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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킬로스의 향연
  • 노생거 수도원
  • 제인 오스틴
  • 10,800원 (10%600)
  • 2009-08-28
  • : 659

지난번 <설득>에 이어서 읽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의 <노생거 수도원>이다. <설득>에서 여주인공 '앤'이 가족들과 함께 '바스'라는 곳으로 이사 가는데, <노생거 수도원>의 배경도 마침 바스여서 한 번 읽어봤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무슨 수녀나 수도사의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노생거 수도원> 역시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주인공의 사랑과 성장을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 '캐서린 몰런드'는 이제 막 18살이 된 아가씨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천방지축에 당시 여성들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우아함이나 차분함이 부족했다. 대신에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생각해 내는 등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가까운 지인이자 친척이었던 '앨런 부부'를 따라 '바스'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바스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처음에 캐서린은 크게 실망한다. 그러다가 무도회에서 '헨리 틸니'라는 신사와 만나는데, 틸니는 바스에 처음 온 캐서린을 친절히 대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캐서린은 헨리에게 반한다. 틸니 이외에도 캐서린은 앨런 부인의 옛 지인인 '소프 부인'과 만나고, 부인의 딸인 '이자벨라'와 아들인 '소프 씨'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특히 이자벨라와는 친구가 되는데, 사실 이자벨라는 그전부터 캐서린의 오빠와 썸(?)을 타고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순수한 캐서린은 이자벨라의 우정에 감격하지만 정작 이자벨라를 포함해 소프 씨는 그녀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겉으로는 캐서린을 생각해 주는 척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길 것을 강요한다. 이때 캐서린 눈앞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헨리 틸니가 등장하고, 상황이 크게 바뀌는데....

<노생거 수도원>은 밝고 순수한 캐서린이 사회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겪는 고난과 행복을 다루고 있다. 초반부에는 앞서 말한 사회와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후반부에서는 헨리 틸리를 따라 그가 사는 노생거 수도원에 가게 되면서 겪는 사건 사고들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반부를 재밌게 읽었다. 뭔가 사회 초년생이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되는 마음 고생을 보는 것 같았달까. 작중 순진한 캐서린이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의 말속에 담긴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꾸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헨리도 지적했듯이 캐서린은 사람의 이중적인 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순수한 만큼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거다.

그리고 이런 순진한 캐서린의 마음을 악용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자벨라와 소프 씨 남매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제3자인 내가 봐도 '불쾌할' 정도로 이중적인 모습으로 캐서린을 쥐락펴락한다(자기 필요할 때만 찾고, 필요 없으면 버림 ㅇㅇ). 장담하건대 캐서린처럼 처음 사회생활했을 때 크게 데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 상황에 PTSD가 와서 책상 뒤엎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읽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행히 캐서린은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 + 틸니 남매의 도움으로 점차 성장해 이들의 계략을 뿌리친다.

결과적으로 조금이나마 성장하긴 했지만 남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약간의 백치미(?)마저 느껴지는 캐서린은 모습은, 지금까지 나온 제인 오스틴의 다른 여주인공들과 확연히 다르다. 아시다시피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상대방의 의중을 재빠르게 간파하는 건 물론이고, 능숙한 말솜씨로 은근히 돌려까는데 선수이다. <설득>의 '앤' 역시 엘리자베스처럼 신랄하지는 않지만 상황 파악을 하면서 눈치껏 적절하게 행동한다. 심지어 <이성과 감성> 속 감성적인 '메리앤'도 주변 눈치는 볼 줄 안다. 하지만 캐서린은 이들과 비교하면 그런 능력이 조금 떨어져보인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캐서린이 너무 미성숙하다며 꺼려 하지만 내 생각엔 바로 이런 점이 저자인 제인 오스틴이 생각했던 바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엘리자베스나 앤, 메리앤도 처음에는 캐서린처럼 무척 순수했을거다. 그러다가 사회적 현실과 '사교'의 본질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캐서린'은 제인 오스틴이 창조한 캐릭터 중에서 사실상 '첫 번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캐서린을 보면서 우리는 제인 오스틴의 캐릭터의 가장 초창기 모습을 보는 거다. 실제로 <노생거 수도원>은 제인 오스틴이 어렸을 때(초창기 때) 썼던 습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죽기 직전까지 수정을 거쳐 사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할 말 다했다고 본다.


다만, 읽으면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첫째로는 후반부에 틸니 남매가 사는 노생거 수도원에 방문한 캐서린이 고딕 소설에 과몰입하는 장면이었다. 당시엔 고딕소설이 인기였을지 몰라도 관련 지식이 1도 없는 나로서는 캐서린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내가 아는 거라곤 그나마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뿐이었음...). 초반부엔 캐서린의 성장을 다루는 것 같았는데 뜬금없이 고딕 얘기로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조금 황당했다. 물론 이전에도 캐서린이 소설을 자주 읽는다는 묘사가 있었지만 설마! 진짜로!! 과몰입을 할 줄이야!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헨리 틸니라는 캐릭터와 급격하게 끝난 결말이었다. 작중 헨리는 굉장히 장난스러운 인물로 나온다. 순진해서 어벙하게 있는 캐서린을 놀리면서도 그녀의 서투른 면을 이해해 주고 친절하게 대한다. 이런 점 때문에 캐서린은 헨리에게 푹 빠지게 되는데 솔직히 나는 헨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취향 문제가 아니라 헨리의 하는 말이나 태도가 영 찜찜했다. 본인은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서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캐서린을 가르치려는 모습을 보이고, 여성들에 대해선 배려만 하지 그 외에는 딱히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무슨 사상가나 혁명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뭐랄까, 약간 자뻑(?)이 심한 사람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급박하게 끝나서 두 사람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작중에서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12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면 좀.... 물론 당시엔 긴 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튼, 개인적으로 헨리 틸니는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서 그저 그런, 밍밍한 남주였다^^;;;

결론적으로 <노생거 사원>은 미숙했던 캐서린이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다룬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제인 오스틴 세계관에선 보지 못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니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시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진지함이나 완벽성 면에선 아쉽기 때문에 유의하시길 바란다!​


헨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남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그다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군요"

"왜요?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은 사람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 것 같은가, 그리고 어떤 사람의 감정, 나이, 상황, 존경받는 생활 습관에 작용하는 동기는 무엇인가라는 점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요. 다시 말해, 그것은 나는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되는가,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는데 나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같은 의문들이죠"

(중략)

겉으로는 이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것을 바라는 이유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래 가지고는 남들이 어떻게 그 속을 알 수 있단 말인가?- P176
소프 씨가 혼자 쏟아내는 이야기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났다. (중략) 캐서린은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습관이 거의 없었으며, 남자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전반적인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프 씨가 끝없이 뿜어내는 장황한 자기 자랑을 참고 들으려니, 이 사람이 정말로 괜찮은 남자인가라는 의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P93
내가 남자답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군요. 내 머리의 영리함뿐만 아니라 내 영혼의 관대함을 입증함으로써 말이에요. 난 남자들 중에서 여성들의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무시하면서 경멸하는 자들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요. 물론 여자들의 능력이 충분하지도 예리하지도 않을 수 있어요. 혹은 열성적이지도 않고 예민하지도 않을 수 있고요. 그렇지만 여자들이 관찰력, 분별력, 판단력, 재능, 재치, 발랄한 상상력을 갖고 싶어 할 수는 있거든요. (중략) 몰런드 양, 나보다 여성의 이해력에 관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 생각에 여자들은 엄청난 이해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평생 자기 이해력의 절반도 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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