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와 생태계 보존을 위해 노고를 마다치 않는 분들의 발품 덕에 사라질 위기에 놓인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하제(下梯)마을 수령(樹齡) 600년(과학분석 결과 수령 537±50년)의 팽나무가 품고 있는 문화사적 얼을 접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 책으로 이끈 계기는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할매』의 중심 제재인 하제마을 600년 수령의 팽나무가 시리게 굽어 본 이 땅의 민초들과 자연의 인연으로 맺어진 순환의 업(業,Karma)에 대한 이야기다. 옛 지도에 표기된 오늘의 하제마을을 포함하는 섬의 이름, 무의인도(無衣人島), “옷을 입은 사람이 없다”는 이름을 지닌 섬, 이러한 지명은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양광희 저자는 이렇게 그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 “온갖 경계에 접하고 있으나, 그 무엇에도 의지함이 없는 무의도인(無衣導人)”이라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가 닿는다고. 황석영 작가의 소설 속 팽나무 할매가 그렇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다 자신의 육신을 자연에 보시하는 스님 몽각(夢覺)의 견성이 바로 그것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600년 팽나무 가을, 겨울 사진; 출처-본문 66쪽】
책 『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 마을 이야기』에는 중생대 백악기 역암층으로 이루어진 섬의 지질학적 구성에서부터 섬의 수호신 역할로 추정되는 석장승, 화산의 봉수대 등 문화유적으로서의 가치, 600년 팽나무가 있는 하제마을의 사료 추적을 근간으로 하는 지명의 변천과 완전한 섬에서 제방과 간척으로 인해 육지로의 변모 과정을 담고 있으며, 조선 말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식민지 노동의 착취를 통해 일제가 벌인 대규모 간척사업과 일본 자살특공대(카미카제) 다치라이 육군비행학교 군산 분교의 비행학교 활주로로 수용되고, 1951년 미군의 활주로 연장 공사로 상제와 중제 지역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영토화된 경유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현재는 하제에서 조상을 이어가며 마을을 지켜왔던 주민들이 국가의 토지 강제수용으로 모두 쫓겨나 미군의 군사작전 지역으로 민족 문화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1998년의 600년 팽나무 주위로 마을이 형성되었던 사진과 대조적으로 이젠 마을은 철거되어 팽나무만 덩그러니 홀로 남아 지방 보호수로 가까스로 명맥을 보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팽나무의 문화재적 가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상목으로서의 역할인 풍년을 알리는 신목(神木)이었으며, 어업을 생업으로 하던 사람들의 조업활동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濟)의 영혼을 담지하고 있었다. 소설 『할매』에 600년 수령의 팽나무 할매 옆에 그보다는 수령이 적은 또 한 그루의 팽나무를 과녁으로 삼아 일본군이 사격연습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때의 수많은 총질로 고사(枯死)했음이 고증되어 실존했던 거목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게도 된다. 일제의 식민지민을 탄압하려는 파렴치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1894년 日本國 陸地測量部 발행 「朝鮮及渤海近傍:假製 東亞輿地圖」. 출처-본문 83쪽】
팽나무의 나무 둥치를 보면 심하게 비꼬이고 깊은 주름이 잡힌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해안가에서 생장하는 팽나무의 특성상 썰물에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묶어두는 계선주(繫船主)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문화재 위원의 설명을 듣게 된다. 밧줄의 시달림으로 반복된 상처에 딱지가 아물며 수없는 아픔을 간직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이라는 말이다. 나무의 아픔이 그와 함께 명멸해갔던 이 땅의 민초들이 반복적으로 겪어내야 했던 삶의 상처의 반영처럼 여겨져 애틋함이 밀려온다.
옥녀봉에서 화산까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한때의 섬, 무의인도였음을 오늘날 그 흔적조차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육지로 인식된다고 한다. 인간의 인위, 그 탐욕과 폭력이 자연 만물의 삶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황폐한 욕망의 장소로 변질시키고 있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노목, 거목, 희귀목을 보호수로 지정한다는 산림법, 보존,보호,관리할 가치가 있는 동물, 식물로서 그 경관(景觀)적, 역사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에 문화재로 지정하게 되어있는 문화재보호법으로 하제마을과 600년 팽나무가 지켜질 수 없는 것일까?
나아가 천연기념물로 지적되어 보호, 보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한반도 사람들의 얼과 그네들의 영혼의 담지자로서, 또한 생태계와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나무와 마을을 우리가 지켜낼 수 없다면, 대체 국가와 역사라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작은 책자가 오늘 우리들이 망각하고 있는 인간 삶의 가장 원초적인 물음을 하게 한다. 이 책을 참조하면 황석영 작가가 소설 『할매』에서 독자들에게 궁극으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의 저 심연 속에 잠긴 정서를 건드리는지 체감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나아가 인간을 포함한 자연 만물인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자성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할 터이다.
*소설 『할매』리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