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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킬로스의 향연
  • 낙엽이 지기 전에
  • 김정섭
  • 13,500원 (10%750)
  • 2017-06-26
  • : 415

'낙엽이 지기 전에'는 부제목인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라는 부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그 뜻을 알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낙엽이 진다'라는 말 자체가 뭔가 절박함의 시적인 느낌마저 드는데, 어쨌거나 이 책은 감성적인 것과 별개로 유럽 역사상 가장 '불필요'하고 '끔찍'했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이다. 


저자인 김정섭 박사는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수학한 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정책학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국제 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나름 명망 있는 사람이며 현재 국방부의 고위공무원직으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이렇듯 국제 관계와 정책 면에서 일반인보다 더 다양한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썼던 책인 만큼 본 책은 무엇보다 '외교적' '정치적' 측면에서 1차 세계대전을 분석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1차 세계대전에 대해 알았을 때, 이 전쟁이 민족적 갈등(사라예보 사건과 슬라브, 게르만 민족 간의 갈등 등등)과 당시 국민의 전쟁에 대한 맹목성 때문에 전쟁이 발발했다고 생각했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유럽은 매우 평화로웠으며 제국주의가 팽배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된 지점이었고 그와 동시에 국민과 일부 군인들이 평화에 지루함을 느껴 몸이 근질근질했다는, 일종의 계획되고 어차피 터질 전쟁이었다는 관점이었다. 대표적으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군인들은 옳다구나 하고 전쟁을 신속히 수행했으며 국민 또한 이에 동조하고 전쟁을 환영했다는 사례들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 '낙엽이 지기 전에'라는 책을 읽어감에 따라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과 책임 등등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제목인 '낙엽이 지기 전에'는 전쟁 발발 초기,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출전하는 병사들에게 한 말이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가 여름 정도였으니 낙엽을 본다면 가을, 즉 전쟁이 몇 개월 만에 금방 끝나게 될 것이라 자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빌헬름뿐만 아니다. 전쟁 초기에도 많은 참전국의 대다수가 전쟁이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는 이번 전쟁이 평화로웠던 시기에 잠깐 등장하는 불꽃에 불과하리라는 낙관론적인 관점과 '먼저 공격하는 사람이 승자'라는 공격우위 주의 외교가 성행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의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등의 경제적, 외교적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발발할 때까지의 각국의 국제관계들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리고 이들, 특히 외교관들과 군부 관계자들이 대전의 시작점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며 최종적으로 대전의 발발 원인이 무엇인지 저자만의 독특한 시점으로 주장한다. 


현재 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해 수많은 주장이 있으나 저자는 가장 큰 원인이 다툼을 사전에 막을만한 국가 간의 적절한 소통, 한 마디로 잘못된 외교의 결과라 결론짓는다. 하지만 여기서 무엇보다 잘못된 것은 바로 국가 내부의 '민군 간의 불평등' 관계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민군 간의 불평등'은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관과 오직 군사적 임무를 담당하는 직업 군인 간의 의견이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진 상태를 말한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는 외교관들이 최선을 다해 전쟁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결국 공격 지상주의에 호전적인 군의 주장에 끌려다니는 무력함을 보였다. 군도 '방위'를 위해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격적인 면을 보였다해도 이들 역시 문인 외교관들처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별로 없었기에 그저 '방위적, 방어적' 차원에서 공격을 제창했다. 마치 겁 많고 두려움에 빠진 사람이 패닉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았다. 이런 상황을 외교관들과 문민들이 제때 막아내지 못했기에 외교로 끝날 수 있었던 분쟁이 전쟁으로까지 심화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무조건적으로 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1차 세계대전만큼 과정이 복잡했던 전쟁은 거의 없다. 그러나 '민군 간의 불평등'은 비단 세계대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뒤에 한반도 문제 편에서도 자세히 다루는데, 이러한 민군 간의 소통은 아직도 휴전국인 우리나라에서 1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온건한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 뭔가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해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만 단점이 있다. 외교적인 것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전투 과정이나 전개 양상은 별로 없고 앞부분을 주로 다루고 있으므로 전술을 기대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대신에 외교에 관심이 많거나 세계대전을 좀 더 알고 싶은 초심자들에게 추천해 드리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많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당시의 문제는 민간 지도자들이 군부의 전쟁 주장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다녔다는 데에 있었다.- P305
독일의 민간지도자들이 군부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했다는 점이다. 민간 각료들은 총참모부의 구상이라면 일단 권위를 인정하고 문제제기 하는 것을 삼갔다.- P303
공격우위라는 잘못된 믿음, 위험을 계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오만, 위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약함 등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었다. - P310
내가 하는 조치는 방어적 목적이고 상대방이 하는 것은 공격 의도로 해석했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P237

갑작스런 동원 명령을 받은 러시아의 시골 마을, 프랑스의 남동부 농촌은 멍한 충격에 빠졌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압도된 채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부인들은 남편의 팔에 매달렸고 아이들은 엄마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 따라 울기 시작했다. - P238
민과 군의 지도자가 도식적이고 이분법적인 역할 분담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양자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하면서 전략을 함께 강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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