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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 자크 프레베르
  • 17,100원 (10%950)
  • 2017-03-22
  • : 209

기성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전복과 위반의 시인으로서, ‘아니요’를 말하는 또 다른 유형의 작가에 닿았다. 필경사 바틀비들의 목록을 따라가는 중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화가이며, 시나리오 극작가였던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 1900-1977)’의 이름은 낯설다. 그런데 이미 이 시인의 시(詩)인 가사의 노래를 적어도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알려진 샹송들, 영화 주제가의 시적 가사들이 그의 작품들이었으니 사실 친근하게 우리들과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1946년 작 영화 《밤의 문 Les portes de la nuit》의 주제가로 무명의 배우 이브 몽땅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줬던 <고엽(枯葉); Les Feuilles mortes>이 소설 『매디슨 카운티』 좁은 부엌 라디오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올 때, 사랑하는 연인을 헤어지게 하는 인생의 의미를 헤아릴 수 있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 「고엽」은 말한다. ‘헤어지게 만든 인생보다 그들이 만나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던 인생에 감사하다’고. 이 시인의 시들이 기존의 질서와 규범들에 반기를 들고 거부하는 것은, 자유와 사랑과 생동하는 목소리들이자 감동의 소리이고, 절박한 간절함의 소리들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세상을 향해 ‘아니요’라고 강하게 부정을 외치는 것은 진정한 삶으로의 복귀이며, 생의 환희와 감사의 목소리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반(反)시의 작가로 불리듯, 그의 시 작품들은 전통적인 관념적 시에 반기를 든, 평범한 우리네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로 씌어 있다. 따라서 시들은 권위에 토대를 둔 모든 고정된 가치들에 반기를 들고 의식의 변화와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이 되려고 노력한 적도, 시인이나 작가 행세를 한 적도 없는 작가로 알려졌듯, 그의 시들은 꿈과 상상과 마음 속 깊이 원하는 것들을 표현할 따름이다. 때문에 모든 시들에 흐르는 정서는 친근하고, 더욱 공감의 깊이를 더하게 해준다. 아마 그의 시작들이 대중들의 노래인 샹송의 가사가 된 것은 이러한 요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시선집을 엮을 때 번역자는 시에 표현하고자 한 시인의 마음을 읽기를 원했던 것 같다. 처음 대면하는 시가 「마음의 소리」이다. 생동하는 목소리, 마음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절대적 소명같은 절실한 소리를 느낄 수 있는 “노래하는 건 내 목소리만이 아니지”로 시작되는 이 시는 시의 정의처럼 “우리 마음속에서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우리를 넘어서는 보다 강력한 어떤 것을 나타내는 소리로서 일반적 언어의 가능성을 넘어서는” 표현이 시임을 노래한다. 시의 세 번째 연을 옮기면 이렇다. 울적한 마음과 더불어 그 마음에 그 어떤 연대감이 아릿하게 저미듯 밀려들어온다.

 

저 새는 나와 함께 노래하지

언제나 언제나 살아 있는

저 불쌍한 소리는 나를 보고 떨고 있지

저 새가 노래하는 모든 것

내가 본 모든 것 내가 아는 그 모든 것을

전부 다 말한다면

그건 수다스런 말이거나 불충분한 말이 되겠지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다 잊고 싶지 -「마음의 소리」 3연에서, P24

 

그러나 이런 아픔 또는 슬픔의 정서 속에서도 어떤 밝은 전망, 기쁨의 가능성 같은 것이 함께 느껴지는데, 한 배관공 노동자의 어느 월요일 아침의 전경을 그린 「그리고 축제는 계속된다」는 딱 이런 느낌이다. 월요일 아침 10시인데 배관공은 정장 차림으로 카페 카운터 앞에서 비틀거리며 자신만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는 술값 계산도 하지 않고 햇빛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된다. 나라면 ‘슬픈 축제의 하루’라고 제목을 붙이고 싶은 작품이다.

 

나는 작가의 성장기인 어린 시절에 대한 지식이 없다. 다만 그의 어린 시절이 그다지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음을 그저 유추해본다. 그는 어린 아이에 대한 보호와 사랑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자신은 결코 그러한 따뜻한 관심 속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불우한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산물일까? 「어린 시절」이라는 시에는 “어린 시절의 시간에 지구는 돌지 않고/ 새들은 더 이상 노래 부르지 않고/ 태양은 빛나지 않으며/ 모든 풍경은 얼어붙은 슬픈 시간들뿐”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가하면 「깨어진 겨울」에서 “청춘의 키 작은 남자”의 구두끈도 끊어지고, 축제의 모든 가건물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어린아이의 마음이 닫히는 그 어느 시점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는 “순진하고 비통한 목소리가 / 멀리서 나를 부르며 다가왔네 / 나는 가슴에 손을 얹었네 / 가슴에는 별이 반짝이는 그대의 웃음이/ 일곱조각으로 깨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흔들리고 있었네”라고 그 시절의 영원히 깨져 돌아오지 못할 시간과 이별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내 어린 시절은 언제, 어떤 장소에서 끝났을까? 그 순수한 생명의 시간이 그저 아득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사랑의 노래가 부쩍 많아 보이는데, 실연의 절망에서부터, 만남의 인연의 소중함, 사랑은 소유가 아닌 자유여야 함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남자의 노래」 가 그렇고, 「나를 만든 건 사랑이지」 , 「그 사랑」 에 이르는 시들에서 사랑은 이 세계의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줄 유일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사랑을 의인화한 시 「그 사랑」에서 노래한다.

 

우리는 너를 잊었어도

너는 우리를 잊지 말라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밖에 없다고

부디 우리가 냉정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아주 먼 곳에서도

그 어느 곳일지라도

....... 中略 ......

기억의 큰 숲에서

갑자기 나타나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 「그 사랑」, 마지막 연, P210

 

아, 색다른 문장을 보았는데, 「사랑의 달콤하고 위험한 얼굴」 이라는 시에서 “사랑의 상처는/ 뜨겁다는 것 너무나 뜨겁다는 것이지요”라고 하는 것이다. 역자는 고통마저 뜨겁다고 하는 것은 기쁨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상처의 고통이 너무도 생생해서 인식의 과도함이 불러일으킨 화끈거림으로 느껴졌다. 사랑의 상처가 깊을 때 그것은 불길처럼 뜨거운 것이 아닐까?

 

조금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몇 작품이 있는데,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답게 그의 시들에는 영상적 묘사처럼 보이는 시각적 작품들이 제법 눈에 띈다. 「꽃집에서」 에는 한 남자가 꽃집에 들어와 쓰러지고 꽃들과 그가 치르려던 돈이 동시에 구르는 정지된 화면같은 순간이 그려진다.

 

그가 쓰러지자 동시에

돈은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쓰러진다

돈이 굴러가고

꽃들이 망가지고

남자가 죽어가는 데

꽃집 아가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 「꽃집에서」, 2연, P299

 

남자와 꽃과 돈, 꽃집 아가씨, 모든 사물과 인간이 정지된 듯한 동시적 어떤 순간에도 굴러가는 멈추지 않는 돈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부조리함의 극치, 돈으로 상징되는 자본위력의 불쾌감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인의 예리한 순간 포착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유사한 감정을 야기한 작품으로 혼전에 임신한 딸의 배를 밟는 한 부르주아 가족의 모습을 그린 「빨래」라는 시는, 피 얼룩을 지우기 위해 오직 빨래하는 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진 것을 보게 한다. 생명을 죽인다는 죄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물질자본주의가 가져온 문명적 질병인, 체하는 것, 비교하고 경쟁의 대상인 타인에게는 은폐된 내부의 거짓, 위선을 거침없이 발가벗겨 드러낸다.

 

오오 죽은 고기의 끔찍하고 놀라운 냄새여

여름이지만 정원의 나뭇잎들은

가을인 것처럼 떨어져 죽어가네

저 냄새는 에드몽씨가 사는

빌라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는 가장이고

국장이라네

그날은 빨래하는 날

그건 그 집에서 나오는 냄새라네

국장이고 가장인 그는

........ 中略 ......

그가 좋아하는 속담을 수없이 되풀이한다네

집안의 수치를 밖에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온 가족이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시시덕거리고 -「빨래」, P365

 

쫓기듯 살아가는 인생을 마치 자유로운 여행의 여정인 듯 말하는 세상에 대한 항변인 「통제관」, 거대한 피웅덩이를 지니고 결코 돌기를 멈추지 않는 지구의 은유를 통해 비인간적 폭력의 세계를 고발한 「피 속의 노래」 등 반폭력, 반전의 목소리에서부터, 세계에 범람하는 권위적 목소리들에 대한 냉정한 비난의 목소리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 목소리들을 격렬하게 부르짖지 않으며, 자신의 담담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술한다. 자신에 대한 비뚤어진 공격에도 그저 헛되다고 말하며, 문단, 정치, 세계의 모든 곳은 그것에 애정을 지닌 모든 이에게 열린 공간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그 어떤 악착같은 말보다 울림이 크다. 물론 들으려 하는 자에게만 그렇겠지만.

 

그는 세계의 모든 속박, 억압에 저항했던 것 같다. 학교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열등생」이라는 시는 학교의 부정적 형상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에 의해 이 시가 읽히도록 권장되고 있다고 한다. 깊이있는 사유에 대한 교육의 방편일 것이다. 시는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선생님에게 아이는 쏟아지는 질문에 폭소를 터뜨리며, 불행의 검은 색 칠판 위에 온갖 색깔의 분필로 행복의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묘사하고 있다. 생각의 다양성, 그리고 생각하는 방법, 무수한 답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 이것은 바로 ‘아니요’를 외칠 수 있는 인간이 절대 다수를 이루는 사회일 것이다.

 

【자크 프레베르는 초현실주의 그룹 일원이기도 했으나, 브루통과의 갈등으로 이탈하였으며, 

피카소와의 깊은 우정을 나누기도 하였던 화가이기도 했다. 그의 회화 작품, <나비>】


사랑도 돈의 지배 앞에서 길을 잃고, 아이들에 대한 보호와 관심도 학원의 기능적 시험훈련이 대체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 또한 소유와 지배라는 억압의 권력이 차지한 세계이고 보니 시인의 모든 시들이 새삼스레 오늘의 우리들이 잃은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아, 시인은 화가 피카소와 가까운 친구처럼 지냈던 모양이다. 그들의 교우는 아마도 그 어떤 속물적 가치 세계의 것들과는 다른 참된 우정이었을 것만 같다. 시집을 읽고 나면 시인의 말처럼 인생에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된다. 그의 사랑의 언어들에 물든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어느 맑은 날 장례식에 가기 위해 가을 저녁에 출발한 두 마리의 달팽이가 슬프게 도착했을 때, 이미 봄이 되었다고 노래하는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처럼, 음울한 겨울을 눈치채지 못하고 통과해, 죽었던 나뭇잎들도 모두 부활한 생명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나만의 ‘아니오’의 목록에 이 작품을 기입하면서 그의 시 「외출 허가증」으로 맺음을 갈음하련다.  자크 프레베르 귀하를 바틀비 연합체의 일원으로 임명합니다! 그가 과연 수긍할지 모르겠다.

 

새장 속에 군모를 넣어두었네 그리고

머리 위에 새를 올려놓고 외출했네

그러자

지휘관이 왜

경례를 하지 않는가 물었네

안 합니다

경례를 하지 않습니다

새가 대답했네

아 그런가

..... 後略 ..... - 「외출 허가증」,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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