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 삼국지 7 : 서촉을 정벌하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III / 휴머니스트 5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일곱 번째 리뷰는 유비가 방통의 도움을 받아 입촉에 성공하는 <이희재 삼국지 7>이다. 주유의 죽음에 이어, 이번에는 '방통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주유가 제갈량을 시기하다가 죽음을 재촉했다면 방통은 제갈량을 질투하다가 죽음을 앞당겼다고 소설 <삼국지>에서는 전하고 있다. 바로 방통이 입촉을 하는 와중에 '유비가 타던 말(적로)'로 바꿔 타는 바람에 유장군의 매복 작전 때 방통이 유비 대신 '저격'을 받아 죽었고, 마침맞게 그 장소가 '낙봉파'였던 탓에 봉추(봉황의 새끼)라 불리던 방통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이번에 해보려 한다. 자, '책사편' 방통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희재 삼국지 7> 관점 포인트 : 7권의 시작은 조조 vs 마초의 전투로 시작한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마초와 한수가 조조를 장안까지 밀어붙이지만, 아직 조조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초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초반에 조조군은 당황하지만, 흙담에 물을 부어 '얼음 성벽'을 하룻밤만에 쌓아올리며 마초의 기병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조조는 '가후의 꾀'를 수락하며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 시키는 계략을 꾸미게 된다. 천하무적의 기량을 뽐내던 마초였지만 아직 젊고 혈기만 넘쳤던 탓에 '한수와의 동맹'을 헌신짝처럼 갖다 버리고 끝내 조조의 반격을 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가후는 책사 가운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계략에 정말 능통했다.
한편 조조가 서량까지 세력을 넓히니 '한중'에 머물고 있던 장로는 언제 조조가 공격해올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다고 조조에게 순순히 항복할 수는 없어 스스로 '한녕왕'을 자처하며 서촉의 유장을 공격해서 영토 확장을 꾀한다. 이 소식을 접한 유장은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하려 했고 '장송'을 보내 장로를 제압해줄 것을 부탁하려 했다. 허나 장송은 유장이 너무 무능한 탓에 서촉의 백성들이 한낱 장로 따위에게 벌벌 떨면서 살고 있다고 한탄하며, 이 참에 '나라의 주인'을 바꾸려는 마음을 품었다. 허나 장송은 못 생겼고 말투도 싸가지가 없다며 조조에게 냉대를 받고 몽둥이 찜질까지 당하고 쫓겨난다. 그렇게 쫓겨난 장송은 유비에게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고서 유비에게 '서촉땅'을 갖다 바치려 한다.
어릴 적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장송이란 인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나라가 약소국이고, 주인이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다른이에게 홀랑 넘겨버리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 온당치 못한 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매국노'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유장과 유비가 '한 집안'이고, 조조와도 '한족'으로 동포라 할지라도 엄연히 '나라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다. 장송의 공식 직함조차 '유장의 신하'가 아니겠는가. 물론 유장이 '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장송이 충성을 받치던 '주인'이었고, 주인이 싫었으면 장송이 배반을 하고 떠나면 그뿐이지, '서촉의 백성'을 위해서 유장을 내쫓고 다른 지배자에게 영토를 내어주려 한다는 것은 쉬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송이 맨 처음 찾아간 이는 '조조'였다. 조조에게 서촉을 넘겼더라면 그야말로 '역적'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격이었다. 그런데도 나관중은 이를 그대로 소설 <삼국지>에 차용했다. 나중에는 '정통' 유비에게 넘겨준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어릴 적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던 터라 '장송'이 더욱 밉보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장송은 달가운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사 <삼국지>에서조차 장송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유비에게 호의적이었다가 유장에게 들통이 나자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사실을 두고 안타까워할 정도다. 아무리 유장이 무능했다지만 이런 평가가 온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도 5, 60년대 진짜 못 살던 시절에 '대통령이 무능한 탓'을 들어 이웃나라 지도자에게 나라를 홀랑 넘겨 버리는 꼴을 보고도 괜찮다고 평가할 것인가? 그런 식이라면 이완용도 '매국노'가 아니게 될 것이다.
암튼 이런 논란조차 '유비의 입촉'을 열망하는 독자팬들에게는 그닥 무의미할 것이다. 이때 유비의 책사로 활약한 인물이 바로 봉추 방통이다. 일찍이 수경선생 사마휘가 유비에게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한 명만 곁에 둘 수 있다면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얘기한 바로 그 봉추란 말이다. 한 명만으로도 천하를 얻을 지경인데, 유비는 복룡과 봉추 둘을 모두 얻었다. 그런데도 왜 유비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까?
나가는 글 : 솔직히 제갈량도 그렇지만 방통도 너무 후한 평가를 받은 편이다. 천하를 경영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인재라는 평가에는 제갈량과 방통이 아직 '20대 젊은이'였기 때문에 미래에 펼치게 될 역량까지 미리 끌어다 평가를 한 경향이 강하다. 두 사람이 유비의 품에서 내놓은 계책이란 것이 고작해서 '천하삼분지계'라는 아직 이루지 못한 청사진 한 장이었고, 적벽대전에서 주유의 계책을 돕는 '연환계'를 내놓고 유비에게 형주를 차지할 수 있는 유리한 판을 짠 것이 실적의 전부였다. 학창시절에 아무리 '영재'니 '천재'니 소리를 들으며 우수한 학업성적을 달성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실전경험 미숙한 학생'일 뿐이다. 냉험한 프로의 세계에서는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방통은 이제 막 유비의 '부군사' 직책을 받았기에 실적을 올리려고 부던히도 애를 쓰던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비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제갈량'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방통으로 하여금 '고용불안정'을 실감하게 했을 것이다. 속된 말로 "너, 실적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 짜를 거야!"라는 말을 듣는 처지였단 말이다.
그런데 방통은 제갈량과 달리 '유비와 궁합'이 너무 맞지 않았다. 제갈량도 삼고초려 끝에 유비를 모시는 신하가 되었지만, 초기엔 뭐 하나 제갈량 '뜻대로' 유비가 따르는 것이 없었다. 천하삼분지계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방책을 눈 앞에 두고도 마다하는 유비를 제갈량은 답답해 했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또 다른 방책'을 내어 유비의 취향에 딱 맞는 방책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비는 이게 맘에 들었던 것이다. 헌데 방통은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고 미적거리는 유비를 한심해 했다.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렵고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느냐면서 말이다. 그래서 유비가 고를 수 있게 '상책, 중책, 하책'을 내놓고 유비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제갈량하고는 다른 방식이었다. 제갈량은 자신의 실력을 굳이 뽐내지 않고, 이 방법은 어떠냐? 저 방법은 어떠냐? 그런 요런 방법도 있다면서 유비의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방법을 무한정(?) 제시하다가도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에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유비로 하여금 "무조건 이 방법대로 따르십시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라며 밀어붙이는 강단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방통은 자기 실력을 뽐내는데 주력을 하면서 먼저 "방통이 추려낸 방책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선 고르기만 하십쇼"라면서 유비에게 다른 방법은 없으니 셋 중 하나를 고르라는 '강요'를 했던 것이다. 물론 방통이 선보인 방법들은 하나 같이 명쾌하고, 어느 방법을 골라도 반드시 '결과'를 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방통의 재주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이 뛰어난 것은 알지만 '유비의 마음'에 흡족한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문제였던 것이다. 유비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한 방법을 선호하는 욕심쟁이(?)였는데, 방통은 이런 난세에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해야 하는 욕심을 부리다니 과욕이 너무 심하다며 간접적이나마 유비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비는 유비는 유장과 전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질 때마다 방통이 옆에 있는데도 제갈량을 찾곤 했다.
방통은 이런 유비에게 '고용불안정'을 느끼고 조급하게 성도의 관문인 '낙성 공략'을 밀어붙인다. 그러다 끝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년 동안 길어진 낙성 공략 도중 '빗나간 화살'에 맞고 죽고 만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낙봉파'에서 장임의 기습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방통이 죽은 곳은 낙봉파가 아니었다. 방통은 가진 실력에 채 펴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만약 방통의 목숨이 더 길어 '형주'는 제갈량이 막고, '서촉'은 방통이 경영했더라면, 조조는 한중을 넘지 못했을 것이고, 손권은 형주를 영원히 갖지 못해 '천하삼분지계'는 더욱 완벽하게 자리 매김 했을 것이고, 비교적 젊은 무장이었던 장비와 조운, 그리고 마초, 위연 등이 강한 군사를 키워내서 조조와 손권의 영토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방식을 썼더라면 '촉한'에게도 천하통일의 기회는 충분히 주어줬을 것이니 어찌 '방통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는가.
결국 촉한이 빨리 망한 까닭은 '인재 부족' 때문이었다. 서촉이 험준한 지형으로 '방어'에는 유리했지만, 교류나 교역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지리 조건'을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보니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결과를 낳았고, '형주'처럼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형주라고 '중원'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제갈량이나 방통, 서서 같은 인물이 형주에 몰려 있었던 까닭은 하북지역에 '서주대학살', '관도대전' 등 전쟁같은 나날이 연이어 벌어져서 수많은 인재들이 난리통에서 벗어나 비교적 평안한 형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조가 최종 승자가 되어 '중원 일대'가 평온해지니 형주조차 인재가 모여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유비는 서촉을 차지했지만, '방통의 죽음'으로 인재 부족을 느꼈고, 유장의 신하들 가운데 법정, 맹달 등 쓸만한 인재를 몇몇 챙기고 나니 더는 인재가 모여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사망하고, 복수를 다짐한 장비와 유비도 뒤를 이어 사라지고, 늙은 장수들이었던 황충과 엄안마저 차례차례 사망하고, 제갈량조차 '출사표'를 던지고 1차 북벌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마속의 결정적 실수로 인해 가정을 배앗기고 북벌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다시 힘을 모아 북벌을 도모하지만, 조운과 마초마저 하나둘 운명을 달리하니, 촉한에는 '구인난'에 시달리다 명장을 다 잃고 끝내 '강유'만 남아 싸우다 멸망하고 만 셈이다. 만약 방통이 죽지 않고 '입촉'에 성공했다면, 유비의 대성공 소식을 듣고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방통의 죽음 이후에 제갈량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다 '과로사'를 하고 말았고, 유비마저 죽고 나니 아무리 위기 상황에 처해도 좀처럼 '배신자'가 없이 탄탄하던 유비진영이었는데, 곳곳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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