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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식
  •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 백낙청 외
  • 22,500원 (10%1,250)
  • 2024-11-22
  • : 710


“모든 것이 일체(一體)다. 풀잎 하나도 나의 동포이며, 경외의 대상이라는 자각이 없으면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구현할 길이 없다.” -23쪽에서

 

대표 저자인 백낙청 선생과 유학연구자의 대담 중 세계 ‘정신의 지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력, 군사력을 토대로 다른 나라의 자발적 복종이나 수긍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념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접할 수 있다. 그러한 사상의 씨알을 우리는 일찍이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 변혁을 위한 수단’으로서 한국 근 현대 사상의 뿌리인 ‘개벽 사상’, 특히 후천개벽의 사상으로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개교 표어는 물론, 동학과 천도교 등 20세기를 전후하여 등장한 종교 사상들이 현실의 냉철한 직시와 그에 부합하는 정신의 각성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특히 산업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몰고 온 인간의 노예로의 전락이라는 심각성에 주목하고, “정신 주체를 바로 세워 물질을 선용할 주인의 위치로 되돌려 놓으려”는 원불교 소태산(少太山) 대종사의 사상이야말로, 오늘 인간 사회가 마주한 긴박한 문제들을 모색하기 위한 보편적 사상의 길을 열어놓았다고 수용하는 것 같다. 결국 후천개벽의 사상이 작금의 세계 - AI의 세계 침투로 인한 인간 삶의 변화, 기후 변화에 따른 인간 태도,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인간정신의 물신화 풍조, 사회적 양극화 심화 및 성 평등의 문제 등등 - 를 올바르게 진단 해석하고 그 대응을 위해 한국과 동아시아는 물론 서양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태도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인가의 모색이다. 인류가 함께 사는 길이 무엇일지 탐구하기 위해 동학과 원불교, 천도교의 사상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시야를 광대하게 넓혀 보편성을 가지는 우리의 사상, K사상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책은 앞서 출간된 《개벽 사상과 종교공부》에 이은 보완으로서의 공부 과정으로, 대표저자인 백낙청 선생의 주제 하에 비교 종교학자, 원불교 교무, 유학(儒學) 연구자, 그리고 개벽 사상의 공부를 함께했던 두 전문 독자와의 대담을 담고 있다. 두 전문 독자는 대표 필자의 두 저술인 《인간 해방의 논리를 찾아서》와 《서양의 개벽 사상가 D.H. 로런스》를 전제로 후천 개벽 사상과의 연결된 논리, 서양 사상 특히 하이데거와의 충실한 만남을 통한 K사상의 나아갈 길을 성찰한다. 사실 서양 사상의 계보와 흐름은 근대라는 과학 계몽과 식민제국주의와 더불어 과격하게 흘러 동양의 사상을 제압하고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그들의 철학과 사상 이외에 보편적 사상이라고 세계에 제시하여 새로운 정신세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그 어떤 것도 동양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한국의 철학자, 일본의 철학자라 해도 서구 철학의 아류로서 그네들의 철학 논리 하에서 답습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 사회의 담론과 사상의 주도자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되살려 서양 사상이 좌절하거나 실패하고 있는 지점에서 동양의 사상이 바로 그 지점에서 사상적 해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을 알게 된 것은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서양 사상가들의 주객 이원화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현상학의 출발 이래 그 계보의 흐름은 객체지향의 철학, 존재론적 실재론 등의 관점 하에 직면한 이 세계를 성찰하고자 하는 노력들에 대한 대표 저자의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사고에 관해서는 무슨 커다란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는 듯이 그러는 게 좀 가당찮다는 생각”은 서구 사상과의 충실한 만남이라는 태도를 의심케 한다.

 

또한 K사상의 세계 선도사상으로의 모색처럼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에도 이미 서양의 상투적 형식논리를 벗어나 자신들의 정토신앙과 선불교, 그리고 대중에 내재된 민간신앙에 의해 ‘사물과 주변 환경 속에서 일상의 경험을 조직하는 것으로서의 애니미즘’을 융합한 J 사상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지상에 존재하는 생명이나 여타의 것들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갖추는 것,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소중히 여기며 풍부하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시대 변화에 따른 보편성의 철학을 사유하고 있다. 그들도 동아시아의 이중과제인 서구의 근대과학문명과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인식은 공히 우리와 다르지 않다. 대표저자의 지적처럼 “모든 생명이 존귀하고 살생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벌써 수천 년 동안 해 온 것이 사실”일지언정, 서구 휴머니즘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또한 존재론의 부활을 위한 시도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시도는 존재론의 의미를 변화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그의 존재론은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존재에 대한 존재에 관한 탐구가 되어 인간에-대한-존재에 관한 탐구로 변화되어 ‘인간의 접근에 관한 심문’이 되었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서라도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바로 오늘의 시대에 인간인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관점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결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폄훼할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이러한 사유가 우리에게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주도하지 못하지 않았나? 공부는 겸허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남의 생각을 보다 깊고 넓게 되새겨 볼 수 있는 것 아닐까하고 여겨지는 지점이라 잡설을 늘어놓게 되었다. 대표 저자의 설명처럼 “존재론은 결국 모든 존재자가 공유하는 그 존재성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토론”이듯, 현재 진행 중인 서양과 동양의 사상 속 존재론에 대한 탐구에 보다 열린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원불교가 중시하는 독트린의 하나인 무아윤회(無我輪廻)또한 그렇게 독특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개체의 해체이자 새로운 형성으로 환생을 정의하며, 개체는 단순한 결합으로 소멸하지만 본질 자체는 형이상학적으로 존속한다는 서양 사상의 흐름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부록』 중 한 논문으로 「우리의 참된 본질은 죽음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에 관한 이론」과 그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Ⅱ권 43장 <특성의 유전성>은 무아유전의 서양인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K사상을 어떻게 세계 보편 사상의 길로 걷게 할 수 있을지에 탐구인 동시에 공부이기에 특정 종교와 신앙에 갇혀 사상이 독불장군식 편협함으로 기울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서 얕은 생각을 소개해 보았다.

 

끝으로 공부하는 책으로서 탐구의 한 과정이라 인식하기에 한 가지 납득하기 거북한 지점을 제기해 본다. “인과보응에 기반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정도를 걸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인생은 무너진다. 세상은 답이 없는 혼란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구절이다. 과학성과 과학적 지식의 구별을 설명하는 여정에서 “인식이 과학적이어야 함”의 강조와 어쩌면 관련된 물음이기도 할 것 같다. 이 문제는 이미 오래된 철학적 논의라서 새삼스럽기까지 하지만, ‘만일 법칙들이 필연적이지 않다면 세계도 의식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단지 일관성도 잇따름도 없는 순수한 잡다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라는 근대 계몽주의자들의 과학적 인식의 주장은 과학적 인식이 약화되거나 사라지면 곧 세계에 대한 주관적 표상 일체가 와해된다고 결론짓는 것인데, 여기에는 중대한 결점이 있어 보인다. 어떤 법칙도 따르지 않는 세계는 그것이 정돈되어 있는 대신 카오스적이어야만 한다는 필연적 법칙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가이다.

 

대체 그 정당성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자연의 안전성과 필연성을 동일시하는 연역은 심하게 그릇된 것 아닌가? 필연성, 즉 인과성의 부재를 곧바로 안정성의 부재로 확장하는 그 무의식적 추론에 대해 그 출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과연 과학적 인식의 세계는 정말 선물인가에 대한 위험을 동일하게 지각하지만 그 근원에서 커다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차이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사유를 위해 과학적 인식이란 정말 요구되는 것인가에서 바로 갈라질 것이다.

 

나는 은혜 속에 살고 있으면서 보은의 생각이 없는 오늘의 우리네에게 요구되는 타력(他力)의 지적이나, 공변 될 공(公)과 빌 공(空)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한 원불교의 사상, 물질개벽이라는 현실 체제의 이해와 그에 맞춘 필요개념과 인재를 만들어 내려는 정신이 이미 우리네 사유에 깃들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아무쪼록 후천개벽 사상을 토대로 하여 보다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세계의 사상으로 내딛는 걸음걸이가 확고하게 다져지고, 그 정신에 깃든 양성평등과 민초들이 역사의 주체임과 배타성이 사라진 모든 사상이 하나의 진리로 구현 될 수 있기를 진정 응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이다. 퇴계의 충고처럼 부디 치열한 ‘부석(剖析)’의 과정을 통해 당당히 K사상이야말로 당면한 인류의 현안을 분석 규명하고 그 대안적 가치를 제안할 수 있는 보편 철학으로 거듭 나기를 기원한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한 (주)창비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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