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우체통 같은 세상에 희망의 편지를 띄우다
gelsomina 2009/11/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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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장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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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09-09-28
: 1,595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저 쓸쓸한 외톨이가 떠올랐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 ‘아무도’에 나도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는 내가 요즘 우표 값이 얼마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손 편지를 써본지도, 받아본지도 오래되었다는 사실도.
고지서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텅 빈 우체통처럼 ‘아무’란 대명사와 ‘도’라는 보조사의 조합이 끌어낸 울림이 공허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속에 포함되는 수많은 타인들의 얼굴이 슬프게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은 내게 고독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안겨다 주었다. 편지를 보내지도 받지도 않는, 그렇게 고독이란 병을 앓고 있는 그들이 나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다른 이들처럼 매일 문자를 주고받고, 이메일을 쓰고, 통화를 하고, 메신저를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간혹 시간이 나면 대면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 마음을 전한 것이기 보다는 용건을 전하거나, 주변에서 일어난 잡다한 사건을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무거운 진심을 담아내기에는 그런 수단들이 너무 일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점점 어색해졌기 때문이다.
나도 한 때는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멀리 전학 간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친구의 답장을 목이 빠져라 기다려 보기도 했었다. 편지를 주고받는 긴 시간동안만큼이나 응축된 마음을 손 글씨로 또박또박 써내려갔고, 차곡차곡 쌓인 그 마음들이 타인에 불과했던 한 사람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연결해 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빠르고, 편해진 대신 관계를 맺는 사람도 맺을 수 있는 사람도 덩달아 많아졌다. 생각의 속도보다 말의 속도가 더 빨라졌고 가슴이라는 웅덩이에 진심이 고일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해졌다. 그렇게 나는 말을 더듬듯이 내 진심을 더듬는 사람이 되었고, 어느 순간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다. 소설 속 화자처럼 말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화자는 말더듬이다. 모든 절망이 그 말더듬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할정도로 그로인해 친구도 많지 않았고, 잘난 형과 여동생 사이에서는 불쌍한 아들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점점 ‘척’하는 것이 많아졌다. 알고도 모른 척, 아니까 모르는 척. 그렇게 타인에게 진심을 드러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눈 먼 개 ‘와조’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에 만난 수많은 타인들에게 이름을 묻는 대신 숫자를 부여한 그는, 일면식도 없던 그들에게 주소를 묻는다. 그리고는 헤어질 때쯤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편지해도 될까요?”
그 질문이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것은 고독한 한 인간이 고독한 또 다른 인간의 가슴에 두드리는 노크처럼 여겨졌다.
‘똑똑똑’ 제가 당신에게 나의 진심을 전해도 되겠습니까?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의 나열처럼 수많은 타인들은 ‘나’라는 시작점으로부터 연쇄적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비록 고독한 개인일지라도 사실은 혼자이지도, 혼자일 수도 없다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화자는 그 깨달음을 고독과 홀로 싸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갇힌 세상의 틀의 깨고 나오는 여행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보여준다.
여기서 조금 아쉬운 점은 화자가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다. 작품 말미에 가서 코가 시큰해지는 반전이 찾아오지만, 나는 굳이 화자의 고독을 그런 극단적 상황에서 기인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공포는 고요 속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인간의 고독은 개인 그 자체의 존재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내 개인의 견해이고, 작가의 선택이 옳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고독한 한 개인에게 더 과중한 고독을 안겨준 대신 작품 말미에는 화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따스한 희망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우체국을 찾아 나섰다. 근방에 있던 두 개의 우체국이 골목 한 귀퉁이의 우편 취급소로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규격봉투에 사용할 수 있는 250원의 우표를 10장 샀다. 그 10장의 우표는 지금 나의 수첩 속에서 열 번의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내 가슴의 웅덩이에 고일 진심을 천천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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