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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 생 마음
  • 김복희
  • 10,800원 (10%600)
  • 2026-03-05
  • : 3,450

시(詩)의 시대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시대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시는 사라져버린 적도 없고,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시를 읽기에 적절한 시대가 아니게 되었을 뿐일 게다. 시 비평가 조연정 시인은 『시 보다 2025』에 실린 「보조 영혼」, 「요정의 마당」 등 김복희 시인의 시를 말하는 문장 속에서 “회한에 얽매이고 불행에 저당 잡혀 조금은 위축된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삶을 들여다보는, 그 삶의 표면과 속살을 샅샅이 눈으로 생각으로 매만지며 관찰하여야만 하는 시 읽기는 더욱 곤혹스러운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서 삶 자체인 시는 더욱 읽어야 할 시대의 언어라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시의 본질 상 “도래할 언어의 순간에 먼저 도착”해 사람들을 기다리는 언어이고, “동시대의 감각을 발명하는 것”이기에 그 낯선 감각이 사람들의 접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바로 그 고민 하는 시간을 참을 수 없도록 몰아세우는 것이 이 시대의 실상이라는 점이 시의 시대가 사라져버렸다는 곤란의 변(辨)일 것이다. 김복희 시인의 시는 바로 이러한 오늘의 우리들에게 시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시를 읽는 영혼들에 마음의 양식을 함께 고양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다가온다. 시인의 시에는 귀신, 요정, 소인(小人), 새와 같은 작은 것들, 비인간 존재들이 도처에서 출몰한다. 이를 문학비평가 강동호 교수는 “작은 것의 큼을 드러내며 존재와 삶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발견하는 미묘한 기쁨으로 충만”하여, “결코 단일한 의미로 단순화될 수 없는 세계의 다차원성과 그 뜻밖의 광활함을 마주”하게 된다고 김복희 시인의 시작(詩作)들을 말한다.

 

또한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임유영 시인은 “말의 몸집을 끝없이 부풀리는 언어”, 그렇게 “커진 말을 뒤집어 까서 이것들 속에 축적된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김복희 시인의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을 시인은 「생 마음」에서 백지에 놓기 위해 백지부터 만들기로 한다. 그때 그 재료인 필요한 것으로 “티끌 없는 오전 / 진솔 속옷 진솔 양말 / 온갖 말 가르쳐준 이들 /생각처럼 들어와 / 피도 땀도 함께 흘려주는 것“ 이라고 한다.

 

........(前略)

내 피 내 땀

스미는 것

 

백지에

 

생 마음은 독한 것이군

 

백지를 가리키며

말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넌지시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생 마음은 독하지만 정한 것이라고

 

- 「생 마음」, 『생 마음』 60~61쪽에서

 

나는 이 시를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도래하고 있거나 도래하는 낯선 감각의 언어를 배운다. 그래서 익히 알고 있는 계절의 바뀜을 뜻하는 ‘환절(換節)’이 “짧지만 강렬하게 느껴지는 기묘한 상태”라는 새로운 감각을 내 몸에 기입한다. 그리고 시 속 작은 것들 - 새, 요정, 소인 - 인 이 젊은 시어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인이 발표했던 「새 입장」 속 시구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사는 희망은 키가 작다. 발이 작다. 손이 작

다. 그래도 성인용 속옷을 입는다. 어느 날 희망은 자신의

몸이 커졌다 생각했다. 희망이 발을 쿵 구르자 현관 계단

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에, 희망은 드디어 내가 소인국

에 왔군 올 곳에 오고야 말았어 흥분했다.

 

.............(中略)

 

더 커질 것을 알기에 더 커져도 되는 곳, 희망에게

작은 손 작은 발의 소인들 더 작아져도 되는 곳,

희망에게

- 「새 입장」, 『보조 영혼』, 110쪽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이 스스로 커졌다는 망상에 잠기자 현관 계단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 역설적 장면은 그것이 망상임을 자각하게도 하지만 바로 이 자각으로 그 작음을 인식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가능성, 희망은 더 작아져도 되는 희망이 된다. 시인의 언어에는 그 어떤 윤리적 잣대가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있는 사실 그대로에서 지금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듯하다. 그것은 샅샅이 관찰하는 것, 작은 상대라도 더 유심히 살피는 감각 그것일 게다.

 


장시(長詩)라고 할까, 우화라고 할까, 아무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옛 이야기도 있는데, 그 제목 또한 여느 시처럼 기묘하다. 「환절, 호랑이 사람으로 / 돌아오지 못하는 기록」이다.

 

...........(前略)

 

저는 환절기가 되면, 아, 내가 호랑이 되어 개 백 마리를 죽일 결심하고, 마침내 고민 없이 아흔아홉 마리를 죽이고 사람도 죽인 호랑이 되어 이제 다시 사람 될 길 없겠네. (...) 매일매일 내 기분 내 심정 내 상황 내 허기, 호랑이 고개 넘듯 뛰어넘고 싶어집니다. (中略) 뉘우침 없이 내 서러운 것만 생각할까요. 기구하다 하며 아득해할까요. 그럴 수 없기에 짧은 틈을 놓치지 않으려 배를 깔고 엎드려봅니다.

- 「환절, 호랑이 사람으로 / 돌아오지 못하는 기록」, 『생 마음』, 69~79쪽에서

 

나라를 온통 자신의 허기 채우기 놀음으로 구렁텅이로 몰아넣던 인간이 떠오른다. 배를 깔고 엎드려 그 인간은 그 강렬하고 짧은 환절의 시간에 과연 제 서러움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 괘씸한 생각이 내 마음을 더럽힌다. 아 털어내고 날 것의 내 마음, 생 마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삶이란 아쉬움투성이 같다. 시와 시의 제목이 마치 선문답처럼 대조를 이루는 몇몇 시들은 그 자체로 낯설어 힘겹게 읽어가는 독자에게 신선한 재미도 불러일으키는데, 「춘향이 집 가리키기」, 「목마른 송아지 우물 들여다보듯」과 같은 시들은 잘 알려진 관용적 의미를 앞세워 읽어나가며 시어의 감각을 학습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前略)

 

잠들어 깨어났다

모르는 여자 남자가 우리 딸 왜 벌써 일어났느냐고

목마르냐고 차가운 물 한 사발을 내밀었다

찰랑찰랑 물 코 닿을 듯 들여다보았으나

묘하게 닿지 않는 것이었다

- 「목마른 송아지 우물 들여다보듯」, 『생 마음』, 30쪽에서

 

잠결에 마주한 낯선 상황에서 닿을 듯 닿지 않는 골똘한 생각 끝에도 해결되지 않는 그 안타까운 우리네 현실의 많은 실재들을 생각게 된다. 이왕 이 낯선 감각의 언어들과 정직하게 대면하기로 마음먹은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시를 배우겠다고 찾아간 요정에게 시의 화자(話者)는 ‘나’를 쓰는 법부터 가르치고, 요정은 “‘나’를 향해 / 멀리 돌아가는 시를 쓴다” 그리곤 요정은 “시에 외롭다는 말을 없애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때 화자는 “요정의 시에/ 손대지 않고/ 요정의 앉을 자리를 정돈해“ 둔다. 보이지 않는, 아니 미력한 존재를 위한 환대의 모습, 아마 시를 읽는 독자들을 위한 넉넉한 품일 것이다.

 

모기가 앉은 작은 토끼를 돕는다고 찰싹 휘두르는 곰의 친절(「곰의 친절」, 130쪽)은 그 약자를 죽인다. 강자의 몰이해에 천착한 친절이란 곧 무지의 폭력이기 십상일 것이다. 이렇게 민담, 민요나 속담을 인용할 때 시인의 시는 임유영 시인의 말처럼 인간의 마음들에 대한 까발림으로 다가온다. 지금 바로 여기와의 연루됨을 잃지 않는 예리한 시선과 더불어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회한이 찌든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 되었다. 시인의 시집이 어쩌면 소원해졌던 시에 대한 감각을 다지는 전환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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