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 때문에 중학교 3학년 때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고. 중학교 1학년이거나 2학년 즈음의 내 습관적 행위가 이어졌던 시기였을 것이다. 학교가 있는 계동 골목을 내려와 당시 유일한 대형서점인 종로서적으로 향하는 것이 하나의 생활패턴이었다. 정말 오래된 시절의 얘기지만, 결코 오래전 얘기로 기억되지 않는 얘기다. 어쩌면 그 시절의 책 읽기가 내 언어와 태도와 행위를 구성했는지도 모르겠다.
막스 뮐러의 책은 아마도 아껴 모은 돈으로 한권이라도 더 읽기위해 값싼 문고본으로 서너 권씩 구입해 읽었던 책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판본이나 제본형식 등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춘기 소년에게 어떤 감상을 남겼을 법하지만 그조차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세상 얘기들이 마구 전파되던 시절이 아니어서 순박한 소년에게 진실의 사랑이라거나 순진한 사랑이라는 사랑에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 유별한 사랑의 담론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마리아와 화자와의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남긴 상실에 대한 감상이 전부였을 것이다.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한 뼘만큼 성장했지만 어느 정도는 여전히 어린아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화자가 말하는 “어린 시절이라는 고요한 신비의 숲”에 대해 더욱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자신이 바로 그 고요한 신비의 숲 속에 있었으니 알 턱이 있었겠는가? 요즘 부쩍 소년기의 시간이 자주 떠오른다. 어쩌면 그 때 온 세상이 나의 것이었으며 온 세상에 속했던, 영원한 삶을 살았던 시간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이다. 이 책 『회상(Memories-A story of German love)』의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지?”하는 화자의 물음이 괜한 수다를 떨게 했다.

이제 막스 뮐러의 “순수하고 깊은 사랑, 온 세상을 품는 사랑”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큼의 생의 풍파를 겪은 듯하다. ‘좋아하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옳지 않다.’ 라는 낯선 규칙과 후작 부인은 남(他人)이고 신분도 높은 사람이니 더욱더 어머니에게 하듯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행위는 바른 행동이 아니라는 예의, 이것을 깨닫는 순간, 아마 어린아이로서의 세상은 종말을 고했을 터인데, 나는 그 순간에 해당하는 정확한 장면의 기억이 없다. 그러니 내겐 순수한 사랑이라 말할 것이 없고, 언제나 이 순수한 인간애로서의 사랑이 아닌 변덕스럽고, “뜨거운 사막 위에 뿌려진 빗방울처럼 스스로 소멸”하는, 또는 “타오르다 꺼지고 마는 불길로 온기를 주기는커녕 연기와 재만” 남긴 이기적이고 의심 많은 사랑에 대한 기억만이 주렁주렁하다.
여기서 사회적 정체성이나 존재 자체니 하는 그 어떤 윤리적 삶의 태도 같은 걸 길어 올릴 생각은 없다. 마지막 회상까지 여덟 번의 회상의 기록이 분리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의 순서에 따른 기록이기는 하지만 각 회상(回想;memory)에는 분명한 주제가 있다. 「첫 번째 회상」에서 화자가 다 잊은 어린 시절의 기억 중 떠올릴 수 있는 세 가지를 말 할 때,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와 달리 내겐 어머니가 들려주고 가리켜 보이던 별자리와 성스러운 노래 소리가 없는 까닭이다. 어머니는 이기적인 분이셨고, 자식들에게 냉엄한 분이었다. 내겐 화자처럼 머릿속까지 스며든 어머니 손에 들린 한 다발의 보라색 꽃 싱그런 향기를 지닌 오랑캐꽃도 없으며, 별에 감탄하며 어머니 품속에서 잠들었던 어렴풋한 기억도, 영혼을 속속들이 파고든 경쾌하고 성스러웠던 찬송의 노래 소리도 없다. 아마 이러한 것들이 한 인간의 품성을 만드는데 귀중한 것들일 것이다. 화자의 고귀한 품성, 인간애에 대한, 모든 존재의 우주적 얽힘에 대한 감수성은 이렇게 스며든 것일 게다.
“남이 뭐예요? 나를 예쁘게 봐 주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라도 무조건 다 좋아하면 안 되는 거예요? 좋아하는 건 괜찮단다. 하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옳지 않아.“
- 「두 번째 회상」, 28~29쪽
「두 번째 회상」은 화자가 여섯 살 쯤 부모와 함께 후작(marquess,侯爵)의 성을 방문했던, 자신도 모르게 후작 부인에게 입맞춤을 함으로써 버릇없는 아이로 질책 받던 기억을 술회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경계 없는, 나와 너라는, 사회적 신분이라는 분류체계가 스며들지 않은 아이에게 그 오염된 질서와 규칙이 처벌로 가해졌을 때 아이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너는 봄철에 벌써 꽃잎을 뜯기고 날개의 깃을 뽑히는 구나.”라고 탄식하는 이의 아쉬움은 “생명처럼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있던”, 존재의 가장 깊은 바탕인 사랑에 대한 침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이의 사랑의 샘은 이때부터 막히고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메말라간다. 더 이상 온 세상을 품는 사랑은 사회가 요구하는 예절과 윤리 규칙 등이라는 이름으로 무례이자 범죄라고 가르친다. 그리고는 세상은 작열하는 격정, 타오르는 정열, 요구하는 사랑만을 사랑이라 말한다.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제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푸념하면서 거듭 첫 사랑, 첫 경험의 강렬함을 쫓는다. 그러한 것만을 추구하는 사랑을 솔직함, 자기존엄의 욕구라고 정당화한다. 사랑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내겐 고독만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세 번째 회상」에서는 사물에 대한 소유, 무엇인가 소중한 물건을 진정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조용한 사색이 흐른다. 누군가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황금 팔찌가 해낼 수 있다면 소년은 당당하게 그것을 내어줄 수 있다. 내 것과 남의 것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생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기억해 낸다. 이 회상에는 타인의 아픔, 고통에 대한 나눔의 감수성이 백작 지위를 가졌으며, 심장병을 앓고 있는 후작의 딸 마리아와의 최초의 기억으로 옮겨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마리아가 형제자매들에게 반지를 나눠주는데, 마지막 하나의 반지가 남았을 때, 혈육이 아닌 화자에게 반지를 빼 건넨다. 이때 화자는 그 행위가 그녀의 희생임을 안다. 화자는 반지를 다시 돌려주며 말한다. “이 반지는 날 주지 말고 그냥 그대로 가지고 있어, 네 것은 모두 내 것이니까.” 화자는 세상이 강요하는 규칙들에 저항한다. 사랑이라는 태곳적 본래의 감수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속화 된, 아니 사랑이란 말이 너무 오염되었기에 우리는 ‘순수한’ 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여야만 하게 되었다. 이미 사랑은 순수한 것이어늘.
「네 번째 회상」에서는 기억 속 시간이 많이 흘렀다. 대학생이 된 화자는 방학시즌 고향으로 돌아온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한다. 후작의 성(城)에서 어린 시절 함께 놀던 공자(公子)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성주가 되고, 서로 다른 이념과 사회관계로 더 이상 친밀한 벗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성 안에는 거의 날마다 이름을 불러보고 그리워했던 마음 깊이 남아있는 사람이 살고 있다. 아마 화자는 마리아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 영혼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인 모양이다. 편지가 전해진다. 마리아가 화자를 초대하는 그토록 갈망했던 영혼으로부터. 재회, 재발견이 주는 기쁨과 만족감이 가득한 회상의 기록이 이어진다. “우리는 옛 친구잖아요”라는 말에 화답하듯 “사람들은 숲 속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살고 싶어 하죠. 나뭇가지 위에서 만나 서로 소개하지 않고도 함께 노래하는 관계가 되고 싶어 하죠.” 나뭇가지 위에서 함께 노래하는 새들의 그 다정한 정경을 떠올려보며 그 어울림, 사랑의 모습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상념을 펼쳐보기도 한다.
이후 「다섯 번째 회상」에서 「마지막 회상」의 기록들은 마리아와 화자의 봄날 아침처럼 맑고 신선한 영혼들의 고귀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아마 사랑의 정수(精髓)일 것이다. 이미 이 세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사랑, 그러나 속마음 숨기라고, 그렇게 숨기는 일이 예의요, 분별력이며, 현명함이라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회는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는 것을 억압한다.
온갖 강제로 억압되어 실종된 사랑, 그 잊어버린 사랑이 매슈 아널드의 詩 <파묻힌 생명> 속 생명의 강이 되어 화자의 쓸쓸한 마음을 대변한다. 화자는 이 시(詩)가 수록된 시집을 마리아에게 전한다. “나의 고백이었다”고, 장시(長詩)인 까닭에 세 연(聯)만 옮겨본다.
지금 우리 사이에 가벼운 농담 오고 가지만
보라, 눈물 고인 나의 눈을
이름 모를 슬픔이 가슴을 울리누나.
그렇다! 그렇다! 우리는 안다,
농담을 주고받을 줄 알고
미소도 지을 줄 안다.
그러나 이 가슴에 무언가 있어
그대의 농담 안식이 못 되고
그대의 미소 위안이 못 된다.
.......中略.....
예견된 운명, 변덕스러운 아이가 되어
때로는 장안에 마음을 빼앗기고
때로는 온갖 싸움에 몸을 던지고
본성마저 변하는구나.
그러나 운명은,
변덕스러운 장안 속에서도
순수한 자아를 지키고
존재의 법칙에 순응케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생명의 강에 명령하여
우리 가슴 깊은 곳에 파묻혀 흐르게 하였구나.
그래서 인간의 눈은
파묻힌 그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장님 같은 불안 속에서 생명의 강과 함께 정처 없이 흐르며
영원히 떠도는 것 같구나
........後略...........

【꾸밈 없는 마음, 진실의 사랑, 사랑의 추억 등 꽃말을 지닌 보라색 오랑캐꽃】
“우리의 불완전한 언어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진짜 이름을 찾아내야 한다.”
- 「마지막 회상」, 145쪽
마리아와 화자의 정기적 만남은 심장병을 앓는 마리아의 생명에 위험신호를 발하였는가보다. 후작 가족의 주치의로부터 자네 탓이니 그만 찾아가라는 완곡한 부탁을 받는다. 인간에게 위안과 사랑을 앗아간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 한 생명을 위한 고귀한 보호라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화자가 마리아를 설득하는 순수한 인간애로서의 사랑, 나는 너의 것이며 너는 나의 것이라는 공상적 사랑의 설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것뿐이라며, 속속들이 이해가 되는 인간처럼 우리를 냉담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는 논리에는 내 협소한 경험이 거부할 말을 찾지 못한다. 사랑에 무슨 윤리적 합리주의 잣대를 갖다 댈 수 있겠는가.
“신은 너에게 고통을 주셨지만 또한 나를 너에게 보내 그 고통을 나누게 하셨어. 그러니 너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어야 해. 우리는 아픔을 함께 겪어야 해.” 이 말이 화자를 향한 사랑의 고백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마리아로부터 마침내 “나는 너의 것이야. 신의 뜻이라면, (...)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줘,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너의 것이야”라는 생의 마지막 인사인 편지를 받는다. 한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 사랑하다 잃어버렸음을 감사하게 하는 이 짧은 이야기에서 이제 나는 주렁주렁 매달린 내 사랑의 기억들을 재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좋아했을 남들과 연결되었던 기억에서 사라진 어린아이인 나를 찾는 걸음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온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그 순수의 시절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