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800페이지에 달하는 레 미제라블의 완역본이다.
경향신문 1면에 책 소개가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호기심과 책 수집욕에서 구매하였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스탠드불을 밝히며
조금조금씩 읽어나가기를 한 달 정도, 마침내 완독하였다.
사실 내가 이제까지 짧은 소설로만 알고 있었던 '레 미제라블', 혹은 '장 발장'은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완역본의 극히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었다.
레 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책은
프랑스 혁명에 가려져 현대에는 생소할 지 모르는
1832년 프랑스 6월 봉기를 소재로 하여 '장 발장'을 주인공으로
당시의 역사, 전쟁, 종교, 정치, 사회, 문화, 정부 등을 고찰한 장대한 역사 혹은 휴머니즘소설이다.
혁명의 한복판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빅토르 위고는 자못 엄숙하게, 그리고 때로는 부드럽게
자의 혹은 타의로서 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을 묘사하며
독자를 1832년 핏빛 봉기의 그 날로 이끌어간다.
이 방대한 소설 한 권에 들어있는 내용과 그 메시지는 사실,
콕 찝어 무엇이라고 단정짓기는 필자로서는 실로 무리이다.
다만 지금의 짤막한 책 소개를 빌어 인상깊었던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사실 이 책 전반적으로 필자가 받았던 메시지는 '시대정신(진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과거 프랑스 대혁명의 기억,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 워털루 전투 패전에 따른 보나파르트의 실각,
점차 과거의 지배적 위치에서 내려가는 종교, 프랑스 파리 특유의 유쾌함과 저항의 정서 등을 꿰뚫는 것은
일종의 진보라는 시대적 정신이었음을 위고는 믿었던 것 같다.
특정 사건, 인물들과 관련된 미스테리한 우연의 연속은 일종의 거스를 수 없는 힘에서 비롯되었음을
작가는 담담한 어조로 하나 하나 짚어나간다.
당장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이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그 무엇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
필자는 한편으로는 당시의 일종의 낙관적인 전망이 무척 부럽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혹자는 세기말부터 오늘날까지를 '생성의 시대'라 칭하였고 지배적인 사상이나 관념이 존재하지 않아
현대인은 끊임없이 방황하며 흔들릴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이는 지극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시대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늘 어떤 글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 장군의 묘소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일종의 사설로 보이는 짤막한 글에서 필자는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으로 부정부패를 제시하였고,
정의가 실종된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든지 다시 이러한 봉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나는 혁명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조심스럽게나마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실종된 '정의'를 되찾고자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 책꽂이에 소장하며 읽어볼 책이 있다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레미제라블은 시대를 통찰한 대 소설이며 어쩌면 우리의 현실이자 미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