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측백나무의 서재
  •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
  • 12,600원 (10%700)
  • 2009-03-04
  • : 11,846
지난 어느 시기에, 아마도 1980년대의 끝 무렵에 베베(브레히트의 애칭)의 시를 읽다가 문득,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표현에 오래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서정시를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눈 앞에 있는 군인 출신 독재자를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시를 쓰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늘 개인적인 소회에서 시는 출발하였고, 객관적 현실의 중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나는 베베의 표현에 공감하였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보면서 파쇼적 국가시스템이 작동하던 시절로부터 이후 민주주의를 실험하던 시절을 지나 오늘에까지 다다른 역사의 맥에 대한 낮은 목소리를 오래 곱씹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그렇듯이 대한민국도 많은 사람들의 피와 고통을 자양으로 자라났다.  문제는 부르조와 형식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부르조와 계급 지배 질서를 보호한다는 점이며, 기득권층이 집권했을 때에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며 항구적인 유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인 보강작업을 꾀한다는 것일진대, 유시민의 지적은 가슴 아프다. 방송국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해고하고 갓 신출나기 작가들로 대체투입하며, 현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은 아얘 없애는 방식의 '정화적업'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방송국의 주요주주로 신문과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열려하는 작태를 모아도 항구적으로 지속가능한 집권환경을 구성하고자 하는 일이며, 이는 결국 기득권층에 유리한 방향임에 틀림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파, 혹은 계급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그 형식 민주주의는 기능을 달리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기득권 계급의 정치를 펴는 시기이며, 그 본질을 아는 다중(多衆)은 과거처럼 봉기나 전민항쟁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한국사회에서 현실 정치에 몸담으며, 민주주의 실험을 선도하고자 했던 유시민으로서는 새로운 변화로 가기 전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에 대해 성찰함으로서 나아갈 방향의 각을 다듬고자 했던 것일까? 그의 담담한 소회는 겉보기보다 그 아프다. 과거와 현재의 아픔을 갈무리하여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개념어'들로 생각의 파노라마를 그려나가는 이야기길을 따라, 나는 내가 쓰기 어려워 했던 서정시를 아직도 저어해야 하는 것인지 되묻는다. 유시민의 사유가 향하는 곳에 그래도 빚을 많이 갚은 민주주의 나무 한 그루 있었으면 좋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