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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식
  •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 오익환 외
  • 14,400원 (10%480)
  • 2019-06-06
  • : 268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의도된 혼란, 시대착오적이고 극단적 퇴행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극우를 표방하는 청년 백골단의 사법부 시설 파괴와 공권력에 대한 도전,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를 부인하는 집단 폭력 행위는 그저 임의적이거나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회적 사건으로 볼 수 없다. 이들 모두는 역사라는 뿌리를 가진 것이고, 그 역사를 알아야만 이들의 행위가 지닌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 여전히 너무도 많은 국민들이 오늘의 한국 정치사회를 해독하는 데 피상적이거나 그마저도 아닌 무지의 상태에 놓여있다.

 

이 책의 서론 격인 「젊은이들에게 역사정신을」이라는 글에서 김민웅 교수는 “민족 정신사를 훼손하는 언행들이 지금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민족사와 민족정신을 부인하고 배신하던 반민족행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언행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지난날 과오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자”는 취지에서 1949년 좌절했던 민족 반역자들의 발본색원 작업인 반민족행위처벌은 끝나지 않았음을, 바로 지금 시작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책은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40주년 기념기획으로 일부 새롭게 집필되고 재구성된 중요한 우리의 역사정신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또한 헌법기관인 입법부를 무력으로 정지시키려 하였음과 더불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모든 기본권을 제한하려 획책된 내란 시도는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여 독재 권력을 항구화하려 한 추악한 욕망 이외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에 편승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하려했던 내란에 동조하거나 이를 선전 옹호하려는 세력들의 준동이 폭력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러한 세력들이 자신들의 퇴행적 반동성을 비판하는 국민을 향해 ‘빨갱이’들이라고 철 지난 카세트 녹음기를 틀어대는 몽매한 저열성과 야만성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들의 테러 수준의 반동의 뿌리는 2025년인 지금으로부터 76년의 시간을 거슬러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의 좌절이라는 역사적 시간’에 놓여있다.

 

반민특위의 와해(瓦解)란, 역사의 왜곡 날조는 물론 친일 부역자 무리를 청산하려는 모든 반민특위 위원들을 빨갱이로 몰아 민족 내분을 격화시키고, 그 결과 흉포했던 일제 식민체제의 영속화 도모라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반민족 세력의 공격을 일컫는다. 친일세력과 하나가 된 이승만은 헌법의 노골적인 무시와 입법부의 파괴를 통해 자신의 불안정한 권력을 항구화하는 독재를 위해 반민법의 운영을 고의로 방해는 물론, 급기야는 일제 부역자들의 무리로 구성된 경찰의 폭력을 동원하여 반민특위의 기능을 무력화 시켰다.

 

이때 이승만을 위시하여 윤치호 등 친일내각은 반민특위를 “빨갱이, 빨갱이의 앞잡이”이라고 날조 비난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기왕에 범죄가 있는 것을 들춰내서 함부로 잡아들이는 것은 치안 확보 상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반민특위를 향해 비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독립 운동가들을 비롯한 동 애국지사, 일제에 저항하는 동족을 잔인하게 체포, 구금, 살해하는 데 앞장서 악명을 떨친 친일부역자 고등계 형사 노덕술을 반민특위가 체포하자 이승만이 직접 나서 반민특위를 기습, 무력화를 지시했다.(1949.6.7.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승만이 자신이 직접 지시했음을 공표했다) 친일 부역자 무리가 민족정신의 회복을 도모하려했던 반민특위를 빨갱이라 지칭하며 악의적 수법을 동원하여 체포, 투옥, 살해한 것은 이렇게 오래된 뿌리를 가진 것이다. 오늘의 친일 세력은 내란 우두머리인 윤의 권력이 등장하며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작금의 친일 세력들이 하는 짓거리의 뿌리는 일제가 심어놓은 그 구태가 그대로 이어진 것일 뿐이다.

 


1949년 6월 26일에는 친일 세력 청산의 목소리를 높인 임시정부 수반이자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을 암살하고, 반민특위 활동을 주도하던 국회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로 몰아 검거, 살해하였다. 이어 이승만은 친일 세력들을 애국지사로 둔갑시키는 일에 착수하여, 일제 부역자 무리들이 졸지에 국가 공훈자로 서훈되기에 이른다. 국내 기반이 없던 이승만은 오직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3년의 미(美)군정기간을 통해 친일 세력과 결탁하여 기반을 확립, 확장하고자 했음이다. 드디어 친일 세력이 다시 이 땅에서 역사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거꾸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친일 부역자 무리들은 이렇게 빨갱이 몰이로 자신들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는 “민족 앞에 머리 숙여 백배사죄는커녕 도리어 민족(국민들)의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 애국지사들의 투옥, 살해를 지속하고, 정치를 사리사욕의 장으로 삼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국이 '점령군'으로 한국에 입성했다는 점에 있다. 이후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에 이르는 3년의 시간 동안, 미군정은 행정, 경찰, 검찰과 사법, 교육, 경제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친일 부역자들을 그대로 충당했다. 특히 사법(검찰포함)부는 총독부 하에 부역하던 자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일정한 교육과 경험이 요구되었기에 친일했던 반민족세력이 존속하도록 방치되었던 까닭이다.


이것은 2025년 오늘, 한국의 검찰과 법원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한국 사법부는 위와 같이 그 출발부터 깊게 박힌 친일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법 권력의 역사는 왜 저들의 역사의식이 친일 성향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간인 것이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임명부결이 제안되었음에도 윤씨가 임명을 강행한 이상민을 위시한 판사 출신의 고위직 관료들이 한결같이 친일을 마치 자랑하듯 표방하는 이유가 해명된다. (참조: 현재 서울지검 검사출신의 경북대 법학교수인 김두식의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은 이에 대한 중요한 참고 문헌이 되어 줄 터이다.)

 

이 책,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라는, 좌절한 과거의 역사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이처럼 오늘날 우리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구태들의 추악한 뿌리를 앎으로써, 이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분열을 획책하는 세력들의 민낯을 직시하려 함이다. 반민특위의 논의는 이것들의 역사적 정체를 밝히는 일이다. 이것들의 정치적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인 것이다. 친일 권력 그 자체였던 이승만과 군사 쿠데타로 친일을 이어갔던 박정희, 그 후예인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진 세력의 본산이 현실 정치에서 여전히 정당으로 존재하고 있는 오늘날, 민족의 앞날과 민주주의 장래를 위해 이 논의는 더더욱 절실한 것이기에 그렇다.

 


2019년 친일부역자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자들의 서훈을 취소한다고 발표하자, 나경원이는 국론 분열의 책임을 친일파 검증의 행위로 돌리려는 의도로 “반민특위가 국론을 분열 시켰다.”고 주장했으며, 황교안이는 “좌파 중에 정상적으로 돈 번 사람들이 거의 없다, 다 싸우고 투쟁해서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라고 민주당을 비롯한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을 약탈하는 강도들이라고 날조, 공격했다. 이러한 작태는 이종명, 김순례, 김진태, 김무성 등 일제 부역자들의 몰염치를 승계한 무리들은 ”문 정권을 빨갱이라 칭하며 청와대를 폭파하자“고 테러수준의 언어를 쓰기까지 했다, 이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금에 쏟아지는 이것들의 말은 오직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 맞추어져, 법치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언어는 물론 폭동을 선동하며, 헌정질서의 훼손과 혼란을 부채질하기까지 한다.

 

사실 이것들의 이러한 작태는 민족반역자를 처단하려는 국민 열망을 무력으로 좌절시켰던 76년 전 그날의 시간에 펼쳐진 상황의 판박이다. 책의 시작은 친일 부역자 무리들, 해방 후에 오히려 더욱 세를 키우고 기득권을 유지하던 종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바로 지금에도 일제 식민지 시대가 연속되고 있는 역사를 치열하게 고발하는 작가 최인훈 선생의 『총독의 소리』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대일본제국 40년 경영에서 뿌려진 씨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며, 이는 폐하(일본천황)의 유덕을 흠모하는 충성스런 반도인의 가슴 속 깊이 간직되어 있는 희망의 꽃입니다...해방된 노예의 꿈은 노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라며 식민지 부역자로서의 세력을 지금에도 공고히 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문장이다. 오늘 우리들은 고위 관료라는 것들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뻔뻔스레 친일을 드러내놓고 그 부끄러움도 모르고 주절거리는 모양을 본다. 독도의 영유권을 부정하고, 위안부를 조롱하며, 신사참배를 숭배하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가해자의 논리를 한국 국민에게 감히 강요한다.

 

식민지 시대 일본의 주구노릇을 하고, 총독의 손발을 자청하며 동족을 잔혹하게 학대, 살해하던 군, 경찰, 밀정, 낭인들이 옷을 바꾸어 입고 대로를 활보하는 것을 넘어 민족의 주인 노릇을 하며 나라의 정치와 문화, 교육과 경제를 주물럭거리고, 자신들의 이익 도모에 열을 올리는 한 치의 변함도 없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윤의 내란은 이것들, 바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 부역무리를 그대로 잔존시킨 우리의 좌절된 현대사에 그 뿌리가 있음이다. 이 책의 고귀한 가치는 그 어떤 언어로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뿌리를 내리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일본의 파시스트 세력이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게 된 연원에서부터, 친일 무리들의 극히 일부분의 척결조차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부역자들의 구체적 면면, 이 역사적 상황이 지니는 오늘의 의미까지 2025년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숙독해야만 하는 필독서라 할 것이다. 태생 자체가 기만과 거짓인 수구정당, 손쉽게 폭력을 동원하여 저항하는 이들을 짓밟음으로써 민주주의를 이 땅에서 오랜 세월 질식시켰던 것과 그 종자들이 왜 발본색원(拔本塞源)되어야 하는가를 성찰할 수 있으리라. 저자들은 이렇게 맺는다.

 

“반민특위는 1949년 실패했으나 그렇다고 지금도 실패할 까닭이 없다.... 도대체 그날 그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기억하고 알리며, 누가 가해자이고 희생자인지 직시하면 시작 할 수 있다.”고. 진실에서 후퇴하지 않는 역사를 우리는 지니고 있다고, 때문에 반민특위는 그 임무를 완수 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을 선언한다. 이제 우리들은 반민특위를 재입법하고 그 실천을 완수해야 할 역사적 임무 앞에 섰다. 윤 씨의 부패와 퇴행성 덕택에 숨어있던 친일 종자들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는가! 이것이 진정한 역사의 힘일 것이다.

 

(◆이 글에 대한 참고 글로 송건호 외 공저, 『해방 전후사의 인식 1및 그 후기 참조-나는  해방전후사 1권이 출간된 1979년 다음 해인 전국 비상계엄령 하에 군부에 의해 판금되어, 대학 3학년 이었던 1980년에 돌려 읽어 너덜너덜해진 복사된 프린트물로 읽었으며,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2021년 정상적인 책으로 다시 읽었다. 40여 년 전의 상황으로 역행하는 그 퇴행성을 인식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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