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숲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일리아스 :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호메로스 / 질리언 크로스 / 장은수 / 윤영 / 더숲 (2026)
[My Review MMCCCXXIX / 더숲 1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여덟 번째 리뷰는 서양 문학의 첫걸음 <일리아스>다. 서양 고전문학을 시작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호메로스가 쓴 두 책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서양의 어린이들은 이 책을 정말 두고 두고 읽고 공부하게 된다. 자신들의 '정신'을 떠받치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인 '헬레니즘'의 원류인 그리스문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고전 카테고리이지만, 이걸 우리가 '그대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의 '정서'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이 '트로이아 전쟁'이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근본을 '전쟁'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쟁이긴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는 전쟁은 '부정적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그렇다고 서양인들이 전쟁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평화'를 사랑한다면서도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결코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피지배'적인 위치에 놓이면 안정적이어도 못마땅해 한다. 이를 뭉뚱그려서 '명예'라고 말한다. 이 책 <일리아스>에는 바로 서양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쟁'과 '명예'가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일리아스 :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 관점 포인트 : 호메로스가 쓴 원전 <일리아스>를 읽고자 하면 어려운 점이 두 가지다. 첫째는 벽돌책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분량'이고, 둘째는 고대의 언어를 '현대어'로 옮기는 것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나 고대 그리스어로 '색채'와 '풍경'을 묘사한 대목은 현대인들이 언뜻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꽤나 많다. 심지어 바다를 묘사할 때도 '와인빛'이라고 하는데, 이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으려면 '깊이가 깊어서 짙푸른 바다'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한다. 그래서 단순한 정경묘사인데도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군과 트로이아군이 바다에서 치열하게 싸워서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거나 태양빛이 작렬한 오후가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데,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바닷빛깔을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표현했다고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기준이 바로 '번역'이다. 기본적으로 '서양문화'에 이해가 깊지 않은 이가 번역을 하게 되면 이런 평범한 정경조차 아주 심각한 '오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의 기본적인 줄거리조차 엉망으로 이어나갈 위험이 한가득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원전 번역'한 질리언 크로스라는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0년 넘게 아동 및 청소년 도서를 집필한 영국 대표 작가이면서, 옥스퍼드와 서식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세련된 문체로 호메로스를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아주 잘 간추린 작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이 책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읽힐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리아스>다. 하지만 질리언 크로스의 책을 '우리말'로 다시 한 번 '번역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굳이 '아동용'이나 '청소년용'으로 한정하고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겐 애초에 '서양의 고전'이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부제가 딱 맞다. 성인 독자라하더라도 호메로스를 처음 듣는 이가 대다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리아스>의 원전을 빠삭하게 다 읽은 독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처음 접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먼저 일독한 뒤에 '원전'을 즐기거나,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딧세이>를 감상하길 권한다. 그러면 서양 고전이라는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양 문학의 원류를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본다.
사실 <일리아스>의 주요 내용은 아가멤논에게 브리세이아를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서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레스를 죽인 트로이아의 명장 헥토르를 죽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에게 전달하고 헥토르의 장례식을 엄숙히 치루는 것까지다. 허나 널리 알려진 줄거리는 '황금사과'의 주인을 가르는 파리스의 선택으로 시작해서 '트로이 목마'가 등장해서 그리스연합군이 대승을 거두는 장면까지 다루는 내용으로 요약해 놓은 줄거리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트로이아 전쟁'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까닭은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대서사시를 호메로스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작가가 전체 내용의 일부분씩 나눠서 '연작'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온전하게 남겨진 두 작품이 바로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전체 줄거리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고 '일부분'만 남겨져 전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 일부분마저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껴넣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일리아스>의 주제는 '전쟁'과 '명예'라고 말했다. 전쟁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미녀 헬레네가 젊고 건장한 미소년 파리스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보답'으로 둘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파리스가 살고 있는 트로이아로 헬레네가 따라갔기 때문에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을 말한다. 아니 두 남녀의 사랑이 왜 전쟁으로 촉발되었단 말인가? 그건 헬레네가 '유부녀'였기 때문이고, 그것도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헬레네를 '납치(?)'해간 파리스는 트로이아 왕국의 둘째 왕자였기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었던 것이다. 무슨 전쟁이 장난도 아니고 '여자 한 명'이 발발원인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건 다름 아니라 '명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변심한 여자를 다시 빼앗아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자기 아내를 빼앗긴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서 벌인 전쟁이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국가간의 전쟁이 고작 그런 이유로 벌어질까 싶지만,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도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해서 당당하게(?) 빼앗은 전리품인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브리세이아'를 총사령관인 아가멤놈이 가로챈 것에 '분노'하고 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서양 문학의 근원이라 일컫는 <일리아스>의 골자가 바로 '명예'이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고작 '자기 몫'을 정당히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거나, 심지어 빼앗기면 무시무시한 '분노'를 뿜어내고, 그로 인해 '전쟁'까지 불사하는 것이 주제인 셈이다. 우리네 관점으로 살펴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님이라도 날 버리고 떠나는 것까지는 막지 않고, 그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 나라고 원망하는 것이 고작인 우리에게 '전쟁'이 그렇게 쉽게 벌어지는 것이 이해될 리 없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명예'가 손상되면 죽음을 건 '결투'를 벌이는 것이 일상이고, 명예를 잃는 것을 '사는 것'보다 더 높은 순위로 삼고 있다. 어찌 하나 뿐인 생명을 두고,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놓을 수 있는 것일까? 이들에게 삶은 '명예,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서양인들은 생각보다 뒤늦게 발전했다. 중세까지 그들의 삶은 정말 보잘 것이 없었고, 르네상스 이후에 '인본주의'에 눈을 뜨면서 자신들의 고대문화가 현재의 삶보다 더 찬란했음을 눈 떴던 것이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서구 사회가 점점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점차 유럽을 넘어 세계로 힘의 영향력을 떨치게 되었다. 이른바 '근대화'를 이룩한 것이다. 이렇게 되찾은 '과거의 영광'을 증명을 하기 위해서 그들은 '역사'라는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서양 문명이 세계의 근원임을 찾기에 혈안이 된다. 그리고 결국 찾게 된다. 바로 헤로도토스와 호메로스를 비롯한 '역사'와 '서사'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과거에 얼마나 찬란한 문명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온갖 이론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오늘날 '서양중심사상' 이른바 '백인우월주의'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와 서사를 더 크고 화려하게 부풀리기를 시작한다. 바로 '죽음의 미학'이다. 다름 아닌, 죽음마저 아름답게 만드는 서사, '명예'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웅에 이런 서사를 덧입히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트로이아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그리스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지중해 전역에 방대한 '폴리스(도시국가)'를 구축하고, 폴리스를 거점으로 강력한 해상무역을 실시해 성장해 나간다. 그런데 '트로이아'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서 지금의 튀르키에 서쪽을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일대를 장악하고 성장해나갔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리스는 해상무역으로 독차지했던 이점을 새로운 경쟁국에게 모두 빼앗길 판이다. 그러던 참에 그리스인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는 것을 빌미로 트로이아로 몰려 갔고, 그 전쟁이 무려 10년이나 이어졌다는 것이다. 말이 10년이지 수백 척의 배를 몰고 가서 '트로이아 해변'을 애워싸고 장장 10년 동안 농성을 한 것이다. 트로이아는 거대한 성벽으로 보호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고, 전쟁을 벌인 쪽이나 막은 쪽이나 정말이지 독종(?)이 아닐 수 없다.
자, 이야기는 다시 소설속으로 돌아간다. 아킬레우스가 분노한 것은 바로 전쟁이 9년째에 접어들면서다. 9년동안 싸웠던 기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전황이 이어졌는지 잘 모른다. 암튼 두 나라는 서로 결정적인 치명타를 받지 않고 '대치중'이었으며, 9년째에 접어들면서 무적을 자랑하는 아킬레우스가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앞서 얘기한 명예를 실추당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리스연합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한다. 이를 틈타 트로이아군의 명장 헥토르는 그리스연합군의 맹장들을 하나하나씩 꺾으면서 '기선제압'에 성공했고, 급기야 그리스연합군이 머물고 있는 해안가까지 내몰리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참전'을 요구하지만, 여전히 명예를 되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직접 공격받지 않는 한 참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파트로클레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와 뮈르미돈 전사들을 빌려 '대신' 참전하기로 한다. 그러다 파트로클레스는 헥토르에게 일격을 당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아킬레우스를 또다시 '분노'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그 분노의 방향이 아가멤논이 아니라 헥토르였다. 하나는 '전리품'을 빼앗긴 분노였지만, 다른 하나는 평생를 함께한 '우정'을 잃은 분노였다. 다른 관점에서는 '사랑'을 빼앗긴 분노였다. 자신이 9년동안 원치 않은 전쟁에 끌려온 보상으로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브리세이아를 향한 사랑이었지만, '동성애'가 일상이었던 그리스 사회에서 어릴 적부터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제자'였던 파트로클레스를 향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예도 잃고 사랑도 잃은 아킬레우스는 하늘이 떠나가라 '노여움'을 뿜어낸다. 그리고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화답한 신들도 아킬레우스의 승리를 노래하며 응원하게 된다. 그 결과 트로이아를 단단히 지키던 단 하나의 명장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앞에 죽음을 맞이한다. 장장 9년동안 이어진 전쟁이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다. 이 뒷이야기는 헥토르의 죽음 이후 나가서 싸울 힘을 잃은 트로이아는 단단한 성벽에 의지해 1년간 더 버티지만, 꾀주머니 오디세우스에 의해 '트로이 목마'를 남겨두고 그리스연합군이 물러가자 승리한 줄로 착각한 트로이아인들은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가고, 밤새 축제를 벌이지만 목마 안에 감춰있던 그리스군이 성벽의 문을 활짝 열자 그리스군이 성안으로 물밀듯이 몰려들어 성을 함락하고 그리스연합군이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나가는 글 : 결국 <일리아스>는 '침략전쟁'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고전 문학의 원류'라는 반열에 올려두고 숭배(?)할 까닭이 있을까? 아무리 실제 역사를 기록한 '인류 최초의 대서사시'라는 타이틀을 걸어둔다고 해도 결국 '침략'하고 '파괴'했다는 기록일 뿐인데 말이다. 어렵고 힘든 전쟁에서 끝내 승리를 거뒀기에 더 영광스럽게 여길 사람들은 결국 '그리스인'이고, '유럽인'이며, 넓게 봐도 '서양인(백인)'만의 영광이다. 이걸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반열에 올려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말한다. <일리아스>에서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지만 '헥토르'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아킬레우스는 '반신반인의 존재'로 불사의 몸을 가졌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슨 절대 질 수 없는 '무적'이며,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에 반해 헥토르는 '필사의 몸'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최전선'에서 앞장서서 싸우지 않고, 몸을 사리며 뒤로 물러서는 비겁한(?) 모습도 보인다. 신들마저 헥토르에게 당부할 정도다. 전투에서 승리할 '운명'이지만 필사의 몸으로 헥토르가 앞장서서 싸운다면 죽을 수도 있으니 몸을 사리라고 말이다. 이렇게 헥토르는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렇게 <일리아스>는 필사와 불사의 대결을 보여준다. 결국 불사가 승리할 수밖에 없지만 필사도 불사 못지 않게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피할 수 없는 '신의 분노'와 같다. 그런데도 그런 신들의 분노에 맞서 '인간의 몸', 다시 말해 '필사의 몸'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는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건 서양인들이 말한 '서구우월주의'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애초에 <일리아스>에 그런 '우월주의'따윈 없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의 위대한 서사시'가 펼쳐진 것이다. 승리의 영광은 '신의 몫'일지라도 승리보다 더 값진 '명예'를 건진 것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헥토르'였던 것이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바로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으러 간 프리아모스 왕의 간절한 요청이었다. 헥토르를 비롯해서 수많은 아들을 죽인 '살인자의 손'에 입을 맞추며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아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모습에서 인간이 신(운명)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침략자'의 야만적인 행위 앞에서 '문명'과 '교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문명국을 침략한 '야만적인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신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을 멈추고 이제 인간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자는 '반전의 대서사시'인 셈이다. 신들 앞에 인간은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인간은 '신의 분노' 앞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며 끝까지 '명예'를 지키고, '인간답게' 살고자, 다시 말해 '필사의 존재답게' 살고자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일리아스>의 진짜 주인공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헥토르다. 명예롭게 죽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불사의 존재들에게 명예란 그저 '손해'를 따지고 '자존심'을 되찾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필사의 존재에게 명예란 감히 '하나 뿐인 목숨'과도 맞바꿔서 지켜야 할 '불굴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승리 따위는 신들에게 양보하더라도 패배한 인간이 치욕스런 삶을 구차하게 연명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너희가 진정한 승리자라면 패배자에게도 능욕을 안겨주지 않고 '명예'를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 당당한 요구인 셈이다. 프리아모스 왕의 이런 모습은 아킬레우스에게 무한한 감명을 주게 된다. 그래서 헥토르의 시신을 정중히 되돌려주고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룰 수 있도록 안배해준 것이다. 자신이 치졸하게 명예를 따지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바람에 잃은 것이 무엇인지 상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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