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청(靑)시대를 살았던 문사(文士) 포송령(蒲松齡,1640-1715)이란 인물에 대한 호감이 읽어나갈수록 크게 자라난 책이다. 천재로 불렸으나 일평생 계속된 과거 응시의 낙방에서 오는 시름을 덜어내고 “혼자 술잔을 기울여가며 붓끝을 놀려” 세상에 분개하고 부조리한 풍속의 해악을 써내려가는 이 고분지서(孤憤之書)는 그가 마음을 기댈 유일한 것이었을 게다. 이 작고 아담한 책은 주워들은 민담, 자신의 경험담을 합쳐 죽기 직전까지 수십 년간 모은 포송령이라는 인생 자체이기도 한 일생의 자취인 대표작 『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 아주 작은 분량인 열편의 이야기를 골라 담은 발췌 선집이다.

【1776년 출간,『요재지이(聊齋志異)』판본】
요재(聊齋)는 포송령이 사용한 서재의 이름이자 호(號)이기도하니, 요재에서 또는 요재가 기록했음을 뜻하고, 지이(志異)란 기이한 일이라는 뜻으로 책의 성격을 의미한다. 즉 요재지이(聊齋志異)란 ‘요재에서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책의 표제인 『천녀유혼』은 동명의 다소 변형된 내용의 영화로도 알려진 원제 ‘섭소천(聶小倩)’의 번안 제목이다. 소천이라는 예쁜 처녀의 소곤거림 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책의 서문 격으로 「포송령 자서」가 실려 있는데, 왜 그가 이렇게 기이한 이야기를 모아 써내려가야만 했는지, 신선과 귀신들의 이야기의 흥취에 몰입했는지에 대한 쓸쓸하면서도 당당한 변명을 마주하게 된다.
“서리에 놀란 겨울 참새는 나뭇가지를 껴안아 보지만 아무런 온기도 느낄 수 없고.
(...) 고적한 나는 난간에 기대어 감상한다.
진정 나를 알아줄 이는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신들뿐이런가?”
환상의 세계에서나 자신의 기개를 마음껏 뽐낼 수 있음에 삶을 지탱해낼 수 있었을 고독한 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있는 「동전 점」의 주인공 하상이라는 인물은 주변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거듭 실패하고야마는 인물인데, 아버지, 즉 ‘껍질 버리는 태위 나리’라는 낭비벽과 방탕한 조상의 악행으로 후손인 그가 그 악업의 화가 종결되는 쉰여덟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운으로 바뀐다는 점(占)의 이야기다. 욕심없이 분수를 지켜내어 마침내 한평생 나쁜 짓하고는 인연이 없었으나 내세의 복이 무궁무진 할 거라는 인물의 해피엔딩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빈낙도의 삶이 포송령의 삶과 닮아 있어 더욱 아릿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작가의 삶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로 「신선 세계에 다녀 온 동안」의 주인공 역시 재주가 당대 제일이라고 일컬어지지만 시험만 보면 낙방하는 불운한 서생 가봉치가 있는데, 내적 훌륭함의 미덕과 부귀영화와 공명이라는 두 갈래 삶의 길을 경험하며 마침내 “부귀영화의 장이란 한갓 고통이나 따른 지옥 땅에 불과한 것을 알겠소.”라며, 세상사 공명이란 것의 휘장 뒤에 있는 인간세태의 더러움을 은연히 비판하기도 한다. 각 이야기들의 끝에는 “이사씨(異史氏曰)는 말한다”며, 포송령 자신의 의견, 즉 이야기가 지닌 교훈이나 비판적 의지를 펼치곤 하는데, 이 이야기의 끝에는 “가난이 인간에 미치는 해악이 실로 적지 않다”며, 물질적 삶의 해악을 꿰뚫어 보기도 한다. 4남1녀의 가장이었던 포송령으로서는 이렇다 할 직위나 부를 쌓지 못한 처지고보니 이러한 가상의 이야기로나마 자신의 불운을 다독일 수 있었을 것만 같다.
상상의 이야기 속에서 현실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태를 전도시켜 자신이 이루지 못하거나 저지당했던 고통의 실체를 뛰어넘어보는 즐거움은 그의 말처럼 마음 기댈 유일한 흥취였을 것이다. 「저승도 무전 유죄?!」는 층층이 사슬처럼 이어져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관료조직의 부패상을 고발하는데, 저승 서열의 최상층인 옥황상제의 감찰에 의해 염라대왕부터 저 말단 옥사장, 그 졸개들로 이어지는 탐욕상에 대한 판결문은 오늘 한국사회의 관료조직 도처에 스며있는 더러움의 일목요연한 기록이라 하여도 될 것만 같다. “가난한 귀신이야 더욱 안중에도 없었겠지. 죄 지은자의 죄를 죄 없는 자에게 덮어 씌워 조작하는 짓거리”에서부터 “원숭이처럼 교활한 간계나 부리는 자를 제멋대로 발호하도록 내버려두고 오로지 뇌물이나 받아먹고 국법을 어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니 진정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따로 없구나!”에 이르는 탐욕의 사슬은 인간사회에서 사라질 수 없는 것인 모양이다. 4백 년 전 청나라의 사법관리나 21세기 한국사회의 법(法)과 검찰(檢察)관리들의 행태가 복사한 듯 동일한 양상을 보이니 말이다.

【민음북클럽 에디션】
「비둘기 애호가」라는 장유령이라는 공자의 이야기는 무지하고 옹렬한 인간들에게 제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인들 고작 자신들의 입속에 처넣는 맛밖에 알지 못하거나, 허튼 예의로 가장된 볼품없는 무식함뿐임을 신랄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지극한 정성을 들여 비둘기를 돌보는 장공자는 자기 살을 베는 듯 아까운 희귀종 두 마리를 아버지 친구인 고관대작에게 선물한다. 후일 장공자가 그 고관을 만나 “저번에 보내드린 비둘기가 마음에 드셨는지요?”라고 묻는다. 그 고관대작 왈, “응, 살이 통통하게 쪄서 맛이 괜찮던 걸”, “삶아 잡수셨단 말입니까? 그건 세간에서 말하는 ‘단달’이란 희귀한 새에요.”, “맛은 그다지 대단치 않던데.” 이를 말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섭공호룡(葉公好龍)”, 겉으로만 좋아하는 척, 실제 그 내용과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부하지 않는, 고작 한 때 시험의 결과로 평생을 놀며 호가호위하는 것들의 무지가 이 사회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가. 아무튼 이 무지라는 병은 인간세계의 가장 더러운 악이리라.
표제작 「천녀유혼」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한평생 아내 말고는 다른 여자는 없다”를 신조로 살아가는 품행이 단정하며 자중하는 영채신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과거시험으로 인해 방 값이 급등하자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찾아 든 곳이 주인 없는 절간이다. 영생은 먼저 머물고 있던 연적하라는 서생을 만나자 그곳에 거처할 것을 결심하고 머물기로 한다. 마침내 잠을 청하는데 미모의 여인이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 “달빛이 너무 좋아 잠을 이루지 못하겠어요, 당신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네요.” 햐~아, 영생은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도리어 이렇게 꾸짖는다. “한 번의 실수로 염치와 도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싶은 거요?” 여자는 황금덩어리를 그의 이부자리에 놓으며 다시 한 번 유혹한다. “의롭지 않은 재물로 내 호주머니를 더럽히려 들다니!”, 그렇게 요괴의 시험에 빠지지 않아 죽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성인(聖人) 납시셨다. 물론 죽음을 피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영생은 군자 소리를 들을 만하다.
다음날 아침 동쪽 승방에 묵었던 서생이 한 밤중에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다음 날 밤 여자는 다시 찾아들어 영생에게 자신이 유혼이 되어 떠도는 사연을 말하고 버려져 묻힌 곳에서 뼈를 거둬 조용한 곳에 묻어준다면 그 은혜는 새 생명을 주는 거와 다름없음을 하소연한다. 영생은 집으로 돌아와 거둔 뼈를 정성들여 묻어준다. 이 유혼(幽魂)의 이름이 ‘소천(小倩)’이다. 소천이 영생을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며 영생의 노모를 섬길 것을 제안한다. 그 후로 이야기는 일사천리다. 영생은 과거에 급제하고 소천은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 둘을 낳고 해로했다는 포송령이 꿈꾸는 미인과 함께하는 삶, 공명을 누리는 삶, 정겨운 가정생활은 이렇게 상상에서 화려하게 자라나 그의 마음을 풍성한 꽃밭으로 만들어주었을 게다. 포송령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그 상상의 세계들은 현실의 가치관, 시선들이 전도(顚倒)되어 그려지곤 한다. 「못 생길수록 출세하는 나라」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랄 수 있겠다.
이는 그가 “오호라, 출세와 부귀영화는 *신루해시(蜃樓海市)로나 가서 찾아야 할까보다!”라고 말하듯, 그를 거부하는 현실세계에 대한 냉엄한 비판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환상의 세계를 거니는 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시원적 소망의 심연들을 건드린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그 누구들처럼 그리 밉지 않고 등을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아마 그 까닭은 우리들이 잃어버린 경험지로서의 이야기,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소박한 진심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이 무너지고 개인이 고립된 오늘의 세계에서 포송령의 이야기들은 우리들 얼어붙은 삶의 추위를 녹여내 준다.
이 환상의 이야기들은 무언가를 분석하고 증명하려들지 않는다. 권태롭고 얼어붙은 삶을 녹이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쳐 삶이라는 심지를 은은히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대를 초월하여 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사회학적 음화(陰畵)라는 벤야민의 이야기에 대한 정의가 바로 포송령이 모은 이 이야기들일 것만 같다. 부쩍 이런 정말의 이야기들이 그리워지는 즈음이다. 전도된, 세계의 음화같은 잃어버린 경험지로서의 이야기 말이다. 지금은 품절되어 요재지이 전권을 구입할 수가 없다. 한 질 전체를 옆에 두고 쉬엄쉬엄 읽고 싶은 책이다. 돈 대신 맞바꿀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요재지이』에서 한 편 마음에 담아 들려주면 아마 들은 이들의 표정에 피어나는 평온한 미소와 함께 공짜 커피도 마실 수 있을는지.
--------------------------------
*신루해시: 교룡이 숨을 내쉬면 누각이 만들어지듯, 빛의 반사작용으로 인해 바다나 사막에 나타나는 환상으로 ‘환상의 세계’를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