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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림서옥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15,120원 (10%840)
  • 2016-04-25
  • : 20,203

아무래도 머리를 식힐 때는 하루키의 수필이 좋습니다. 솔직하고, 시원하고, 담백한 그의 글은 언제나 읽는 맛을 줍니다.

 

이 책은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소설가라는 점만 딱 도려내고 읽으면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적잖이 도움이 됩니다.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간인가'에서 하루키는 '링'에 비유해 소설가라는 일을 얘기합니다. 소설가를 떠나 누구에게나 링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승리(?)하려면 누구나 계속 써내려가는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소설가와 고시생의 지속성 차이는 '상상력의 지속성'과 '기계적인 지속성'인 것 같습니다. 쓰기 위해서는 상상해야 하는 소설가와는 달리 고시생은 이미 구축된 것들을 반복 반복 또 반복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며 느낀 것은 신기하게도 뇌의 무궁무진한 능력입니다. 방금 읽는 것도 백지화 시켜 버리는 이 뇌의 힘! 두뇌풀가동을 아무리 해도 어떠한 무(無)로 돌아가는 이 재미!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와우! 서프라이즈!

 

어떤 날은 꿈을 꿨는 데 제 앞에 큰 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손에는 끌과 정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사력을 다해 돌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머리 속에는 이런 조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계가 있었습니다. 설계대로 돌을 부수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하루종일 부쉈는데 귀퉁이만 조금 파낸 것입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는 데 그 잠깐 사이에 돌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아!!! CIVA!!!' 하고 크게 소리치면서 꿈을 깬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의 링도 어렵기 마련이지요. 거기에 대해 하루키는 자세히 써 놓았습니다.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어쨋거나 상상력이나 기계적이나 지속성입니다. 그것만이 링 위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소설가가 된 무렵'에서는 소설가가 된 계기와 소설 창작의 비법(?) 등 이런 것을 써 놓았습니다.

 

아, 뭐랄까 여기서는 정말 하나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온 사람의 품격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거들먹 거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겸손함도 아닌 인간 그 자체로서의 솔직함.

 

그가 야구 구장에서 느꼈던 그것은 그야말로 추측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쭉 읽어온 독서로 축적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정도 사업이 여유로워지자 내부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아닐까요?

 

자각이라도 해도 좋고, 뭐라 표현해도 상관은 없을 듯 싶습니다. 다만 저와 그가 다른 점은 저 역시 루쉰 선생의 수필을 읽고 사람의 육체가 아무리 강건한들 정신이 노예면 그 어떤 개혁도 할 수 없다. 정신을 개혁하는 데 제일 좋은 바로 문학이다라고 했던 그 구절에 감명 받아 문학을 해 보려고 했으나 전혀 글 한 줄 쓰지도 못 했습니다.

 

어느 순간, 어떤 기회에 누구나 무언가를 해볼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것은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듯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루키는 그걸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할까요? 자기 내부의 목소리 외침을 소중히 듣고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저는 그 소리가 들려올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그는 비둘기 온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그처럼 공부에 반드시 합격할 수 있다는 그런 비둘기 체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근처 도림천에도 비둘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안아 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뚱뚱합니다. 게다가 전투적이라고 할까요. 수십 마리가 무리지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무섭기까지 합니다. 안타깝게도 하루키가 말하는 애처롭게 떨고 있는 비둘기는 없습니다.

 

뭐 꼭 비둘기를 안으라는 법은 없겠지요...

 

하루키가 겪은 야구장에서의 감각, 그리고 비둘기를 통한 자각 그런 것들이 안타깝게도 저에겐 아직 없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계시를 통해 고시생이 합격하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죠.

 

중요한 점은 그는 그 감각을 언제고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 원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 입니다.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막히면 자신이 다시 출발할 그 원점.

 

그것은 무엇을 하든 간에 꽤나 중요한 일입니다. 저도 지금 하는 공부를 하며 겪는 이 고통이 하나의 원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성공해도 이 감각을 잊지 않고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문학상'에 대해서도 하루키는 담백하게 이야기 합니다. 문학상의 권위보다 중요한 것은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을 지가 중요하다는 사실. 소설가로서의 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길 읽으며 '아! 멋진 걸'이라고 감탄했습니다. 사회적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상들에 대해 이렇게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저는 그가 여러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저런 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성실하게 써 가는 저 자세. 그것이 그를 지금껏 존재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번 하루키의 수필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무언가를 써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비법(?)이랄까요. 그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인 그의 성실성입니다. 끊임없이 추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 그것이 이 책 전반에 녹아 들어 있습니다. 역시나 일류의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선생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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