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과 <노생거 수도원>에 이어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의 <오만과 편견>이다. 사실상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오만한 '다아시'와 그런 그를 편견 있는 시선으로 바라본 '엘리자베스'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내가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게 된 계기는 영화 <오만과 편견(2005)> 때문이었다. 워낙 인상 깊었던 영화였기에 원작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번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완독한 결과, 최고였다! 로맨스 소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1인으로서 과연 잘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괜한 기우였다. 사실상 <오만과 편견> 덕에 제인 오스틴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은 <오만과 편견> 소설을 다시 읽고 난 후기다. 다시 한번 그때의 감동을 느끼고 싶어 재독한 거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오만과 편견>은 내게 큰 감동을 줬다.
내가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특유의 '풍자'였다. 아시다시피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굉장히 촘촘하고 절제된 문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제인 오스틴은 작품을 출간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글을 몇 번이나 검토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완벽에 가깝다. 보통 이런 경우 자칫 소설이 지루해지기 쉽지만, 어째서인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지루하지가 않다! 오히려 흥미진진하기 느껴지는데, 이는 앞서 말한 문장 곳곳에 숨겨져 있는 '풍자'와 '위트' 덕분이다. 작중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사나 행동들에는 은근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돌려까는(?) 묘사가 상당하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울상이겠지만 이걸 보는 제3자인 독자로선 쾌감이 상당하다. 그리고 이런 능숙한 돌려까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오만과 편견> 속 여주 '엘리자베스(리지)'이다.
리지는 자기를 험담한 다아시를 편견을 가지고 본다. 그가 상대할 가치가 없는 남자라 여긴 것이다. 때문에 작중 리지는 숨 쉬듯이 다아시를 까는데, 선을 넘을 듯 말 듯 돌려까는 게 아주 일품이다. 이는 저자인 제인 오스틴의 풍자 실력이 장난 아님을 보여분다. 물론 결말에 가서는 리지의 풍자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다아시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이러한 풍자와 비꼬는 태도는 당시 상류 사회의 가식적인 면을 타파하고 정면돌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아시가 리지에게 반하게 된 것도 이러한 점 - 가식적인 면 없이 적절한 재치로 하는 위트 때문이지 않는가.
그러나 <오만과 편견>이 단순히 리지가 다아시를 농락(?) 하는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반드시 한 번은 등장인물들끼리 진지하게 대화(토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만과 편견>에서도 다아시와 리지가 대화를 가장한 토론을 한다. 주제는 '볼일이 있어 떠나려는 자기를 친구가 가지 말라고 부탁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빙리와 리지는 친구가 그렇게 말하니까 잠시 떠나는 걸 보류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다아시는 아무리 친구라 해도 정해진 일정이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다아시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던 리지는 그가 사람 간의 우정이나 애정을 믿지 않는 것 같다고 쏘아붙인다. 실제론 mbti의 P와 J의 싸움처럼 단순한 성향 차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런 대화는 두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 또한 리지가 다아시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토론을 한다는 점에서 제인 오스틴은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지식이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오만과 편견>은 당시의 '세속적인 결혼'을 비판하고 있다. 작중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결혼한다. 첫 번째로는 리지의 친구인 '샬럿'이다. 그녀는 허영심 많고 아첨쟁이인 '콜린스 씨'와 결혼한다. 리지는 진작에 콜린스 씨의 사람됨을 간파하고 그의 청혼을 거절하지만 샬럿은 그럼에도 콜린스 씨와 결혼한다. 왜 그런 걸까? 사실 샬롯의 목표는 '결혼' 그 자체였다. 샬럿 왈, 자기처럼 미혼인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인 독립을 하려면 반드시 결혼(남편)이 필요하다는 거다. 실제로 샬럿은 애정(사랑)은 결혼 이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라며 제1의 목표를 결혼이라 여긴다. 콜린스 씨 역시 '캐서린 영부인'의 권고 + 목사라는 사회적인 지위에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집착하는 거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무척 현실적인 모습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샬럿의 선택은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는 인생을 고른 것이다. 밋밋한 삶, 인류가 지난 몇 천, 몇 백 년 동안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거다. 여기엔 한 사람의 개인(인간)으로서 '샬롯'은 없고, 사회적이고 인류로서의 '샬롯'이 있을 뿐이다. 내가 봤을 땐 샬롯의 선택은 잘못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샬롯의 결혼은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당시의 전형적인 결혼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이다. 두 사람의 결혼은 앞선 샬롯의 결혼과는 정반대로, 서로의 감정에만 쏠린 나머지 했던 충동적인 결혼이다. 분별없는 결혼인 거다. 엄밀히 말하자면 리디아 쪽에서만 분별없는 결혼이고, 돈을 보고 결혼한 위컴은 마찬가지로 '결혼=돈'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세속적인 결혼관을 보여준다(위컴이 다아시에게 결혼하는 대가로 돈 흥정을 했던 걸 생각해 보라!). 그리고 당연히 두 사람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겪는다.
반면에 제인과 빙리, 리지와 다아시는 세속적인 결혼이 아닌 서로에 대한 애정만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처음엔 다아시도 집안 운운하며 리지에게 청혼하지만 이런 무례하고 세속적인 면에 질린 리지는 대차게 거절한다. 아마 이때 다아시는 리지의 거절에서 자신의 오만함을 되돌아본 건 물론이고 리지가 여느 사람들처럼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덕 좀 보려는, 세속적인 결혼을 원하는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이후로 다아시가 리지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준 것도 결혼보다 애정을 중요시하는 리지의 생각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의 훌륭한 글솜씨와 재치, 그리고 명확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로맨스 소설 같지만 실상은 세속적 결혼에 얽매여 있던 당시 여성들의 삶과 투쟁(반항)을 다루고 있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전히 다아시 쪽에서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결혼은 재산이나 명예 등등을 떠나 서로 동등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드리는 바이다!
돈 많은 미혼남에게 반드시 아내가 있어야 한다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진리다.
"춤추실 때는 항상 그렇게 규칙에 따라 말씀하십니까?"
"그럴 때도 있죠. 조금이라도 말을 하긴 해야 하니까요. 반 시간 동안 같이 춤을 추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이상해 보일 거 아니에요. 하지만 말하는 게 싫은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말을 덜 해도 되게 배려하는 게 좋겠죠."
"지금 같은 경우는 본인을 배려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저를 배려하시려는 건가요?"
"양쪽 다예요." 엘리자베스가 짓궂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엔 다아시 씨와 제 취향이 무척 비슷한 것 같거든요. 둘 다 비사교적이고, 말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단 말을 했다 하면 적어도 이 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조리 감탄하고,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줄 명언 정도가 아니면 적성이 안 풀리죠."- P113
"친구의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다는 건 장점일 수도 있잖아요."
"친구의 부탁이라고 무조건 선뜻 받아들인다면 그건 양측 다 생각이 좀 모자란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보기엔 다아시 씨는 우정이나 애정의 힘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시나 봐요.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부탁을 하면 꼭 그 이유를 들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들어줄 수도 있잖아요. 이건 다아시 씨가 아까 예를 들어 말했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쩌면 빙리 씨 행동이 신중한지 어떤지 하는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바꿔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이유도 묻지 않고 즉시 수락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한 걸까요?"
(중략)
"틀림없이 그 두 사람(위컴과 다아시) 교육에 뭔가 엄청난 잘못이 있었나 봐. 한 사람은 속 내용만 선량하고(다아시), 다른 사람은 겉모양만 선량하니 말이야(위컴)."- P267
콜린스 씨는 분명히 총명한 사람도 자상한 사람도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지루했고, 그가 자신에게 가진 애정이라는 것도 그저 머릿속 생각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남편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샬럿은 남자나 혼인 관계 자체를 딱히 중시했다기보다는 결혼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 교양은 있지만 재산은 없는 아가씨가 명예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결혼뿐이었고, 결혼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해도 궁핍하지 않은 생활만은 보장했다. 미인이었단 적이 한 번도 없는 스물일곱 살의 여자로서, 샬럿은 마침내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확보했으니 그만하면 무척 운이 좋다고 여겼다.- P151
"내 딸과 조카는 천생연분이야. 두 사람 다 모친 쪽은 귀족 가문이고, 부친 쪽은 작위는 없지만 훌륭하고 명예로우며 유서 깊은 가문이지. 양가 모두 재력도 빠지지 않고, 양쪽 집안사람들이 전부 나서서 두 사람을 맺어주려 하는데, 그걸 자네가 무슨 수로 갈라놓겠다는 건가? 집안도 친척도 재산도, 어디 한 군데 봐줄 데 없는 젊은 여자가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고. 이걸 그냥 두고 보란 말인가! 어림없고말고. 뭐가 자기한테 이로운지 제대로 안다면 아가씨가 살아온 물을 벗어나지 않는 게 좋아."
"영부인의 조카와 결혼한다고 해서 제가 그 물을 벗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은 신사고, 저는 신사의 딸이니까요. 그 점에서 저는 그분과 동등해요."- P415
"그럼 앞으로 약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절대로 그런 확답은 못 드립니다. 위협을 좀 당했다고 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약속을 할 수는 없죠. 영부인께서는 다아시 씨가 따님과 결혼하기를 원하시겠지만, 원하시는 대로 제가 약속한다고 해서 그 두 분이 결혼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나요? 그분이 절 사랑한다면 제게 거절당했다고 조카 분한테 청혼하고 싶어질 리가 없잖아요? 외람되오나, 캐서린 영부인, 이런 부탁 자체가 워낙 말이 안 되지만, 그처럼 말이 안 되는 부탁을 뒷받침하는 논거도 그만큼 말이 안 되네요. 그런 식으로 저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저를 아주 잘못 보셨어요. 평소 조카 분의 일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시는지는 제가 모르겠네요. 하지만 분명히 제 일에 관여할 권리는 없으십니다. 그러니 이 일로 부디 더는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P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