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사항-
이 글은 전혀 리뷰가 아닙니다. 다만 이 책이 루쉰 선생을 접할려고 하는 분에게는 정말 도움이 된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리뷰에는 책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저도 왜 리뷰라는 이름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책의 정보가 필요한 분이시라면 이 글을 안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깁니다. 읽고 나서 화 내실까봐 미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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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서재에 가끔 들어오기는 하지만 여러번 말씀드린 데로 글을 쓰는 것이 이제는 두려워 차마 무엇을 쓰지 못 합니다. 몇 번 쓸려고 하다가 지우기 일 쑤 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쓸려고 하는 걸 보면 제가 관종(관심 종자: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자)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지금 고시원에 들어 와 있습니다. 처음 이 곳을 찾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1호선을 타고 N역에 내려서, 5516번을 타면 정류소 이름 자체가 'D동고시촌 입구'입니다.
처음 이 곳에 들어왔을 때 놀랐습니다. N역에 내리면 짭짜름한 바다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리고 비슷한 복장의 수 많은 젊은이들이 급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모두 약속한 듯 손에는 두꺼운 책들을 하나씩 들고, 백팩을 맨채, 츄리닝이나 아니면 간편한 캐쥬얼 복장입니다.. 그들은 역에서 계단을 내리자 마자 모두 행동을 맞춘 영화 속 인물들처럼 n 학원, 공단기 학원 등 여러 가지 학원 건물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립니다.
저 역시 이 곳의 흐름을 같이 타기 위해, 백팩부터 사고, 두꺼운 책을 산 후, 츄리닝도 위 아래 같은 색으로 맞추어 입었습니다. 그러니 뭐랄까 마음이 든든하다고 할까요?
그들이 다 사라진 후, 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N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걸려 'D동 고시촌 입구'에 내립니다. 버스 정류장은 양쪽 모두 산을 깎아 만든 주거지 촌 한 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피시방, 당구장, 술집 및 유흥 시설이 밀집해 있고 학원이 있는 곳이고, 왼쪽은 고시원, 원룸들로 가득찬 곳입니다.
저는 당연히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제가 있는 고시원이 있습니다. 고시원을 가려면 45도 경사의 300미터 고갯길을 세번은 올라야 합니다.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이대로 저 하늘 끝까지 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왜 그리 높이 갔냐면 높을 수록 고시원 방 값이 쌉니다. 기묘하죠? 높은 것과 방 값이 싼 것의 상관성을 고민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19만원 입니다. 고시원 방 값이 말입니다. 고시원 건물은 서로 마주보고 1동, 2동 두 건물입니다. 총 수용 인원은 130명이나 됩니다. 방은 모두 130개니 말이지요. 저는 2동 건물 지하에 있는 데 11개 방 중에 하나 입니다. 계단을 내려와 화장실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에 5개, 왼쪽에 6개의 방이 있습니다. 문과 문 사이는 두 팔을 벌리면 닿는 거리 입니다. 옆 방들과 제 방은 아주 가깝습니다.
방은 5평 가량 됩니다. 가로는 눕지 못 합니다. 무릎이 꺾입니다. 세로로 누우면 충분히 누울 수 있습니다.
이 방에는 창문을 바로 밑에 커다란 책상과 책장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는 벽걸이용 옷 걸이가 있구요.
학원을 마치고 저녁에 고시원 입구에 들어서면 이 곳은 덩굴나무로 장식된 벤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곳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벤치에는 탁자가 있는 데 소주와 새우깡 혹은 소세지가 안주로 있습니다. 어떤 날은 모자를 깊게 쓴 아저씨가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휴대폰을 보며 이어폰을 끼고 실실 웃으며 소주를 먹는 스포츠 머리의 학생이 있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이 고시원은 남자 전용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이 고시원 원장님의 방침입니다. 남자만 사용하게 하는 게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듣지는 못 했습니다.
다만, 여자 고시원 방에 팬티만 입고 들어간 남 고시생의 이야기만 근근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의 방에 팬티를 입고 들어간 그 학생의 기구한 사연은 굳이 듣고 싶지 않아 자세히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경찰시험을 준비하던 여 학생 이었기에 제대로 얻어 터지고 나왔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하며 원장님은 껄껄 웃으시더군요. 결국 그 이후 남 고시원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덩굴나무 벤치 아래 소주를 먹는 사람들은 분명 가슴에 묻어 논 얘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그들 옆에 가서 한번도 말을 걸지는 못 했습니다. 그냥 조용히 지나쳐 제 방으로 들어 옵니다.
이 고시원에는 40대 이상의 일용직 근로자가 반이고, 나머지는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사시가 폐지 절차를 밟으며 학생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일반 사람들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전 이곳에 온갖 법 서적을 책장에 진열하고, 루쉰 문학 선집 한 권만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습니다.
아, 외롭지 않냐구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사람과의 대화도 안 하다가 보면 익숙해 지나 봅니다. 대화라면 편의점 갈 때나 마트 갈 때 가끔 하곤 합니다.
'적립 카드 있으세요?'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그러면 친절하게 웃으며 하나도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인간적인 교류가 없냐구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알고는 있습니다. 말씀드려 볼까요? 전 여기 옆 방 친구가 새벽 4시에 샤워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화장실이 세면실 겸용인 데 씻으면 물 소리가 납니다. 조용히 말이죠. 아주 조용히...
그리고 여기 그 누구의 방이건 문을 열면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이웃 방 이웃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 합니다.
또한 아침 6시, 7시에는 진동 울림이 제 방까지 전해집니다. 신기하죠? 저도 그 진동이 어느 방에서 울리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합니다.
가끔은 뜬금없이 방귀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들이 아주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고 있다고 여기고 괜히 혼자 흐뭇해져 잠들곤 합니다.
이 곳에 학원은 크게 3곳이 있습니다. B 학원은 화장실에 휴지도 없고, 냉난방 시설이 열악해 '노무사 학원의 아오지 탄광'으로 불리 웁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곳은 시설이 괜찮아 그런대로 다닐만 합니다.
저도 시설 괜찮은 한 곳을 잡아 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에는 여 학생들은 23살부터 28살 때까지가 가장 많습니다. 남 학생들은 28살부터 30대 초반까지가 제일 많습니다.
전 학원에서 나이 순으로 넘버 3에 들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40대가 두 분이나 계셨으니까요. 다들 유명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 취업이 안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대체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이 이들과 저를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 학원에 들어간 것이 작년 9월이었습니다. 몇 년만에 강의실에 앉아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하니 희열 비슷하게 오더군요. 열심히 듣고 집중 했습니다.
전 교실에서 뒤에서 3번 째 줄에 앉았습니다. 앞에 앉기에는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뒤 정도에 있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몇 번 정도 수업이 흐른 후, 어느 날부터 인지 수업 후 10분 정도 흐르면 한 여학생이 제 앞에 빈자리에 항상 앉았습니다. 긴 생머리에 귀걸리랑 목걸이도 예쁘게 하고 티에 스키니 진 청바지를 입고 왔는 데 얼굴도 갸름하고, 몸매도 호리호리 하여 참으로 이쁘구나 하며 앞에 앉아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괜히 집중도 더 잘 되고 말입니다.
공부를 하러 온 여학생들은 귀걸이 조차 하지 않고 화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이 학생은 특히나 튀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이었는 지 모르지만, 하필이면 그 날 따라 제 앞 자리에 장발머리의 덩치 큰 남학생이 킁킁 대며 앉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학생이 앉으려고 할 때 의자를 발로 차서 넘어 뜨리고 싶었습니다. 왜 그랬는 지 모르지만 제 안에 악마가 있나 봅니다.
예상대로 그 여학생은 늦게 도착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좀 늦어 쉬는 시간에 왔는 데 자리를 앉으려고 두리번 거리더군요.
여러 자리가 비었지만 제 옆자리로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옆자리 의자는 두 개가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예전에 앉아 봤지만 앉는 곳에 나사 못이 조금 튀어 나와 따끔 했습니다.
그 의자에 앉으려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의자 못이 있다구요.
너무 급하게 말하다 발음이 꼬였나 봅니다. 그녀가 저에게 '의자가 멋있다구요?'라고 되물었습니다.
못이 있다고 말하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말았습니다. 그녀도 제 이야기를 듣고 웃고 말입니다.
학원 강의실에서는 좀처럼 사람들이 웃지 않습니다. 웃을 만큼 기쁘진 않기 때문입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듣는 데 웃을 수 있다면 마하트마 간디 형이지 않을까요?
수업을 다 마치고 그녀는 저에게 커피를 한 캔 사 주었습니다. 먹고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에 주저 거리다가 학원 옥상에 같이 올라가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그녀도 저처럼 직장 생활을 하다가 비정규직을 계약을 반복하고 결국에 정규직 약속만 하던 그곳에서 배신을 당해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O시가 집인데 여기서 1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열심히 올려고 하지만 자꾸 늦잠을 잔다고 합니다. 혼자 계신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데 게으른 자신이 참으로 웃기다며 말이죠.
햇살이 비추는 가을의 오후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데 그 모습이 참 이쁘더군요.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스키니 진 청바지의 여성이 앞에서 웃으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무슨 기분이 들었는 지 직장에서 제 이야기를 하염없이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비참함, 갈등, 그리고 속상한 것들.
그녀는 조용히 들었습니다.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며 말이죠. 제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직장에서 성추행도 당했다고 말입니다.
그녀는 너무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퇴근 후에도 쫓아다니는 50대 중년의 스토커 고객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라는 직장 상사들의 이야기도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히 말했습니다.
여기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대화를 했지만 그들에게 그 어떤 것도 벌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욱 실망했다고 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는 웃었습니다. 왜 웃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웃음 속에 모든 걸 날리고 싶은 지 그녀는 웃었습니다. 조용히.
전 교과서 적인 대답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반드시 시험 붙자고, 그리고 필요하신 자료 있으면 드릴테니 USB 하나 꼭 가지고 오시라고 말입니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그녀와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자료가 들은 노트북을 몇 번이나 살펴 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 날도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버리고 그녀는 학원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0월 초 고시원의 밤, 새벽에 홀로 공부를 하다가 뉴스를 봤습니다. 공부를 하다 지치면 머리를 식힐 겸 뉴스를 보곤 합니다.
뉴스에서 '비정규직 여직원 자살'이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O시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비정규직으로 퇴사한 여자가 자기 집 방에서 자살을 했고,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다음 날, 노동법 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며칠 전 노동법 선생님이 비가 엄청 내리던 날, 우울한 모습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몇 년전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에 죽은 친구가 있어서 갑자기 생각이 나 우리에게 무슨 고민이 있던 간에 자기를 찾아와 대화를 해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 입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담배를 피며, 그녀에 대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놀라시며 사람들이 뉴스에 나온 그녀를 눈치 챌까봐 몇년 전에 죽은 학생이라고 거짓말 했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하시며 그녀가 맞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쓰레기 같은 고객들과 직장 상사들에 대해 욕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놈들은 그녀를 어떻게 해 볼까하고 지들끼리 히죽거리며 얘기 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럴 때마다 자신이 노동법을 가르키는 것에 대해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말입니다.
저에게 어떻게 그녀를 아냐고 물어보실 길래, 옆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조금 하게 되었다고 애기했습니다.
선생님과 둘이 하염없이 담배를 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학원을 나왔습니다.
그후 학원에서도 고시원에서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오랜 시간을 대화를 한 사이도 아니고, 친해졌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그냥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죽을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비난 했습니다. 왜 죽냐고 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저의 생활에 어떤 흔들림도 주지 못 했습니다. 그냥 몇 분 뒤 그 소식들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근데 왜 몇 분 대화한 그녀의 죽음이 저에게 이렇게 모든 생활을 뒤흔들 정도로 힘들었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그 직장에서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전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뭐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움, 그리고 안타까움. 그것만이 제 가슴 속에 휘몰아 쳤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노력한 것이 상실되고 나서 자신의 모든 노력이 산산히 부서졌을 때 그 마음을 저는 조금이나마 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자살이란 선택에 대해 그것은 잘못됐다고 쉽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낼만큼 그 무엇인가를 반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하는 데 전 마음 속에서 죽지 않아야 하는 반대의 이유를 찾지 못 했습니다.
그렇다고 죽는 것이 맞다고는 보지도 않습니다. 루쉰 선생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반드시 격퇴해야 할 상대들을 앞에 놓고, 내가 죽어 버린 다면 그것은 그들만 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려면 독하게 아주 독하게 칼을 갈아야 합니다. 그것을 전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상처는 단순한 말로 해결될 그런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꽤나 뻔뻔합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안정적이고 고정된 수입과 조금이나마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1%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생명이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전 아무 것도 해 주지를 못 했습니다.
지금도 문득 어두컴컴한 방에 고시원에서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루쉰 선생의 책을 읽으며 그냥 더듬 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는 썩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데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히고 결국엔 그녀를 죽였지만 그런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기껏해야 직장에서 아주 작은 제재만 받았습니다.
어느 날 꿈에는 그들을 찾아가 빈 병으로 머리를 부수고 이빨로 물어 뜯어서 갈기 갈기 찢어버리는 꿈을 꿨습니다.
루쉰 문학 선집에는 열강의 내정 간섭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정부에 대한 청원 데모를 벌였지만, 정부는 발포로 대응해 47명이 죽고 150여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벌어졌는 데, 죽은 40여명 중에는 루쉰 선생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여학생 이었습니다.
루쉰 선생은 2주 후에 추도사의 글을 썼습니다.
"나 역시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참이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대체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중략) 하지만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이 인간세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뿐이다. 마흔 여 명 청년의 피가 주변에 흘러념쳐 숨이 막히고 보기도 힘든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 비분을 글로 쓴다 해도 그것은 아픔이 가라앉은 뒤라야 할 것이다.(중략) 나는 나의 더 없는 애통을 이 비인간적인 세상에 공개하여 그것으로 나의 고통을 위안할 것이며 이것을 죽은 자에 대한 약소한 제물로 삼아 영전에 삼가 바치리라."
그녀는 절망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살려고 공부를 도전 했었고, 무언가 해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죽일려고 드는 사람들의 압력이 너무 세어 그녀를 압사 시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가 죽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의 친구들에게 다행스럽게 연락이 되어 그녀가 묻힌 곳의 주소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페이스북에서 저와 대화했던 그 때 그 미소로 웃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닷가가 있는 가족 묘지에 묻혀 있었습니다. 전 아직도 찾아 가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꼭 갈 생각입니다.
루쉰 선생은 또 이렇게 쓰고 계십니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을 띠고 상냥하던 그녀가 죽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고 거리는 다시 태평을 찾았다. 워낙 한계가 있는 몇 사람의 생명쯤은 중국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악의가 없는 한가한 사람들의 식후의 이야기꺼리로 되거나 악의를 가진 한가한 사람들이 풍문이나 만들어내는 종자로 될 뿐인다."
세월호의 학생들이 죽은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게 학생들은 죽인 자들은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고, 벌도 받지 않으며 시간이 용서를 부르듯이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겹다고 댓글다는 놈들만 보입니다.
반드시 벌해야 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며,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있는 데 그런 것을 장님처럼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참으로 구역질이 납니다.
루쉰 선생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마음속에 묻혀 남지 않는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죽은 것이다."
"전사가 부족한 곳에서는 생명이 더욱 귀중한다. 귀중하다고 말하는 의미는 생명을 집에 깊이 감춰두려는 것은 아니고 적은 원금으로 최대의 이자를 얻으려는 것이며 적어도 수지가 맞아야 할 것이다.(중략) 이번에 희생자들이 뒷사람들에게 남겨준 공덕은, 인간의 탈을 쓴 수많은 물건들의 허울을 찢어버리고 상상할 수 없이 잔악한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뒤를 이어 싸울 전사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점이다."
누구나 의미 없이 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절망적인 세상이 지속되게 내버려 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녀를 추억하며 그녀가 그냥 헛되이 의미없이 그녀가 나약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세상을 받아 들이기는 싫습니다.
"피로 쓴 진실은 지울 수 없다"
는 루쉰 선생의 말처럼 그 진실은 지울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피로 뒤덮인 현실을 뒤짚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제가 찾을 수 있을 지 말입니다.
다만,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를 죽게 만든 세상의 논리에 따라 가고 싶지 않습니다. 역겨운 그곳에 침이라도 뱉을 정도의 그리고 그들이 조금이나마 짜증이 나도록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것이 저의 긴 편지입니다. 쓰고 싶었을 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