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얼굴 구조에 대한 21세기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미시간大 해부학교수를 지낸 도널드 엔로(Donald H. Enlow)는 “인간의 얼굴은 특이하다. 일반적 포유류의 기준에서 인간의 이목구비는 이례적이고 전문화되었으며, 어떻게 보면 기이하기까지 하다.”며 그 특이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보아 온 인간 얼굴의 익숙함은 한 번도 왜 이런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다. 해부학자의 말처럼 그 어떤 포유류와도 닮지 않은 피부가 드러난 얼굴과,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오지도 않았으며, 한 평면에 나란히 눈과 코, 입, 그리고 이마가 수직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 『인간 얼굴(Making Faces)』은 바로 이러한 인간 얼굴의 형태가 왜 오늘의 모습을 하게 되었는가의 물음에 대한 지난한 추적의 기록이다. 그것은 5억 년 전 눈도 코도 없는 동물로부터 시작되어 눈과 입, 턱과 뇌를 지니는 동물로 변화하는 진화적 사건들과 그것들을 촉발한 자연의 선택압들, 그때 이러한 선택압에 대응하여 변이를 만들어내고 적응케 하였던 유전자와 세포들, 유전자 네트워크,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가한 선택압에 대한 복잡하기 이를데없는 유전자 조절 시스템의 기능과 역할, 작용을 탐사한다. 고생물학에서 시작하여 생물의 본질인 유전자와 세포의 기능과 역할, 그 구조와 형태의 발현에 이르는 진화론적 이론들과 증거를 파헤치고 추정하며 규명한다. 생물학적 진화의 그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우아함과 완벽함의 과정을 따라가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1장에서 4장에 이르는 얼굴을 만드는 유전자와 유전적 기반, 발생학적 이론들의 어려움을 겪고 나면, 그야말로 5장에서 10장에 이르는 흥미진진한 얼굴의 진화역사와 얼굴 형성에 작용하는 정신적, 사회적 역할을 통해 오늘의 우리들 얼굴이 품고 있는 그 풍부하고 다채로운 생물학적 의미는 물론 역사성과 사회성의 의미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이 책의 논지, 즉 지향점은 “인간의 얼굴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거들기 위한 형태로 진화했다”는 것으로 압축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문장은 척추동물 문에서 그 하위 계통인 포유동물 아문으로 분지하면서 영장류인 현대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인 호미닌의 진화에 작용한 힘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눈도 코도, 얼굴이 없는 동물이 눈과 턱, 이빨이 있는 얼굴을 지니게 되는 5억 년이란 긴 시간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진행된 진화 과정에서의 유전자의 기능과 역할을 보는 것은 이후의 진화적 사건을 이해하는 과학 지식의 토대를 제공하고, 다시금 두뇌와 사지(四肢)가 발생하고, 그 생성에 작용하는 유전자 기반을 이해하는 것도 쏠쏠한 생물학적 유전학에 대한 배움의 기회가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얼굴의 형태가 지닌 함의(含意)이다. 왜 다른 포유동물들은 주둥이가 앞으로 길게 튀어나와 있는데 유독 인간을 비롯한 호미닌 계열의 종은 주둥이가 퇴화되었을까? 하는 질문이나, 왜 얼굴에서 털이 사라졌을까?, 한 쌍의 눈과 입, 작은 턱이 대칭으로 구성되고, 이마를 지니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수직적인 평면에 정면을 보도록 모아져 있을까? 의 물음에 대한 경이로운 응답이 바로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형태상의 차이점들은 진화적 변이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징후이자
변이가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된 것이다.”
인류가 하고 있는 지금의 얼굴에 이르는 데는 놀라운 다양성을 가진 모든 복잡한 유전자 조절 시스템의 진화를 통한 발현이 있다. 진화 과정은 어떤 계획에 의한 제작물의 일사천리식 조립이 아니다. ‘어설픈 땜장이의 작업’ 처럼 기존의 유전적 장치의 일부를 차용하고 조정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생산하는 시행착오의 반복이다. 실패하면 자연계에서 버려지고, 성공하면 남아 후손에 그 형질을 전달하면서 살아남아 지속되는 적응의 존재들이다. 침팬지는 눈 위부분이 뒤로 경사면을 이루어 이마가 거의 없다. 반면 인간은 이마가 앞으로 튀어나와 얼굴 전체의 수직면 상부를 이룬다. 뇌 특히 대뇌피질의 발달 때문이다. 대뇌피질의 발달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주둥이의 퇴화도 단지 입으로 사냥감을 묻어 뜯을 일이 없어졌다거나 나뭇가지나 풀로부터 눈을 보호하려는 이유만이 아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네 개의 다리가 아닌 이족 보행과 앞발의 손으로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손의 사용으로 턱과 입의 형태가 돌출될 필요가 없어진 것이고, 이러한 선택압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형질 변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주둥이의 퇴화는 눈이 정면으로 모이고, 손에 자유를 주었을 것이다. 이로써 감각 수신 정보는 더욱 입체적이 되었고, 손은 사회적 동물인 조상 호미닌들의 몸짓과 손짓이라는 의사소통의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집단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의 증대는 정보의 해석과 활용을 위한 신경계의 증가를 압박했을 것이며, 이는 다시금 두뇌의 크기를 증가토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의사소통의 증대는 단지 눈과 코와 턱의 조정과 손의 사용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닐 것이고, 얼굴에 있던 털이 제거된 일부 종이 성선택에서 유리한 혜택을 지니게 됨으로써 변이 형질로 폭넓게 채택되었을 것이다. 털이 사라지고 드러난 입과 눈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상대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됨으로써 이는 의사소통을 더욱 증진시켰을 것이며, 두뇌의 신경세포들과 연결망 확장의 강한 선택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마 언어의 사용과 뇌 규모의 물리적 한계에 이르면서 지금의 얼굴 형태로 안정화되었을 것이다. 이 간략하고 거칠게 표현된 인간 얼굴의 진화과정은 일관되게 하나의 현상으로 향하고 있다. 얼굴은 의사소통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정신적 능력의 되먹임 과정이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 애덤 윌킨스는 앞서 언급했듯 인간의 얼굴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거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강조처럼 ‘사회적 두뇌가설’과 ‘동물의 문화적 진화’를 기반으로 인류 진화의 비밀을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야기된 상태의 등장, 이 상태가 세대를 넘어 지속된다면 이를 생명체의 고정된 부분으로 만드는 돌연변이를 위한 선택압이 되어 유전되고, 결국 표현형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지금의 인류 얼굴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한 적응의 필연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얼굴 의식’이라는 개성과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동요인을 말한다. 이러한 의식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최근에 새롭게 획득된 특성으로써, 사회적 정보 교환을 위해 얼굴 인식이 증가했음을 그 방증으로 세우고 있다. 즉 문화가 지속적으로 성장함으로써 더 많고 다양한 사회적 접촉이 발생하고 이러한 되먹임은 얼굴 의식을 더욱 성장하고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아울러 얼굴 이미지의 과잉시대가 된 현대사회의 얼굴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말한다.
눈, 코, 입술, 턱에 이르는 미용 성형의 증가라는 자신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얼굴에 물리적 변화를 가하는 최초의 동물로서 인간의 얼굴에 대한 집착”을 성찰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세계화의 물결 속에 민족적으로 다른 생김새를 한 사람들의 이동은 이들 교배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점점 균질화되어 아마도 아시아인에 가까운 생김새로 수렴될 것이라 예측하기도 한다. 결국 민족 집단의 차이들을 만드는 표현형 요소도 감소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민족 집단에서 타자의 다른 얼굴들을 구분할 줄 안다. 아마 70억 인류의 얼굴은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모두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의 존재 이유는 물론 차이의 인지 능력 또한 적극적으로 선택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유전자 총 개수 2만 1천개 중 단 32개면 70억 인간이 모두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는 증식 가능성과 조합 능력을 우리들은 지니고 있다. 정말 경이로운 것은 겉모습은 전부 다르지만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인간이 가진 수없이 다양한 얼굴은 바로 이러한 잠재된 엄청난 유전적 능력의 소산이다. 그저 이 신비로운 자연선택의 과정에 경탄을 내지를 밖에 없다. 인간 개개인 모두의 존엄함의 생물학적 표현이라 해도 될 것이다. 얼굴은 한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대표하는 신분증이다. 그 어떤 타자도 이 뚜렷한 개성을 지닌 얼굴을 대신할 수 없음이다. ‘자네 얼굴 한 번 보여주게.’라는 말은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 보여 달라는 주문이다. 이 품격 있는 인간 진화의 책은 바로 인간 삶에서 얼굴이 이렇게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된 것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다.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광범위하게 표현 할 수 있도록 매우 정교하고 민감하게 진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획득 형질도 동물 행태의 변화에 기여하는 진화적 힘일 수 있다.”
이제 라마르크의 개선된 ‘후성 유전’에 대한 설명으로 야기된 하나의 돌발 상상으로 감상을 마쳐야겠다. 발생 생물학자 C.H. 와딩턴은 환경에 의해 발생한 새로운 발달 변화들이 새로운 요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형태를 바꾼다면, 그래서 적응적 가치를 가진다면, 발달적 변화들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만드는 돌연변이를 위한 선택압이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행동들이 유전적 변화들을 위한 선택압을 만들어내, 이 변화들이 새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형태변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싶은 기대를 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성형을 하는 인간 집단의 세계에서 그 행동들로 인해 변화된 얼굴 형태의 유전자 변이가 발생하고 세대로 이어질까하는 상각이었다. 일견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행동이 유전자 변형의 선택압으로 작용했으며, 진화의 적응 산물이라면, 즉 동물의 문화적 진화도 하나의 선택압으로 작용한다면 왜 후성 유전이 안 된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하는 상상이었다. 과연 자연은 이러한 인위적 인간의 행동에 어떤 적응으로 화답할지 모르겠다. 미래 인류의 얼굴은 정말 균질화 될까?
인간 얼굴의 진화를 담은 이 책의 현실적 실익은 무엇일까를 계산하는 독자들은 그 이해판단을 멈추어도 될 것이다. 영장류 진화의 기간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런 진화의 연속적 사건들을 발생시킨 다양한 선택압과 아울러 사회적, 정신적 요소들이 얼굴의 신체적 진화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천기누설에 가까운 이 성찰적 연구 성과를 읽게 되면, 우리 인간 사회는 물론 인간 개체에 대한 더할 수 없는 관대함과 애정이 솟아날 것이다. 우리의 얼굴은 사회적 소통의 촉진을 위해 진화되어왔다, 바로 그 산물이 우리들의 얼굴이다. 미래에 민족적 다름이 감소하고 인류가 균질화된 얼굴의 형태를 지니게 된다면 비과학적 용어인 ‘인종’이란 언어의 멸실과 아울러 보다 사회 응집력이 촉진되는 세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인류라는 집단 구성원들의 생존을 높이는 변화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게 된다.
수없이 증가하는 사회적 소통망(SNS)의 증가는 표현력의 증대를 가져오면서 그 상호작용의 증가만큼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사회성이 사회성을 부른다."고 했지만, 그 사회성이란 것이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기적 자기 강화과정으로만 작동한다면 인간의 얼굴은 지금까지의 진화의 동역학을 폐기하고 다른 선택압, 단절의 선택, 분열의 선택을 또다른 선택압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과연 어떤 얼굴이 미래 인간의 얼굴이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 이 흥미진진한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로 독자들을 적극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