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웃을(rire) 차례야.
우리가 쓰고-웃을(éc-rire) 때야.“ - 「장미가시 효과」, 113쪽에서

[Helene Cixous, The laugh of the Medusa]
2026년 제49회 이상 문학상 대상 및 우수상 수상작이 모두 여성 작가(위수정,김혜진·성혜령·이민진·정이현·함윤이)의 작품이라며 성비(性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담론을 보았다. 나는 이러한 잡설들에 대해 논의의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데, 억압되고 재갈 물려 처형되었던 존재들의 목소리가 표상 불가능하거나 짓눌림에서 풀려나 세계의 전체적 목소리를 지니게 되었음의 한 상징적 사건으로 환영할 따름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글쓰기가 젊은 엘렌 식수가 아마존의 전사가 되어 팔루스로고스(pallogocentrique)중심의 여성 억압의 장막을 찢고 저 높이 비행(볼리;voler) - 飛行, 非行, 卑行 - 하며 분기탱천하여 깔깔대던 그 쾌활한 분노의 웃음소리 - 『메두사의 웃음』 -가 요구되는 시대로부터 제법 멀리 날아올랐음의 증거일 게다.
하지만 한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모두 여성이라고 시비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전히 망상적인 팔루스를 쥐고흔들어대는 못난 남자들과 젠더에 의해 세뇌된 여성성에 잠자고 있는 팔루스적 여성들이 있다. 그건 불가피한 일이다, 이 세계의 모든 시대의 역사들이 보여주듯 동시대라고 모두 동시성의 인식이나 지각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항상 동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에 퇴행적이거나 반동적으로 역행하는 비동시성의 무리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미가시가 필요한 것이다. 저 깊숙이 켜켜이 쌓인 먼지들 속까지 찔러대는 가시 말이다.
『메두사의 웃음』(1975년)에 2003년에 쓰여지고 2010년 판본에 추가 수록된 「장미가시 효과」에서 위의 인용 문장처럼 ‘우리(여성)가 웃을 차례라고, 쓰고-웃을 때’라고 전하고 있듯, 이젠 “여성이 그 몸으로 멍에와 검열을 깨부수고 사방으로 온몸을 관통하는 의미의 팽창을 발화” 한다고 피비린내 나는 처형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오늘의 웃음은 메두사의 분노에 찬 조롱의 웃음이 아니라 마음껏 여성 고유의 힘을 무한히 발산할 수 있음에 대한 자유의 유쾌한 웃음일 것이다.
이 책을 다시금 찾아 읽게 된 연유는 이처럼 동등한 주체로 자리매김한 여성의 시대에 대한 소회를 감각하는 것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여성이 공적 공간에서 입을 열어 여성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곧 금지의 위반이던 시대에 살며 자신을 감금했던 초자아화된 팔루스중심 구조를 탈주하여 자신의 (註1)섹스트들(sextes)들을 보여주려 했던 김명순, 나혜석, 이선희 등 최초의 싸움의 현장에 나섰던 식민지조선 여전사들의 고통의 실체를 엘렌의 글쓰기로부터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전사들을 무참히 처형했던 김기진, 김동인, 방정환 등 일군의 남성 문인들의 저열함에 나는 지금도 분개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그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성(性)위계의식에 터 잡은 비루한 권위의식이다. 지적으로 세련된 여성을 욕망하면서도 그 각성한 지성의 존재들의 행위는 참을 수 없어했던 뒤틀린 욕망의 소유자들이었던 당대 남성들의 전근대적 지각이 그렇게 싫을 수 없다.
사실 엘렌 식수의 이 텍스트를 나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 즉 팔루스중심의 가부장적 권위가 극성을 부리던 시대에 그 전통적 남자들과 불가피하게 싸우며, “그녀들의 견지(와 성적충동)에서 여성들과 여성들의 역사를 도래하게 해야 하는 보편적인 여성-주체” 되기를 향해 “여성들의 성기를 지닌 텍스트들, 여성들의 진정한 텍스트들”을 썼던 여성 작가들의 불안 속 용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교과서로 읽는다. 거의 모든 문장이 그 첨예한 최초의 경계 전장에 나섰던 김명순과 나혜석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어인 것만 같다.

해서 엘렌의 문장들은 그 자체로 그녀들 삶의 목소리로 들리기까지 한다. 엘렌은 공식석상에서 여성이 말한다는 것은 만용이며 위반이었다는 것을, 설령 그 위반을 과감하게 수행했더라도 그 말이 닿는 곳은 거의 항상 귀먹은 남성들이었기에, 그 남성들은 오직 언어 속 남성으로 말하는 것으로만 해석할 줄 몰랐을 뿐임을 지적한다. 팔루스가 지배하는 담론에 도전하는 것은 처절한 응징에 맞서 싸우는 길 뿐이었을 게다. 엘렌은 마치 이러한 전장의 결과를 눈앞에서 보듯 쓰고 있는데, “결코 머리를 숙이지 않는 누이이자 연인들, 어머니 같은 딸들, 어머니이자 누이들이 살기를 원하다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 통제 불가능한 분자들에 대한 즉각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처형”으로 끝나는 싸움이었음을, 한국사회 최초의 여전사들은 정말 미치거나 죽어야만 했다.
“창피함과 두려움을 집어삼켰어. 네가 미쳤구나! 혼잣말을 했지.” -18쪽에서
여성들의 역사를 도래하게 하기 위해 싸움에 나선 전사는 엘렌의 혼잣말처럼 미쳐버려야 하는 공간에서의 처절한 투신이었다. 오늘 우리들은 이렇게 미친 여성들의 텍스트들에서 차오르고 범람하여 펄펄 끓어오르는 전정한 목소리를 듣는다. 엘렌 식수의 여성 글쓰기의 본질에 대한 이 위대한 텍스트가 반백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이렇게 현실 사회의 틀 내에서 유지, 수용 거부되어 내쳐졌던 불가능했던 여성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바로 이러한 점이 팔루스중심의 남성 지배사회가 용서 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게다. 성적 대립의 모든 기호를 조잡하게 운반하는 장소로서 대상화된 여성, 욕망의 배출구로서의 여성이 아닌 여성이 욕망의 주체가 된 텍스트는 질서, 자신들 권력의 전복이었을 테니 말이다.
엘렌의 이 텍스트 속 많은 문장들이 문학 비평이 주제인 글들의 해석도구로 인용되거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연유일 것이다. 즉 “반(反)로고스적 무기가 단련되게끔 글을 쓰기. 모든 상징체계 속에서, 모든 정치적 소송에서 마침내 그녀의 뜻대로, 그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이해관계자이자 전수자가 되기 위해서”와 같이 “팔루스가 지배하는 담론의 도전에 응하면서, 상징 안에, 상징으로 그녀에게 부과된 자리, 즉 침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긍정하게” 하는 글쓰기의 전범인 까닭이다.
엘렌이 예언처럼 전하는 문장이 있는데. “과거에 사형당한 이 여성들을 앞서가고, 그녀들 이후에 오는 그 어떤 상호주관적 관계도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라며, 이 최초의 싸움에서 미치고 죽어간 여성들 이후의 여성 글쓰기는 결코 팔루스 지배질서로 회귀할 수 없음의 선언이기도 할 것이다. “그대, 길들일 수 없는 여자, 시적인 몸, 기표의 진정한 ‘여주인’, 그대의 효력, 우리는 그걸 내일 이전에 볼 것이다!” 여성의 말은 더 이상 억눌리지 않을 것이며 그것의 효력은 바로 지금에서부터라는 얘기다.
이 텍스트에서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은 페미니스트들이 빠지곤 하는 오해에 대한 지적이다. 바로 “의식화를 가장하여 추가적인 금지 사항으로 여성을 짓누르지 말자.”며, 결혼과 임신이 남성과의 싸움이라는 격전지에서 가당치 않다는 목소리에 대해 비판한다. 엘렌은 말한다. “쾌락과 현실이 서로 껴안은 모순들의 공감에서 그대의 위치를 그대가 결정하라. 타자를 살려 두어라. 다른 욕구를 기입하라(Mets l'autre en vie)” 만약 우리(여성)가 내킨다면, 임신의 감미로움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임신한 여성에 관한 터부, 그녀에게 투여된 팔루스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또 다른 여성 억압의 표현에 스스로 갇히지 말라고. 그러면서 “내 텍스트들 속에서 페니스가 순환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라고, 남성이 대상화한 욕구가 아니라 여성 주체의 욕구 드러내기가 바로 여성의 글쓰기임을 공표한다. “나는 모든 걸 원한다. 나는 그의 전체를 원하고 동시에 내 자신 전체를 원한다. 내가 왜 나에게서 우리의 일부를 박탈하겠는가?” 라고 묻기까지 한다.
오래된 “팔루스적 소극들(pharces)”에 위협받는 여성은 옛날 여성이라고 말이다. 남성들, 메두사를 마주 보는 것이 두려워 방패로 가리고 시선을 피한 채 검을 휘둘러대는 남성들을 겁나게 하는 정체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죽음과 여성의 성기다. 벌벌 떨며 뒷걸음치면서 방패와 부적으로 무장한 채 메두사에 다가서는 그 못난 남성 신화는 발가벗겨져 저 멀리 내팽개쳐진다. “우리가 웃을(rire) 차례야.” 가장 내밀하고, 가장 강렬하며 가장 경제적인 민주적 대리보충인 이 여성 글쓰기의 선언문은 이처럼 맑고 청아하며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 차있다. 메두사, 퀴어의 퀸, 엘렌 식수의 텍스트는 모든 여성들은 물론 장 주네(Jean Genet)를 닮은 남성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기쁘게 해줄 것만 같다.
註(1) 섹스트(sextes) : 섹스(sex)와 텍스트(texte)가 결합된 조어로 복수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