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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 장미
  • 로베르트 발저
  • 16,200원 (10%900)
  • 2025-07-24
  • : 3,317

로베르트 발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게 밀려드는 이미지는 낯선 길을 쓸쓸히 고독하게 걸어가는 떠돌이 산책자의 형형(炯炯)한 눈빛이다. 그것은 탁월성을 간직했지만, ‘소유하기를 원치 않고 자신이기를 포기한’ 인간의 모습이어서 와락 눈물이 흐르게 한다. 예리한 관찰력에 더해 상상력이 더해진 고매한 정신이 안주할 그 어느 곳도 마땅치 않았던 현실 속 한 인간의 초상(肖像)을 통해 인간 보편의 고독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까닭일 것이다.

 

번역자 안미현 교수는 해설의 글에서 1929년 정신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마지막 작품집인 『Die Rose(장미)』의 산문들은 “사심 없고 얽매이지 않고 건강한 영혼”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소한 주인공들”의 파편화된 허약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분열되고 해체된 현대의 신경증적이고 통일되지 않은 자아“를 통한 ”시대의 징후적 모습“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글들에는 이렇다 할 플롯이나 줄거리가 없는 어떤 상황들이 그저 의미 없이 배열된 듯 보인다.

 

평생을 산책하는 삶으로 살다 간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 「일요일 산책」에서 그의 방랑하는 삶에 대한 하나의 의미를 엿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내가 길을 잃었다고 주장할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길을 잃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라고 당당하게 믿기 때문이다.”라 말하듯, 알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동해야만 하는 존재가 인간임의 수행(遂行)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의 산책은 “상상을 하거나 시를 짓거나 하는”, 삶의 풍부함이 만들어지는 기분 좋은 삶의 방법이기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루트비히 티크의 소설 「금발의 에크베르트」의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는 산문 「에리히」에는 늦은 밤 등불을 밝힌 실업자를 위한 필경사 사무실에서 “경건하고 다정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글을 쓰는”, 삶의 행운을 믿는 한 젊은 작가의 모습이 시리게 다가온다. 그는 “믿는 행위 속에 들어있는 황홀감“ 때문에 행운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리곤 ”금발의 순진함과 이상주의를 표현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에리히라고 부르기로 한다고 말한다.

 

“어제 나는 초봄의 황금빛에 둘러싸인 풍경 속으로 나가서 부드러운 어머니 자연 앞에 모자를 벗고 벤치에 앉아서 울었다.”라는 산문 「타투스」의 문장을 접했을 때, 발음의 유사성 때문이었는지 앙드레 지드의 소설 『Paludes (팔뤼드)』 속 타튀루스가 “내 쓸모없는 결심들이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 내 생각들이 마침내는 거의 사라져 버리는 곳.”이라며 바라보는 늪의 전경, 인간의 살과 자연의 총체가 존재하는 궁극의 공간에 놓인 자의 해방의 울음에 가닿아 목이 메여왔다. 몇 몇 산문의 이 같은 생의 비의(秘義)가 짙게 배어있는 어떤 격함으로 가슴을 치미는 듯한 느낌에 젖어들기도 했다.

 

책의 첫 산문 「블라디미르」는 작가 자신을 외부의 시선으로 묘사한 듯한 겸허하지만 냉철한 인물 판단이 내려진 존재다. 나는 발저의 생의 태도의 일면으로 읽었는데,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내버려두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영혼이 거칠어지는 것을, 생각이 병들고 경직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자기 모습대로 남아있기를 고집하는 이 독창적 삶의 태도는 어쩌면 1920년대 전쟁의 폐허와 혼돈에 휩싸인 유럽인들의 정신이 숨어든 개인들의 자기 보호를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산문집에는 일종의 서평이라고 부를 만한 글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형식성과 현학성을 배격하는 발저 고유의 글들처럼 지극히 표면적 감상이다. “나는 표면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산문 「아이」의 문장처럼, 발저는 이 경박함이 종종 호응을 얻지 못함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은 세밀하게 관찰하는 시선을 지닌 사람의 날카로움, 비평적 눈빛이 번뜩이는 겸허함이다. 산문 「켈러의 노벨레」는 고트프리트 켈러의 소설, “기분이 좋아져서 보다 예리한 분별력을 찾기 위해” 간 레스토랑에 앉아 “주변을 깡그리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는 단편 「마을의 로메오와 율리아」에 대한 감상은 그가 인간 삶의 어느 측면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부당한 선을 소유하는 것이 초래하는 불행에 관해 서술하는 부분이 특별히 아름다웠고”, “행복에 취한 불행한 사람들을 남다른 심오한 기질을 이유로 그렇게 솔직하게 동정하고 시기하는지를 암시하는”것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위축된 영혼에 깃든 선이 이 세계에서 결코 행복으로 보상되지 않음을 꿰똟는 켈러의 경이로운 문장들이 발하는 성스러움, 그 시적 숨결에 매혹되었던 모양이다. 산문 「몇몇 작가와 어느 성실한 부인에 관해」는 당대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비교적 진솔한 비평의 시선이다. 그에게 몰리에르의 희극과 모파상의 소설, “이 두 위대한 작가들을 기쁜 마음으로 나란히 두었다.”고 할 만큼 기질이나 인간에 대한 통찰이 그와 교감했던 모양이다. 특히 모파상에 대해서는 “더 위대한 단편 작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며 칭송한다.

 

또한 근원적이고 환상적인 글로 문학적 가치를 보여준 두 명의 작가로 뒤마와 외젠 쉬의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젊은 여성의 회고』를 각기 거론하고 있기도 하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갑자기 과대평가된 작가라며, “정서와 이성에서 억지로 끌어낸 것처럼 보이는 그의 운문”이지만 성공적이었다고 여긴다며 세평(世評)의 천박성을 은연히 힐난하기도 한다. 발자크에 대한 “넘치는 교양”이란 평가는 슬그머니 그의 조크가 읽혀 미소를 짓게 된다. 산문 「자허마조흐」는 발저가 수용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기꺼이 복종했던 부인은 그를 너무 싱겁다고 여겨 그를 버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며, “자기 삶의 권리가 약화되는 것을 즐거워하는 저 멍청한 사내를 자신이라면 더 심하게 다루게 했을 텐데”라며 한 방향으로 치닫는 영혼에 대한 불쾌를 표현하기도 한다. 발저식 유머일 것이다.

 

산문 「따귀 한 대와 그 외」에는 촌철살인의 문장 모음이라 일컬어도 될 만큼, 인간 삶과 그 심리의 형태에 대한 세밀한 관찰들이 돋보인다. 저와 함께 가실래요?”라는 그의 제안에 “당신은 따귀 한 대를 맞고 싶은 모양이군요!”라고 반응하는 여성의 말에 이어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누군가와 연결시키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하나의 목적에 맞출 무수한 기회를, 그리고 쾌활함과 직관을 함께 나눌 무수한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채 흘려보낸다.” 라는 이 문장은 그 비약만큼 재밌다. 그렇게 쌀쌀맞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이다. 여자는 삶 속 하나의 기회, 그 풍요로운 관계의 하나를 놓친 것이다. 아마 요즘에 이러한 수작을 하였다간 성추행이라고 고발 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발저의 소망이었던 아이 하나를 낳고 거절하지 않을 출판사에 작품을 내미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삶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는 것 만 같다. 


무심히 의미를 두지 않고 내뱉은 말에 상처입은 자의 표정과 태도를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도 있는데, 자신의 이해력에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단순한 것에 대해 자신의 높이에서 내려다보듯 말한다. “알아들었어요?”, 이 말을 들은 상대는 순간 모욕적이고 굴욕을 강요하는 듯한 이 표현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바르르 떨며 대거리를 할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감추고 슬기롭게 대처할지. 발저는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간계와 사랑』에 나오는 루이제처럼, 무능한 작은 뇌처럼 아주 딱해보였다.”고.

 

“전혀 흠잡을 데 없다는 것은 얼마나 역겨운지” - 46쪽

“나는 자부심 때문에 자부심 없이 행동했고, 

강인함 때문에 부드럽게 행동했다.”

“수줍어하는 자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사이의 전쟁은 

아마도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92쪽

 

발저는 자의식에 차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삶을 극도로 싫어했다.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하나의 움직임이 있는 곳을 둘러보는, 오히려 올려다보는 삶의 믿음이 그에게는 훨씬 풍요롭고 흥미로운 것이었다고. 엄숙주의와 규범주의를 거부하는 삶을 추구하며 무고하고 정직한 삶을 고수했던 한 고귀한 예술인의 이 미미하고 존재성 희미한 파편의 글들에서 어떤 불가불의 절대 고독의 감응에 휩싸인다. 세계의 주변부에서 익명의 인물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현대인의 삶의 속성들이 나열된 글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때문에 발저의 글 속 우연한 일상의 표정들과 목소리를 읽어가며 분열되고 해체된 우리네 조각난 마음을 토닥여주는 시간이 될 지도 모르겠다. 발저를 읽는 것은 항상 쓸쓸한 사랑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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