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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 여성문학의 길을 열었던 김명순의 소설을 몇 차례에 나눠 각 작품의 내용과 소소한 몇 글자 감상기록으로 남겨둔다. 1917년 11월 《청춘》11호를 통해 작가 생활을 시작케 했던 「의심의 소녀」와 1920년 3월 작가의 아명이자 필명이기도 했던 탄실 이전에 망향초(望洋草)라는 필명으로 《여자계》 4호에 게재했던 「조모의 묘전에서」, 그리고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올라 1년 남짓한 교토의 음악학교로 추정되는 생활 끝에 학비와 생활비의 곤궁으로 다시 귀국한 1921년 12월~1922년 2월 2회에 걸쳐 《개벽》 18~19호에 연재했던 「칠면조」 세 편으로 시작하련다.

 

【彈實, 김명순 1896.1.20.~1951.6.22】


단편 「의심의 소녀」는 내겐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 산월에 대한 애도이자 자기 삶에 대한 주체자로서의 세상을 향한 투명한 공개선언으로 여겨진다. 소설은 평양의 한 마을에 기거하게 된 범네로 불리는 8,9세 소녀와 그녀의 외할아버지 황진사에 대해 동리 사람들의 의혹에 가득 찬 시선으로부터 그네들의 삶에 드리웠던 진실을 점진적으로 드러내며, 당대 세력을 지닌 남성들의 중혼과 축첩의 야만성과 그로인한 모욕과 폭력에 더불어 이를 감당하여야만 했던 여인네들의 삶의 현실에 애도를 보낸다.

 

소녀 범네에 대한 세간의 묘사를 보면 “풋남(藍) 순안치마에 담황색 겹저고리 입고 분홍신을 신었다....실로 새마을 동리 소녀들과는 군계일학“ 이지만 그 ”어여쁜 얼굴에는 어린 아이에게는 없을 비애(悲哀)에 지친 빛이 보인다.“ 오지랖 넓은 마을 아낙네는 어느 날 황진사와 범네가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한 남자의 행적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전해들은 마을 이장의 목소리로 범네는 탕자인 조 국장과 강제 혼인하게 되었던 황진사의 무남독녀가 낳은 딸 가희(佳姬)임이 드러난다.

 

조 국장이라는 자는 경성에 세력의 기반을 둔 여색에 몰두하는 파렴치한이다. 이 자는 “세 번 처를 바꾸고 첩을 갈기도 10여 인”이고, “화류에 놀고 촌백성 계집까지 희롱하는” 그야말로 희대의 탕자(蕩子)이다. 범네, 즉 가희의 어머니인 조 국장 부인은 학대와 감금의 비관 끝에 24세에 자결하였으며, 황진사는 어린 가희가 조 국장의 첩들에 의해 곤경을 겪을 것을 걱정해 이름을 범네로 바꾸고 조 국장의 시선을 피해 방랑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이 소설이 이광수에 의해 선외가작으로 뽑혀 《청춘》에 등단하게 된 것은 중혼과 축첩이라는 악습에 대한 얼마간의 시대적 공감이 태동하고 있었음의 반증일 것이다.

 

단편 「조모(祖母)의 묘전(墓前)에서」는 장편(掌篇;손바닥)소설에 가까운 짧은 이야기인데, 여성의 혼인 풍습이 지닌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다. 박춘채(春菜)는 열일곱 여성이다. 당시 유명한 여자 묵화가인 할머니 운계(雲溪)여사의 손녀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한다. 그런데 운계여사에게는 남자 자식이 없어, 상철이라는 사내를 아들로 입적시킨다. 운계가 임종하자 막대한 유산을 가로 챈 상철이란 자는 사업을 벌이다 운계로부터 받은 상속 재산은 물론 춘채의 재산까지 몰수하여 말아먹는다.

 

이에 더해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자 춘채를 채권자의 방탕한 자식 김영수에게 부리나케 시집보낼 준비에 돌입한다. 작가 김명순은 아들 입적이라는 당대 호주 상속제에 의문을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성을 한낱 금전적 소모품으로 여기는 가부장제 남성들과 사회 인식에 대한 부당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유탕자(遊蕩子)는 심산에 나날이 시들어 말라가는 산 백합을 돌아도 

안 볼 뿐 아니라도화의 이름 난 기생을 작첩하였다. 

상철의 부처는 춘채를 김수영에게 약혼시켰으므로 

부채를 담당치 않고...” - 「조모(祖母)의 묘전(墓前)에서」에서

 

처를 박대하는 것은 물론 구타와 학대를 일상으로 자행하는 유탕자(遊蕩子)에게 춘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재정적 이익을 위해 혼사가 강행된다. 소설의 제목이 ‘할머니 묘지 앞에서’인 것은 이렇게 비참한 신세로 몰린 춘채가 할머니 묘소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하소연하기 때문이며. 바로 그 탄식의 음성에 고스란히 당대 남성중심의 질서에 대한 강한 전복의 의지가 있음이다. “치욕의 혼인 가마를 김씨 댁 문내에 머무를 손녀의 비운을 모르십니까?”에 이어, “금지옥엽 길러주신 열일곱 생명이 구수(仇讐)되어 금전에 바뀌어 물품같이 유탕자(遊蕩子)의 희생이 되어가는 손녀의 운명을 어찌하오리까?”라고 할머니 묘소 앞에서 부르짖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한 여성의 자기 주체로서의 분노에 찬 항의였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남성들에 의해 채색되어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이 찍혀 문단 내 남성 작가들을 비롯, 세간의 온갖 혐오스러운 비난은 김명순을 재차 일본의 유학길에 오르게 한다. 그러나 그 식민제국인 일본 유학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본에 똬리를 튼 또 다른 식민지 조선 남성들의 동족 여성들에 대한 성 착취의 시선이고, 경제적 곤궁의 고통이었다. 필요 생활경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모국으로 돌아 온 직후 《개벽》에 발표한 소설이 「칠면조」 다.

 

【《開闢》18호에 게재된 소설 ‘칠면조(七面鳥’), 김명순 여사로 표기됨.】


「칠면조」는 조금 독특한 소설인데, 서간문, 즉 편지의 형식을 띤 작품이라는 것이다. 즉 서간문이란 수신자를 향한 쓰는 이의 내면이 밝혀지는 글이며, 그것이 수신자에게 도달하지 않을 것을 알며 쓰는 편지의 경우 일종의 자기고백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수신자는 ‘나-나 슐츠 선생’으로 되어있는데, 아마도 소설의 화자가 교토 음악학교를 다닐 때의 스승으로 짐작된다. 즉 음악(피아노)학교 시절에 대한 자신의 고단한 삶의 여정에 대한 내적 고백의 기록이라는 얘기다. 서구 문명에 대한 이른 학습을 했던 작가 김명순은 ‘칠면조’라는 단어가 ‘말이 많지만 의미 없는 소리’나 ‘어리석은 사람’을 은유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특히 ‘실패자’라는 의미로 암암리에 사용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두 번째 감행된 1920년에서 1921년의 1년 남짓한 일본 유학생활은 그녀의 의지를 다방면에서 좌절케 하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소설에서 K부(府)라고 표기되는 지역은 교토(京都)를 이르는 것일 게다. 음악학교는 화자에게 월사금을 보증하는 사람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궁여지책 끝에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재일 조선인 노동자 박의 보증을 받게 되지만 그 남자의 태도에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박이 화자에게 “아직도 여자답고 활발치 못한 데가 있다고 무엇을 풀어버리라는 듯이 말하였습니다.”와 같이 은근한 성적 개방의 요구를 암시하는 말을 건넨다.

 

화자는 D씨로 불리는 “미소하던 흰 얼굴에 시원한 눈이 애교있는 입이 기꺼운 해조(諧調)를 외우려는 듯한” 세련된 젊은 남성에게 호감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세상에 대한 불안의 시선이 내재되어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망설인다. “사교계에 나서려는 것은 과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실 사회는 너무도 잔혹하지 않을까 겁도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대 여성의 자기 억압으로 온전한 주체를 정립하는 데 여전히 불안의 심리를 떨쳐내지 못했음의 자기 성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의 남성들은 화자의 이러한 세상 남자들과의 자유로운 교제의 생각에 음란한, 문란한 이라는 혐오의 수식어를 붙이며 여성의 자유는 곧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이라고 사회 밖으로 내쫓는다. “안 뜰에 심겨진 동백꽃 나무에서는 비 맞는 꽃송이들이 그 담 밖 길가에 떨어졌습니다.”라는 시적 문장은 화자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내쳐질 것을 예감하는 문장일 것 이다. 1917년으로부터 1921년에 이르는 대략 5년 남짓한 시간의 경과 속에서 작가 김명순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여전히 높은 불안이 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 같다. 김명순의 소설은 시적 정체성과 아울러 당대 조선인들의 지적 수준을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김명순은 이러한 내적 불안과 외적 공포라는 이중의 적들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김명순 소설의 두 번째 감상기록은 당대 식민지조선의 남성들이 지닌 자유연애와 여성의 성적 정결에 대한 이중의 모순에 놓인 위태로운 욕망의 갈등을 묘파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될 것 같다. 이 소설은 「탄실이와 주영이」에 한 달 앞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오늘날 경장편 분량의 작품으로, 당대 남성 문인들이 김명순에 가하는 질시와 혐오가 본격적으로 가해지는 시기에 즈음한 작품이기에 예사롭지 않은 글이라 하겠다. 김명순은 영어, 독일어, 일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던 남녀불문 당대 보기 드문 지식엘리트였다. 이 특출한 여성에 대한 못난 식민지조선 남성들의 머리와 욕구는 여전히 전근대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있었으니 그 간극만큼이나 각성한 여성 주체의 삶은 커다란 고통이었을 것이다. 으이그 지지리 못난 놈들의 역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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