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팔부 2 : 육맥신검> 김용 / 이정원 / 김영사 (2020)
[My Review MMCCCLI / 김영사 3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 번째 리뷰는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열심히 거두는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천룡팔부 2>다. 소개가 너무 거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뿌린 씨앗'이라는 게 결국 '불륜'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도 모자라서 그의 아들인 '단예'가 사랑하는 여인들이 죄다 단예와 애정 관계로 맺어졌고, 그 가운데 한 여인과는 '혼인'을 약속했고, 또 다른 한 여인과는 피치 못할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아버지가 사랑했던 '과거의 여자들'이 딸을 낳았으니 모두 '그의 친딸'이었다. 그럼 단예와는 무슨 사이가 되는 걸까? 이래도 괜찮은 걸까?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천룡팔부 2> 관점 포인트 : <천룡팔부 2>의 부제는 '육맥신검'이다. 대리국 황제 단씨의 '가전무공'으로 심후한 내공으로 점혈권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양지'를 응용해서 손끝에 내공을 주입해서 검기를 서리게 만들어 검술을 부릴 수 있는 독특한 무공이다. 그렇다고 열 손가락 모두 검기를 서리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른손 다섯 개와 왼손 소지(새끼손가락) 한 개를 더해 모두 여섯 개의 검기로 검술을 부릴 수 있는 무공이다. 기왕이면 열 손가락 다 검기를 서리게 하면 될터인데 왜 여섯 개일까? 그건 손끝에 검기를 서리게 하기 위해서 순전히 심후한 내공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공수련을 오래 했다고 하더라도 10년 수련에 손가락 한 개꼴로 검기를 서리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6개의 검기를 서리게 만들려면 적어도 60년 동안 수련을 해야 하니, 사람의 수명이 더 길고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더 많은 검기를 서리게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칠맥신검'이나 '팔맥신검'이 아닌 '육맥신검'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더구나 한 개의 검을 수련하는 것도 심혈을 기울여 집중을 해야 수련할 수 있을 터인데, 한 손에 하나의 검을 들고 모두 2개의 검술을 수련하는 검술도 있지만, 그 이상의 수를 사용하는 검술을 수련한 이들은 '현존'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거에도 들은 바가 없다. 그나마 중국 경극에 등장하는 '연개소문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항상 등 뒤에 5개의 검을 달고 연기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당태종과 연개소문이 전쟁을 벌였을 때 당나라가 패배한 까닭이 연개소문이 너무 뛰어난 전략을 사용했고, 심지어 연개소문의 무공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천하의 당태종이라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래되었으며, 이때 연개소문이 당태종과 싸울 때 칼을 다섯 자루가 들고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선보였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단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에도 '경극 무대'에서 연개소문과 당태종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연개소문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는 등 뒤에 칼을 5자루나 꽂은 채 등장한다고 한다. 이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에 해당한다. 경극에서도 당태종은 연개소문에게 패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당태종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칼 5자루'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육맥신검'은 무려 여섯 개의 검을 한 사람이 사용하는 검술 무공인 셈이다. 가장 검을 잘 다뤘다는 연개소문보다 1개 더 많게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여섯 개의 검술을 시연할 수 있는 것일까? 무협소설에서는 손가락을 단련하여 무공을 펼치는 무술이 여럿 등장하지만, 그나마 강시처럼 손톱을 길게 길러서 쓰는 정도다. 그러나 육맥신검은 무려 '검기'를 부리는 무공이다. 손 끝에서 나온 검기가 아무리 짧아도 '은장도'보다는 길 것이다. 보통의 은장도 길이가 '젓가락 길이' 정도이니 대략 '한 뼘 정도의 길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손 끝에 젓가락을 달아놓고 다섯 개를 이리저리 휘둘러 보면 정말 힘들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손가락에서 나온 검기가 내력을 조절하여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오른손 검기 하나, 왼손 검기 하나를 이용해서 마치 '이도류 검술'을 펼치고, 오른손에서는 다섯 손가락에서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검기가 출수할테니 그야말로 기묘하고 예측이 힘든 검술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묘한 검술을 무술도 하나 할 줄 모르는 '단예'가 배우지 않고도 배우게 되었다. 이는 단예가 본격적으로 강호로 나서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이고, 또한 단예와 의형제를 맺는 교봉과 허죽을 만나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
이렇게 '무협소설'다운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김용의 소설에서는 여기에 '애정소설'이 더해진다. 그래서 김용 소설을 즐겨 읽는 여성독자들도 많다고 한다. 남녀 주인공들이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허나 무협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애정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낭만적인 느낌은 덜 하다. 그저 '일일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파극 느낌'마저 들기 때문에 그냥 '20세기 사랑공식'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듯 하다. 분명 더 오래전 '시간적 배경'을 갖고 있는 소설인데 '현대적 사랑공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대적 배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송나라가 건재하던 10~11세기 시대 배경을 바탕에 깔아두고 있다. 그나마 송나라 때가 '유교 전통'이 강요되었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연애'가 아니라 '중매'다. 그래서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부모의 허락이나 중매쟁이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던 답답한 시대였다. 그나마 이런 전통에 얽매이는 것은 '중원'으로 한정하고, 중원에서 벗어난 곳에서는 조금 허용을 해주며, 여기에 '강호'라는 프리미엄이 더 붙어서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름 교양을 갖춘 사대주 집안이라면 응당 '격식'을 따르는 것이 사람된 도리로 여겼다.
그런데 단예의 아버지 단정순은 젊은 날 진홍면과 사랑을 나눠 목완청을 낳았고, 뒤이어 감보보와 사랑에 빠져서 종영을 낳았다. 나중에 더 밝혀지지만 단정순이 뿌린 씨앗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런데 문제는 단정순이 낳은 유일한 아들인 '단예'가 무술을 배우라고 강요하는 아버지가 싫어서 가출한 김에 강호 유람을 떠났다가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첫눈에 반하고, 여러 위기를 함께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젊은 남녀 사이의 애정이 싹트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급기야 피치 못할 강박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혼인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랑이 결실을 맺어 단예와 목완청은 부모님 앞에서 혼인을 허락 받고 약속을 지켜질 찰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들을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게 만들고 말았다. 아니 더욱 친숙한 사이가 되게 만들었다. 왜냐면 단예와 목완청은 '친남매' 사이로 확인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단정순은 아직 황위에 오르진 않았지만 형님인 보정제가 슬하에 자식이 없어 대리국의 황위를 동생인 단정순에게 넘기기로 약속을 했다. 근데 그 약속이 맺어지지 전에 단정순은 황위에 오를 자격이 없는 황자였으니 궁궐 안에 있기보다 강호를 떠돌며 유람을 즐겼던 것이다. 단정순은 무술 실력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미남자'였기에 가는 곳마다 염문을 뿌렸고 그때마다 찐한 사랑을 나눴다. 그렇게 여러 미인과 사귀게 되었는데 '정력'도 타고났던 모양인지 그렇게 미인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자식을 쑴풍쑴풍 잘도 낳았다. 하지만 단정순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왜냐면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을 때까지 미인과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 오래 사귀지 못하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보정제와의 약속을 맺고 지키기 위해서다. 황제가 될 수 없었던 황자였는데, 이제는 황제가 되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황제에 걸맞게 '정실부인(왕비)'을 맞이해 정식 혼인도 해야만 했다. 그게 바로 단예의 엄마 '도백봉'이었다. 이렇게 해서 단정순은 사랑보다 황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예전에 사귀었던 미인들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의아할 것이다. 황제에게는 후손을 번창시킬 '의무(?)'도 있었기에 정식부인 말고도 첩에 해당하는 '후궁'을 여럿 들이는 방법도 있었을테니, 이전에 사랑을 나눴던 미인들을 모두 황궁으로 불러 들여 후궁이나 귀인으로 삼으면 될 것인데, 왜 도백봉 한 명만을 부인으로 두고, 과거의 연인은 모두 내치고 말았을까? 그 비밀은 단정순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미인들'에게 있다. 바로 여인들끼리 서로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다는 '전형적인 설정'을 짠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이 아닌 '근대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띠어 일부일처를 고집하고, '다첩제'를 결사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송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람직한 여성상은 가문의 후손을 생산하여 번성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인데, 어찌 하늘같은 지아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자 여인들끼리 시기, 질투, 복수까지 일삼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김용의 소설이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적 여성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한 셈이다.
나가는 글 : 허나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20세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21세기에는 말할 가치도 없는 '진부한 사랑이야기'로 보일 뿐이다. 더구나 여인들이 향하는 사랑은 '한 곳'만을 바라볼 뿐인데, 남자들이 사랑하는 방식은 '사방팔방'이다. 이런 사랑공식이 요즘에도 통할 듯 싶은가? 여성독자들도 외면할 뿐만 아니라 남성독자들도 이런 사랑을 원치 않는다. 왜냐고? 요즘 젊은 남자들 경제적으로 '자립'은커녕 '자족'하기에도 빠듯한데 언제 연애하고 데이트하고 사랑 나누고 결혼해서 애낳고 돈까지 모아 차사고 집사겠냔 말이다. 이렇게 한 명의 여자를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인데, 바람피우고 불륜 저지르고 다닐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 이런 '문어발식 연애'는 남자들도 노땡큐다.
그런데 김용의 소설에는 이런 '애정소설'에 관한 내용이 참 많다. <사조영웅문>의 곽정, <신조협려>의 양과,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소오강호>의 영호충, <녹정기>의 위소보 등 한 명의 남자 주인공에 여자 주인공이 여럿 등장하고 매칭시키는 방식이 김용 스타일이기도 하다. 반면에 김용과 동시대를 살았던 <백발마녀전>의 양우생 작가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펴냈다. 그의 작품 <명황성> 3부작에서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두 '제 짝'을 만나 일편단심으로 끝까지 인연을 맺는 사랑공식을 펴내서 비교가 된다.
그런 까닭에 80~90년대에 김용의 소설을 읽었을 때와 지금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 시절에는 단예, 교봉, 허죽 의형제 가운데 '단예'가 많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거고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아련하고 가장 하고 싶은 사랑은 단연코 '교봉과 아주의 사랑'이다. 교봉은 훗날 친부를 찾고 '소봉'이라 이름을 고치지만, 이름을 고치게 된 사연보다 아주와 인연을 맺고 사랑을 확인하는 그 장면이 너무도 애뜻했기 때문이다. 벌써 30년도 더 넘었는데 지금도 그 대목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이제 곧 그 장면을 만나게 될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