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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림서옥
  •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 마쓰모토 세이초
  • 12,600원 (10%700)
  • 2009-03-27
  • : 2,059

'마쓰모토 세이초' 

 

개인적으로 일본 작가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 작가의 인생까지도 존경스러운 사람은 오로지 이 한 사람뿐이다. 이 사람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반생(半生)의 기록'이 나오기를 몇 년전부터 기다리고, 출판사에도 질문을 넣어 봤으나 출판은 되지 않고 내 반생(半生)만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 소개하는 이 책에는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 다노우에 고사쿠가 왼쪽 다리를 절며, 항상 벌린 입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어머니의 부축으로 '모리 오가이'의 흔적을 찾아 시골의 흙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장면을 읽었을 때마다 다노우에 고사쿠와 같던 집념이 있던 '그'가 생각난다.

 

그와 만난 것은 중3때였다. 우리는 둘다 '동아시아의 루저의 별'이라 불리는 주성치만큼이나 루저였다. 외관적 모습을 말하자면 그는 다노우에 고사쿠처럼 왼쪽 다리를 절고, 입은 항상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대화를 하는 것이 매우 불편해 간단한 대화라 할 지라도 꽤 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왼쪽 손은 팔꿈치 부터 몸 쪽으로 접혀 자유로이 움직이지를 못 했다.

 

그의 절친이던 나는 어떠했는가. 중1때 발병한 결핵을 약을 조금 먹고 완치된 것으로 자가 판단을 내린 후 1년간 방치. 결국 결핵균은 온 몸을 침투했고 폐에 구멍을 냈다. 중3때는 종이처럼 흰 피부와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이 되었다. 다행히 그래도 각혈을 할 정도로 중증은 아니라 한 달에 한번 영등포 보건소로 통원치료와 매일 열 몇가지가 되는 약을 아침, 저녁으로 먹어야 했다. 끊이지 않는 기침, 그리고 소변을 누면 약의 영향으로 환타색이었다. 내 소변을 보고 친구들이 움찔 거리고 놀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를 만난 것은 중3에 올라와서였다. 그와 나는 걸어온 길이 틀렸다. 난 중1때부터 중2때까지는 학교에서 악명을 끼치고 다녔다. 이런 말하면 부끄럽지만 나보다 약한 친구들을 곧잘 때리고 괴롭히곤 했다. 특히나 지금도 가슴 아팠던 것은 중1때 같은 반에 뚱뚱하고 키가 큰 친구있었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순박해, 착하디 착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어머니가 암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교복도 제대로 빨아오지 못했고, 도시락도 제대로 못 싸가지고 왔었다. 나는 그걸 알았음에도 그 친구를 괴롭혔다. (진짜 쓰레기네...)

 

그런 내가 중3에 올라오며 중2 겨울방학동안 병세가 급격히 악화가 되었다. 몸은 멸치가 되고 정신도 한없이 나약해 졌다. 중3에 올라오자 그와 나는 반 아이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괴롭히는 병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는 인간의 태생적인 DNA인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그는 아이들에게 맞고 있었고, 나는 교실 뒷편에 앉아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어느 반이나 그렇듯 반에는 짱이 있다. 짱을 중심으로 한 6명 무리가 우리 반을 좌지우지 했고, 나는 그 무리 중 한명의 꼬봉 역할을 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그 놈의 책을 사물함에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 놓거나 하는 식의 심부름을 했다. '그' 역시 누군가 한명의 꼬봉 역할을 했다. 둘이서 남의 책상 위에 자기 책이 아닌 남의 책을 올려 놓으며 우린 서로를 의식하며 조용히 서로를 스쳐갔다.

 

어느 날이었을까? 그의 자리에 짝꿍을 정하는 데 그 누구도 옆에 앉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면 반에서 가장 많이 맞는 그의 옆자리에 앉으면 자신 역시 그 피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누구 없어? 라고 몇 번이나 물을 때 그는 부끄러운지 부자유스러운 팔을 책상에 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안쓰럽다. 동정을 한다.'라는 감정이 아닌 그냥 왠지 나를 보는 듯한 생각에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렇게 우린 짝이 되었고, 반 아이들에게 '병신 커플'로 불리었다.

 

다노우에 고사쿠가 받았던 세상의 모멸을 쓴 문장 뒤의 감정들을 그 시절 뼈져리게 느꼈다. 어떤 아이가 내 반찬을 집어 먹다가 결핵이란 소리를 듣자 내 얼굴에 반찬을 뱉었을 때, 교실 뒤로 가서 불량한 무리들에게 이유없이 맞았을 때, 책을 잘못 꺼내 놨다고 발길질을 당했을 때, 그런 기억들은 나에게는 먼저 강한 분노를 주었다.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칼을 쥐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없는 나약한 몸을 보며 분노를 한켠으로 밀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괴롭혔던 그 친구들 그들의 심장에도 내가 이런 짓을 하지 않았던가 하고 말이다. 그 얼마나 비참한 감정인가....

 

한 두마디식 나누던 그와 나는 점점 더 친해졌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해 흙바닥의 운동장으로 나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스탠드 구석에 숨어 앉아 있곤 했다.

 

다노우에 고사쿠는 신체적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을 두뇌의 명석함이 있었다.

 

그도 어눌한 말과 다르게 두뇌가 명석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넌....몇..년...간... 맞아...봤어?"

"난 지금이 처음이야. 이렇게 맞아 본적은 없었어."

 

고개를 숙이고 우울해 하는 나에게 그는 벌어진 입을 하늘로 들고 낄낄대며 웃었다. 이 놈이 실성을 했나해서 쳐다보니 웃던 그는 별안간 진지한 눈빛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난 맞고 지내온지 햇수로 5년은 넘는다. 맞을 때는 소리를 크게 질러라. 그러면 때리는 놈들도 들킬까봐 혹은 조금 양심의 가책을 받아 조금만 때린다. 그리고 상황을 봐서 바닥에 자연스럽게 쓰러져라. 버티고 서 있으면 괜히 더 때린다. 아! 그리고 너는 기침을 잘하니 맞으면 격하게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져라. 그리고 시비를 걸면 못 들은 척 멍청한 표정을 지어라. 그러면서 나를 툭 치며 자신의 표정을 보라고 손짓을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표정. 시선은 먼 산을 보고 있고, 입은 벌린 채 침이 나올까 말까 아랫입술을 경계삼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아기나 귀여운 강아지를 때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왜 너무 귀여우니까 그런데 그때 그의 표정은 귀엽기는 커녕 정말 때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내가 정색을 하며

 

"야, 때리고 싶은데" 라고 말하자.

 

그는 조금 고민을 하더니 표정은 변수가 많으니, 그냥 못 들은 척하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못 들은 척 연습하거나, 기분 안 나쁘게 쳐다보는 법, 동정심을 얻을 수 있는 제스처, 서로 툭 건드려도 쓰러지는 연습을 했다. 정말 누가 봤으면 '병신 커플'이라 불릴 만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할까? 그의 가르침데로 맞는 비율이 현저히 감소를 했다. 그리고 때린 아이들이 가면 우린 프로 연기자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서 먼지를 털고 자리에 앉았다.

 

더운 여름 운동장 그늘에 앉아 무언가를 읽는 그에게 난 물었다. 비참하지 않냐고.

 

고사쿠는 에나미라는 절친을 통해서 모리 오가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된다. 또한 에나미의 도움으로 장서들의 자료 조사를 하게된 고사쿠는 그 일을 몰두하던 중, 그 자료 조사 방법을 통해서 그때 당시 분실 상태에 있었던 모리 오가이가 '고쿠라'에서 지낸 3년간의 일기 '고쿠라 일기'를 보완해 보자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그 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집념을 불 태우던 고사쿠는 종종 일어나는 '이 작업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에 괴로워한다.

 

비참하지 않냐는 나의 질문은 우리가 남몰래 연습했던 루저 행위에 대한 근본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고사쿠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고 괴로워 했던 것처럼 내 질문은 그에게도 그런 의미 였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비참하다고 항상 비참했다고. 자신이 이런 몸이란 걸 자각한 이후부터 안 비참했던 적이 없다고.

 초등학교 시절 동정하는 아이들에게 기괴한 몸을 흔들며 춤도 추었다고 한다.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들 속에는 그 당시 자기가 좋아했던 여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춤을 추며 좋아하던 여학생을 보며 난생 처음 설레였다고 한다. 집에 가서 좀 더 웃긴 춤도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 그 여학생에 대한 맘은 더욱 커졌고, 주변 친구들에게 몇 번이고 물어본 후 여학생에게 고백을 했다고 한다. 고백을 하자마자 일그러진 그 여학생의 표정을 자신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라고 했다. 그 후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 갔다고 한다. 아래를 몇 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그 까마득한 높이. 세차게 불던 바람. 그 속에서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강하게 자신을 잡아끌어 부둥켜 안아 버리는 바람에 뒤로 자빠졌다고 한다. 놀란 그가 본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였다고 했다. 눈물 범벅이 된 어머니는 자신을 안고 그렇게 속상하게 우셨다고 했다. 어머니의 흙투성이가 된 맨발을 보고,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는 누워서 하늘을 봤다고 했다. 하늘은 평온했고, 조용했다. 갑자기 죽어야 될 이유가 사라졌다는 그는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상황이 와도 그 속에 맞게 대처하고 절대 거기에 비참함을 느껴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더운 열기가 피는 아지랑이 속에 체육시간이 다가 왔는지, 주전자를 들고 선을 긋고 있는 학생 하나가 보였다. 그의 어눌한 말소리 속에서 나는 무얼 느낀 것일까? 하지만 더이상 비참하지 않냐는 질문은 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결국 고사쿠는 전쟁 속에서 식량 부족으로 병이 악화돼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가 평생을 걸고 완수한 '고쿠라 일기'에 대한 조사는 전쟁 후 원본이 발견이 되어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냈다. 결과를 떠나서 말이다. 그 조사가 없었다면 그는 인생 자체를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단편 소설에 느껴지는 애잔하면서도 강한 고사쿠의 집념은 읽을 때마다 마음을 울린다.

 

그도 집념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그는 강하게 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공부를 잘하면 아이들도 괴롭히는 것을 멈출 것이라 생각을 해 밤 새서 서로 집에 전화를 하며 격려도 해 전교 20등 안에도 드는 쾌거를 이뤄냈다. 물론 그렇다고 괴롭힘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난 중3을 졸업할 때 쯤 겨울방학 때 그에게 내가 괴롭힌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이야기 했다. 눈이 오던 그 날, 그는 내 손을 잡고 괴롭혔던 덩치 큰 순박한 아이의 집을 함께 찾아가 주었다. 빌라 지하에 살고 있던 덩치 큰 순박한 친구는 내가 오자 꽤 놀란 눈치였다. 눈이 오던 밖에서 그는 나에게 어눌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덩치 큰 순박한 친구와 나는 '잉?'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는 마침 심판관처럼 엄숙하게 나에게 말했다. '꿇어'라고.

 

나는 눈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마음 속에서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저기...그러니까..."

 

마치 눈앞에 중1때 재수없던 내가 나타나 입을 틀어 막은 듯이 '미안하다'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때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눌렀다. 지긋이...무슨 신호를 받은 것처럼 뜨거운 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터져 목구멍을 뚫고 나왔다.

 

"미..미안해. 정말 미안해...너한테 너무 미안했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는 절로 90도로 숙여졌다. 얼굴은 붉어진 채 주저리 주저리 진심으로 절실하게 말했다. 다 말했을 때 주위는 너무 고요했다. 고개를 조용히 들자.

 

덩치 큰 순박한 친구는 양 손으로 수박만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더 가관은 내 어깨를 누르고 있던 '그'의 표정. 양 미간을 찌뿌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강하게 감동을 받은 듯.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조금 더 있으면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분위기...어쩌지 흐름따라 나도 울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덩치 큰 순박한 아버지의 거친 쉰 목소리가 들렸다.

 

"추운데 문은 왜 열고 나가. 들어오던지 문을 닫고 나가던지!"

 

그 소리에 난 후다닥 일어났고, 덩치 큰 순박한 친구는 눈물을 쓱쓱 닦고 '들어와'라고 말했다. 우리는 조그만 밥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코코아를 아무 대화도 없이 조용히 먹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평온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지금도 너무나 소중하다.

 

그 후 나는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서로가 엇갈렸다. 중3 졸업식 때 난 건강을 되찾고 혈색도는 몸으로 왔고, 그는 한결 길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왔다. 그리고 그 날은 그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난 '그 친구' 덕분에 인간으로서의 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고시원에 있으면서도 그 길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고사쿠처럼 집념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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