절에 맞는 행사를 진행한다. 그 중간 중간 선을 보고, 간혹 막내딸인 다에코가 사고를 쳐주는(?) 것이 사건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상적 행사와, 행동들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것의 생소함에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불필요하게 느껴
질 만큼의 일상적 행동조차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일상적인 행동이었을 것들이 현대 이국의 감상자
들에게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소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전통 문화를 알게 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
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료로써의 문학 작품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 모델이 있는 까닭도 있겠지만(소설 속 네 자매 이야기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 번째 부인과 그녀의 자매들을 모델
로 했다고 한다.) 소설 속의 네 자매는 각기 다른 인격을 가진 개인, 특히 '여성'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느껴진다. 그것은 오
랜 관찰에 의한 결과물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그가 남성이라는 점에 있다. 대개의 경우 이
성의 작가가 이성의 화자나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을 읽을 때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경우가 많다. 특히 심리묘사에 있
어 그런 점은 더욱 두드러지고, 대개 피상적인 묘사에 그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향은 '다르다'는 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는 여성의 심리를 세
밀하게, 마치 들여다 보듯 그려내는 작가의 힘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여성 편력( 다니자키 준이
치로는 여성을 경외시 하다시피 사랑했다고 한다.) 이 그 진가(?)를 발휘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렇듯 이 소설은 사실상, 단순 서사에 있어 즐거움을 만끽하기는 힘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사건 없
이 잔잔한 일상이 쌓여가고,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어느덧 숨어있던 문제가 불쑥 튀어 나오는 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렇게 불쑥 튀어나온 사건도 큰 갈등없이 해결되어 버리기 때문에 큰 위기나 절정이랄게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지극히 시대
적인,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70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숙성한 일상의 재미가 있어서이고, 잔잔한
것 같은 여성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복잡다단한 심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제법 쏠쏠한 재미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일상이란 것도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진부함을 벗어던지고 제법 쏠쏠한 재미를 선사할지도 모를 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