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오네긴>은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다. 소설이 아닌 '운문 소설(韻文)'로 쓴 이 작품은 일명 '러시아병'에 걸려 세상만사가 귀찮아진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의 몰락을 다루고 있다.
오네긴은 20대 중반의 귀족으로, 한때 사교계에서 유명할 정도로 날아다녔던(?) 사람이었지만 최근에는 어째서인지 모든 것에 산물이 난 상태다. 맛있는 음식이나 도박 게임은 물론이고 사교계 여성들에게도 관심을 잃은 오네긴은 기분전환 겸 시골마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며칠은 기운이 난 오네긴이었으나 이내 또다시 권태로운 삶에 질려버린다. 그때 오네긴이 있는 시골에 젊은 시인인 '렌스키'가 나타난다. 렌스키는 오네긴과 달리 나이도 훨씬 젊고(약 17살 정도) 삶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진 남자였다. 더구나 시인 기질이 다분했기에 낭만주의자처럼 행동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상극인 두 사람은 이내 친구가 된다. 렌스키는 오네긴을 연장자로서 대했고, 오네긴은 렌스키의 열정을 관망하는 재미로 사귄다.
한편, 렌스키는 시골 마을의 '라린 가문'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되고, 가문의 둘째 딸인 '올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첫째 딸인 '타티아나'가 렌스키와 같이 온 오네긴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오네긴에게서 느껴지는 염세적인 분위기와 권태에 끌림을 느끼고 남몰래 사랑을 키운다. 그러다 결국 연모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타티아나는 오네긴의 사랑의 고백 편지를 보내는데, 정작 오네긴은 그 편지를 받고는 오히려 타티아나에게 그만두라고 조언한다. 오네긴 왈, 자기는 지금 누구랑 연애할 기분도 아니고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면 불행해지니 마음 접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큰 상처를 받은 타티아나는 오네긴이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시골을 떠난 후에도 그를 그리워하다가 우연히 예전에 오네긴이 살았던 저택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그녀는 오네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깨닫는다.
몇 년 뒤, 여전히 특유의 권태를 느끼고 있던 오네긴은 어느 사교계에서 아름다운 부인을 보게 된다. 알고 보니 그 부인은 타티아나였고, 오네긴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이후로 오네긴은 타티아나에게 고백의 편지를 쓰면서 예전에 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말을 하지만 타티아나는 무시한다. 나중에 단둘이서 만난 자리에서 타티아나는 눈물을 흘리며 오네긴에게 이미 늦었다고, 당신과 달리 자기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만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절망하는 오네긴의 모습을 끝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지식인(인텔리겐치아)의 권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인 오네긴은 언뜻 보면 걍 한량인 것 같지만 그 역시 과거에는 여러 책을 탐독하고 많은 경험을 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렌스키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삶에 대한 열정 역시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오네긴은 이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껴 심각한 권태로움에 빠진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런 에너지가 자기 자신 안에서만 흐르다 보니 그런 듯하다. 그러니까 인생의 가치 있는 것들을 아무리 해봐도 현실은 그대로이고 괜히 자기만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거다. 거기다가 지식인 특유의 허영심까지 있으니, 오네긴으로서는 세상만사가 쓸데없은 일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오네긴의 재수 없는(?) 태도에 화가 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 실망한 지식인의 고립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네긴을 향한 비판을 멈출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마지막에 타티아나에게 비굴할 정도로 고백하는 모습은 정말 추해 보였다. 그가 진정 배운 지식인이고 자기 소관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저렇게 행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역자의 해설처럼 작중 오네긴의 모습은 어른이 아닌 어린이의 모습에 가까웠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취해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이 이러니 뭔가를 배우고 경험해도 거기서 다른 뭔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본인 입맛에 맞는지만 따지려 드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식의 경험이, 에너지가 안에서만 흐르게 되니까 그 결과 갑갑하고 권태로움을 느끼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는 렌스키도 마찬가지다. 렌스키는 오네긴과 반대로 너무 열정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는 혼자 시적 열정에 빠져 열광하기 일쑤였고, 올가가 오네긴과 춤을 추자 거기에 괜히 분노해 오네긴과 결투를 벌이다 죽는다(올가는 정말 재밌으니까 오네긴과 춤을 춘 것뿐, 렌스키에게 결투하라고 한 적도 없다). 렌스킨 딴에는 올가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기만큼이나 낭만적인 열정에 빠져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정작 올가는 슬픔도 잠시 이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작중에서도 렌스키의 낭만적인 죽음은 결국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과도한 자기 사랑에 취해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제는 뭘까? 내가 생각하기론 과도한 고립은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단순한 물리적 고립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립도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 그러니 가끔 스스로를 잊고 남들과 적당히 어울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마치 현실을 깨달은 타티아나가 조용히 오네긴을 나무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외에도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구절이 많았다. 그래서 운문이라는 낯선 전개 방식임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장황하면서도(그런 척을 하면서도) 푸슈킨 특유의 솔직하고 섬세한 문장이 최고였달까.
이 소설들에는 시대가 반영되어 있었고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고
메마른 영혼을 지닌,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지는 영혼을 지닌,
공허한 행위 속에 들끓고 있는
분노한 지성을 지닌
동시대의 인간이
꽤 진실하게 그려져 있었다.- P319
믿음에 몸을 맡기고 차가운 이성을 몰아내고
심장의 달콤한 도취 속에 고이 쉬는 자는
잠자리를 찾아낸 술 취한 길손처럼
또는, 좀 더 사랑스레 말하자면,
꽃 속에 꿀을 빠는 봄나비처럼
수백 번 수천 번 행복하며,
반대로, 모든 것을 예견하며
모든 말과 행동을 스스로 해석하고
번역하여 자신의 언어로 증오하고
경험이 심장을 차갑게 하여 자신을
잊는 것을 금지한 자는 불쌍하다!- P207
오네긴이 어린아이에서 더 성장하지 못한 채 때늦게 ‘엄마‘에게 애정을 무제한적으로 요구하지만, 그런 엄마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네긴은 성숙으로의 도약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오네긴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린애처럼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 볼 때 가혹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다.- P383
한참을 정신없이 쾌락을 좇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하찮고 사람들은 심술궂고 시시하다. 결국 그에게는 모든 것이 권태롭고 그는 사랑도 우정도 믿을 수 없다는 환멸감에 휩싸인다. 자신이 사는 땅에 뿌리박을 수 없기에 모든 것은 그에게 의미가 없고 그의 개혁 시도는 힘을 얻지 못하고 그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