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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구석방
  • 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
  • 17,550원 (10%↓970)
  • 2025-11-18
  • : 71,655

<최소한의 삼국지 : 최태성의 삼국지 고전 특강> 최태성 / 프런트페이지 (2025)

[My Review MMCCCLX / 프런트페이지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아홉 번째 리뷰는 '소설 삼국지'를 읽는 가장 쉬운 공식을 일러주는 <최소한의 삼국지>다. 최태성의 한국사 특강을 듣고 본 수강생만 무려 7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일타 강사'라고 소개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런 최태성이 이번에는 '소설 삼국지'를 꺼내 들었다. 일단 최태성이라는 '네임벨류'만으로도 기대치가 샘 솟는다. 허나 너무 쉬운 강의가 독이 되었을까나? 대한민국에 '삼국지 매니아'가 너무 많은 탓에, 이 책이 고수들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너무 '기초'적인 설명이라 아쉬움도 컸다. 허나 제목에도 적혀 있다. <최소한의 삼국지>라고 말이다. 그럼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을 살펴보러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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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삼국지> 관점 포인트 :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적 기초 교양은 <삼국지>로 통한다. 그만큼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가 조선 중기 16세기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무려 400여 년간 인기몰이를 해온 것이다. 우리 민중들이 즐겨 듣던 '판소리 열두 마당'에도 '적벽가'가 널리 불렸을 정도로 그 인기는 꾸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다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대신 '소설'보다는 '유튜브' 등에 짧은 쇼츠를 통해서 다채로운 '삼국지 강의'가 선보이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쇼츠를 비롯한 동영상 강의만 보다보면 '깊이'가 부족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10권짜리 장편대하소설을 읽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그래서 출판계가 꺼내든 것이 다름 아닌 '한 권짜리' <삼국지>다. 이 책 <최소한의 삼국지>도 그 일환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무려 '최태성'이다. 이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무한히 높아질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 부문 '일타 강사'로 소문난 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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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책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소설 삼국지'에 빠삭한 독자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 공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삼국지 3대 대전'으로 초집중 요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이 그것이다. 왜 이 세 차례의 전쟁이 '소설 삼국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공식일까? 물론 엄청 큰 규모로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소설 삼국지'는 그냥 허구적인 내용으로 창작한 소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이해가 쉬운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중점적으로 봐야할 대목이 무엇일까? 바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해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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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 좀 해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을 아무리 외워봐야 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 관계'부터 사건의 앞과 뒤에 벌어진 '인과 관계'와 '결말 연계'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역사공부가 즐거워지고 성적도 쑥쑥 오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일타 강사'들은 그저 달달 외우는 공식만 알려주지 않는다. 그 공식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주면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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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최소한의 삼국지>를 다시 보자. 왜 '관도대전'이 중요할까? 단순히 조조와 원소가 싸워서 조조가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7만 조조군 vs 70만 원소군'이라고 보면 조금 이해가 쉬워진다. 그리고 조조가 '어떻게' 10배 차이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둘 수 있었는지 이해하면 '소설 삼국지' 초반에 벌어지는 여러 군웅들의 치열한 싸움이 이해되고, 관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조조가 어떤 결과와 이득을 챙겼는지 분석 가능하면 '인문학적 교양'이 쌓인 것이고, 일상 대화에서도 '관도대전'과 비슷한 국제뉴스가 나오면 국제정세의 판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진짜 교양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애초에 조조가 원소를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면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수 vs 다수'의 싸움에서 소수가 대승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관도대전'은 그 유명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승리의 비결이 같기 때문이다. 작은 소년이 거인을 상대로 승리한 비결은 '힘의 대결'이 아니라 '지략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슬링어(돌팔매)'라는 무기로 거인을 제압했던 것이다. 단순히 돌을 잘 던졌다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급소를 찌르고 아군의 빈틈을 솔직히 '인정'하고 적군의 빈틈을 전력을 다해 몰아부친 결과 70만이었던 원소군은 고작 7만에 불과한 조조군에 완패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군은 원소군의 숨통을 조여 완전히 전멸시키고 '하북의 진정한 주인'으로 일어섰다. 그 결과 조조는 '중원'의 참주인이 되었고, 명실상부한 황제보다 더 황제 같은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도대전의 승자'가 된 조조는 더는 자신의 암살시도 같은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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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적벽대전'을 살펴보자. 황제처럼 군림하게 된 조조가 남쪽을 정벌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래서 강동의 손권을 치기 위해 먼저 '강동의 길목'에 해당하는 형주땅을 차지하려 들었다. 그런데 마침맞게 그곳에 '유비'가 있었다. 그래서 첫 시작을 유비가 지키고 있는 '신야'부터 조지고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유비가 달라졌다. 조인을 상대로 가뿐히 승리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유비에게 '책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서서' 말이다. 그간 유비에게는 변변한 책사가 없어서 서주나 여남 등 '거점'이 생겨도 지켜내지 못해 지리멸렬 했었는데, 서서라는 책사가 생기자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유비에게 책사를 빼앗으려 했다. 그렇게 서서를 잃은 유비는 망연자실 했지만, 삼고초려를 통해서 '제갈량'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천하삼분지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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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하삼분지계'가 '적벽대전'의 앞과 뒤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촉오 삼국이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적벽대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적벽대전 직전과 직후를 살펴보면, 유비에겐 여전히 '거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대전 이후에 '형주땅'을 차지하고, 나아가 '익주땅'까지 꿀꺽하여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게 바로 '천하삼분지계'의 묘미였고, '제갈량의 대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하나의 묘미는 '적벽대전'에서 실제로 전투를 벌인 것은 '100만 조조군 vs 10만 손권군'이란 사실이다. 유비는 직접적인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서 '유기의 영지'였던 강하에 틀어박혀 있다가 조조군이 적벽에서 대패를 하고 퇴각하는 길목인 '화용도'에서 조조군을 뒤쫓아 전리품을 챙겨 이득을 보았던 것이다. 그 뒤에 찾아온 주유를 속여서 '남군성'을 차지하고, 강릉과 양양까지 유비의 영지로 차지한 뒤에 영릉, 장사, 계양, 무릉까지 확장시켜 '형주땅'의 주인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이렇게 싸움은 조조와 손권이 하고, 이득은 유비가 차지하는 것이 '적벽대전'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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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릉대전'은 왜 일어났을까?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모든 것을 날로 먹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손유동맹'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관우의 실책'이 한 몫했고, 포로로 붙잡힌 관우를 손권이 '죽임'으로써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그래서 조조와 맞서기 위해서 동맹을 맺은 유비와 손권은 자중지란을 일으켰고, 그대로 '이릉대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싸움은 장기전으로 들어갔는데, 초반에는 유비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유비의 분노가 컸던 덕분이고 손권쪽에 주유와 여몽 사망 이후에 변변한 인재가 없었던 탓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다 '육손'이란 약관의 총대장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수세에 몰리던 손권군이 패배하지 않고 '수성'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활발했던 초반의 승리와 달리 전투도 없이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오랜 시일이 지나자 먼저 지친 쪽은 대군을 거느린 유비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순간의 실책으로 유비군은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숲속으로 '영채'를 옮기고 일자로 길다란 '장사진'을 펼치자 육손은 드디어 때가 왔다며 '화공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장사진을 펼친 유비군의 측면을 노려 '소수 병력'으로 '대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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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글 : <최소한의 삼국지>는 이렇게 '3대 대전'의 맥락을 한 눈에 파악하게 해줌으로써 방대하고 길고 긴 '소설 삼국지'를 독파하는데 든든한 '지렛대'가 될 수 있는 만능열쇠를 쥐어 준다. 그러면서 최태성은 하나 더 던져준다. '소설 삼국지'를 읽는 키워드로 '절제'를 꼽은 것이다. 한마디로 '참고 견디는 자가 끝내 승리를 거둔다'는 진리를 풀어준 것이다. 3대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군을 몰고온 관도대전의 원소군, 적벽대전의 조조군, 이릉대전의 유비군은 결국 패배했다. 그리고 반대로 소수였던 조조군, 손권군(주유), 손권군(육손)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만약 소수의 열세인데도 참지 못하고 맞붙었다면 결국 패배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잘 참고, 잘 버티고, 잘 극복해준 덕분에 끝끝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고, 이후에 벌어진 '판도'에서 유리한 이점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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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를 읽다 보면, 3대 대전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비도 어려움과 고난을 잘 버티고 극복한 결과 '촉한의 황제'까지 오를 수 있었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가 생기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한 눈에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을 논하지 말라"다. 이는 단순한 횟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포인트'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 삼국지'를 열 번 읽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줄거리만 달달 외울 뿐, 사건와 인물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읽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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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소설 삼국지'를 몰라도 상관이 없다. 보통 10권의 분량이고, 한 권에 300쪽이면 무려 3000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열흘이나 걸리고, 사흘에 한 권씩 읽어도 한 달 내내 읽어야 한다. 뭐, 재미가 있으니 그렇게 읽어내는 분들도 많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걸 세 번이나 읽으라면 석 달 내내 '소설 삼국지'만 들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충 100일 동안 읽게 될텐데 할 수 있겠는가? 웅녀도 삼칠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사람'이 되었으니 굳은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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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무려 2000년 전에 벌어진 이야기를 왜 현재의 우리가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소설 삼국지'에 엄청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하더라도 해묵은 정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소설 삼국지'는 여성을 폄하하고 남성들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등 오늘날의 올바른 젠더 가치관에도 어긋나는 불편한(?) 내용이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수천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하는 일이라고는 '전쟁'과 '사기' 등 남의 등을 치는 등 '속임수'가 판을 치고, 서로 뺏고 뺏기는 '도덕불감증'이 여실한 내용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부정적인 내용이 가득한 책인데도 '필독서'라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고 또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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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맞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는 요즘의 정서와 가치관이 추구하는 '올바름'과는 거리가 먼 축에 끼인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는다. 부정적인 내용일망정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보면 정말이지 '혼돈, 그 자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마치 후한말 황제가 무능해서 환관들이 국정농단을 벌여 세상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고달퍼지자 여기저기 난이 일어나고,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해서 천하가 뒤바뀌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실수'는 계속 똑같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힘이 부재하는 순간 깨어지기 마련이다. 황제의 권한이 강하면 국가는 안정되겠지만 반대가 되면 국가는 어지러워지기 마련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강했기에 평화가 지속될 수 있었는데, 그 반대가 되니 평화가 깨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무능한 지도자'가 똥뽈을 차는 순간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이런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영웅의 등장'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영웅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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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설 삼국지'가 예언서는 아니기에 일대일 대응하듯 매칭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속고 속이는 계책과 뺏고 뺏기는 전쟁이 한가득 펼쳐지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지혜와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필독서'로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방대한 소설이라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면, 이 책 <최소한의 삼국지>가 대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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