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문지문학상〉 후보작들을 ‘이 계절의 소설’로 세 편씩 선정해 소설선집을 꾸려 펴내는 《소설보다》를 매 계절 읽으며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문득, 아니 새삼스레 알아차렸다고 해야 할까? 이 선집에는 평론가와 작가의 인터뷰들이 해당 단편작품에 이어 실려 있다. 그 글들을 읽으며, 평론가들의 세심하고 주의 깊은, 또한 다정하지만 엄격한 시선들을 살필 수 있었다. 특히, 해당 작품을 떠나 작가의 다른 장소와 지면에서의 지나가듯 언급한 말(문장)들 조차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해가려는 노고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이 선집은 탁월함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시대의 젊은 소설가들과 그네들의 작품 뿐 아니라 문학평론가들의 독해 관점을 엿보는 작은 통로로서 독자 대중과 평론가를 이어주는, 그래서 그들과 독자들이 연결되는 가교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은 말하고 싶었기에 이렇게 시작해 보았다.
소설의 내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즐거운 나라」를 쓴 박민경 작가의 예전 인터뷰 내용 “코끼리를 좋아합니다. 눈은 온순한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를 상기하며 이소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을 소설 쓰기에 대한 소설, 예술가 소설로도 읽을 수 있었음을 말할 때, 작가의 조심스러움만큼이나 독자의 읽기에도 다정한 주의 깊음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신나라’가 소설 첫 문장에 타율적으로 등장할 때, 그녀의 “나 좀 살자!”라는 절규의 강렬함은 여느 코믹한 온라인 숏컷의 한 장면처럼 가벼운 흥미로 다가왔다. “짐승 같은 괴력을 발휘하며 저항하는 거구의 여성이 담겨있는 충격적 영상”은 이미 그 후의 소설 속 설명 없이도 이미 독자의 상상 속에서는 빠른 인터넷 유포와 확산을 이어가며 희화화되는 과정을 그릴 수 있다.
‘살자녀’로 불리는 밈으로 폭발적으로 소비되는 이 사회 저변의 욕망, 인간들의 변하지 않는 본성들이 배경처럼 빠르게 흐른다. 사실 나는 거의 눈이 지면(紙面)위를 날아다닐 정도로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에 빠져 읽었다는 것은 내게도 오직 큰 체격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거부하는 부당성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실제로, 혹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정상성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암묵적이고도 끈질긴 배제”의 몸짓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있는 소설들에서 나는 가벼운 경쾌함을 느끼고 있는데, 그것이 소외나 배제의 고통이나 고뇌라는 바다에 푹 절어 있는, 그 찰랑거리는 수면의 가벼움에 올라 타는 즐거움에 빠지면서도 바로 그 물 속에 깃든 이 세계의 무거운 속살을 직면케 하는 웃음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된다. 경박함의 역설이랄까? 마치 소설 속 살자녀 밈이 “반복될수록 가벼워져 멀리 흩어짐”으로써 마침내 누구든 읽을 수 있는 것이 되는 역설처럼 말이다. 신나라의 절규가 왜 터져 나왔는지, 그 절규는 우리들 사회의 어떤 모습이 만들어냈는지를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서 발견해내는 여정이 될 것 같다,

「측은지심」의 남궁지혜 작가는 홍성희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능청스러움이 제 안에서 좀 더 커졌으면 해요.”라고 말하지만 이 작품은 이미 유쾌한 능글맞음이 차고 넘쳐흐른다. 소설은 코인으로 인생 말아먹고 “사람다운 채팅봇 노릇”으로 로맨스 스캠 알바를 하는 ‘나’라는 인물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심리적 육체적인 권력관계의 자리 변동을 관찰케 하는, 그로부터 인간성, 혹은 윤리성의 생각으로 이끄는 작품이다. 소설의 소재인 스캠(scam)사기는 캄보디아에서의 한국인 피살사건으로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큰 관심을 유발했던 악랄한 신종 범죄이다.
주인공의 대사나 행위가 하도 유쾌하게 그려져서 마치 징글맞은 범죄 현장이 희극같이 느껴졌는데, 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는 남의 불행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을 뜻하는 제목 측은지심처럼 주인공 ‘나’라는 인물이 거짓과 기만의 행위를 하며 이러한 자신의 얄팍한 마음을 정당화하는 인간성을 표현하는 이 말을 중심으로 관찰토록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캠 범죄에 가담한 인간들의 모순된 위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양상과 이들에게 범죄의 표적이 되는 사람들, 이 범죄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지를 통속적으로 그 구체적 조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 “사랑한다면서 고추 안 보여주는 심리는 뭘까”라는 이 발칙한 물음은 피해자가 될 표적에게 젊은 여성인 채하는 채팅봇을 연기하여 기만한 뒤에 표적으로부터 받은 고추 사진과 채팅 글들로 위협하여 재산을 갈취하는 ‘나’가 수입원으로 낚아채지 못해 아쉬워하며 표적의 심리를 고민하는 구절이다. 측은지심을 곱씹으며 이 인물을 따라가는 내내 그 어리숙함에 내재된 윤리적 불모성과 정당화의 임기웅변 등 오늘 우리들 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소위 AI시대의 미세노동의 기만적 실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 같다.
남궁지혜 작가의 「측은지심」이 스캠 범죄의 현장 속에 있는 인물을 통해 진짜와 가짜, 진심과 위선, 신뢰와 기만의 경계를 오가며 물음을 던졌다면, 구소현 작가의 「화이트 데이」는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 부족한 오늘의 사회에서 가짜를 진짜라고 믿기를 스스로 요구하는 현실을 깊숙이 찌른다. “하늘의 날개가 되기로 약속한 자는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사이비 종교 약속천익사원이 신도 착취와 사기, 살인교사, 불법 의료행위로 고발되며 세상에 알려지자 교주가 죽음으로써 해체됨에 따라 살아남은 어린 아이들의 이후 삶의 양태를 다룬다.
소설은 성장한 세 인물의 삶의 현실을 쫓는데, 이들은 모두 어딘가에 빠져들거나 중독된 삶을 살아가며, 일군의 사람들이 이미 해체되었던 약속천익사원에 다시금 몰려드는 상황들은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신뢰의 실종을 이루는 원인들을 생각하려는 듯하다. 아주 최근에 나는 이 맹목적 믿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이 최초의 무조건적, 타율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자율도 성립할 수 없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즉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란 것도 모두 이 맹목적 믿음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처럼 말이다. 거기에 무슨 이성,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있겠는가. 어쩌면 소설 속 재원, 승현, 연주가 자신들이 어린시절 믿었던 새(鳥)인간의 종교가 비록 가짜임을 깨달았더라도 그것이 진짜라고 믿으려하는, 그 이유에 대한 탐문은 “확신에 가득 찬 눈을 볼 때마다 무서웠”다는 구소현 작가의 말처럼, 그저 믿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음을 포용하게 된다.
현실의 안과 밖 어디에도 편히 머물 수 없는 오늘의 우리들이 겪는 무력감이 바로 이러한 맹목성의 믿음이 우리들의 자리, 숨 쉴 자리를 마련해주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안간힘”을 쓰려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이들 거짓된 믿음의 진짜를 이해하려 든다면 바로 그 행위가 삶의 평온, 제자리를 돌려주는 것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각 작품들을 통해 이 세계를 읽는 관심사와 지향 가치까지 드러내 보여준 하혁진, 홍성희, 이소 세 분의 평론가들과 신선하고 유쾌한 가운데 진지함까지 아울러 지펴 낸 세 작가에게 정말 즐거운 독서였다고 조용한 마음의 응원을 보낸다. 아직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의 여섯 작품이 남았지만 이번 여름 호에서 문지문학상 수상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P.S> 남궁지혜 작가 작품들의 몸의 정동에 대한 경향성을 중심으로 [측은지심]에 대한 단상의 글을 별도 작성하였습니다. 참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