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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님의 서재
  • 팡세
  • B. 파스칼
  • 11,700원 (10%650)
  • 2003-08-25
  • : 8,357
매일 TEPS 공부에 파묻혀 있다가도잠시 쉬는 시간마다 한 쪽 한 쪽 음미하며 읽고 있는 책이다.그래서인지 진도는 많이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단히 서평을 작성하는 것은지금의 생각을 잠시라도 붙들어두기 위함이다.
팡세 제5편 현상의 이유, 192-(298)의 정의, 힘.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정의에 복종하는 것은 옳고 더 강한 것에 복종하는 것은 필연이다.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대에 부딪힌다.왜냐하면 사악한 자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힘없는 정의는 규탄받는다.그러므로 정의와 힘이 함께 있어야 한다.그렇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로워야 한다.
정의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힘은 매우 용이하게 식별되고 논란의 여지도 없다.그래서 사람들은 정의에 힘을 부여할 수가 없었다.힘이 정의에 반대하고 그것을 불의라고 말하며 또 정의는 바로 자기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이렇듯, 인간은 정의를 강하게 할 수 없었으므로 강한 것을 정의로 만들었다(p. 105)."
오늘은 국무총리 후보인 이완구씨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날이다.
이완구 국회의원은 총리 후보로서 각종 의혹이 불거지며 뭇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간발의 차이로 현 정부 제2대 국무총리에 취임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여론은 분분하다.필자의 주관에서 이를 대략 정리해보자면
한쪽에서는 그는 "경제살리기" 기류에서 당정청을 이어줄만한 관록있는 인물이다.
다른 한쪽에서는능력도 중요하지만 관리의 "도덕성"에서 이미 낙마했어야 할 인물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보기에 현 상황을 위 파스칼의 견해에 적용해본다면힘은 경제력과 능력, 경력, 병역기피, 불법투기 등의 외적 징표이고정의는 도덕성 혹은 윤리의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후자는 김영란법을 떠올려보면 명확해진다.후자는 대중적 상식선에서 흔히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과정은 절차상의 하자는 없으며국회의원의 표결을 거쳤으므로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적 요건은 충족하였다고 본다.
그렇다면 결과로 따졌을 때,전자가 득세한 오늘의 현실은 기존의 힘없는 정의보다힘을 곧 정의라고 칭하고 이를 공고화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파스칼이 살았던 시대상도 필자의 짐작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하등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릇된 정의를 참된 진리라고 부르짖고 다니는 자들과 그에 편승하는 추종자들.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공고한 시스템이 되고, 그것에 혼자만의 의문을 품고 그저 편승할 수밖에 없는 이들.
파스칼은 다시 말했다.
"정의와 진리는 매우 날카로운 끝과 같은 것이어서우리의 도구들은 그것에 정확히 닿기에는 너무 무디다.어쩌다 닿기라도 하면 끝을 으스러뜨리고 그 주변을 더듬으며진실보다 허위를 짚는다(p. 62)
이 표현을 두고 문득 생각하는데,우리는 우리의 도구를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맡겨놓았고,이들은 때론 혹은 자주 허위를 짚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아예 이럴 바에야우리가 직접 진실을 찾아 직접 헤매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두서 없이 시작하여두서 없이 끝나 유감이지만,파스칼이 던지는 메시지는 참으로 깊고 심오하여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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