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매니악 3> 이우혁 / 반타 (2026)
[My Review MMCCLXXIX / 반타 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덟 번째 리뷰는 1000만 부의 신화를 쏘아올린 이우혁의 최신 복귀작 <파이로매니악 3>다. 이우혁이 돌아왔다. <퇴마록 : 말세편>을 마무리 한 직후 색다른 장르로 화려한 컴백을 신고했지만, 후속작이 그닥 대박을 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팬들 곁을 떠났던 그가 '미완의 작품'이었던 <파이로매니악> 개정판으로 완벽한 컴백을 신고했다. 1999년에 구판 <파이로매니악 3권>을 내놓았지만, 아쉽게 완결을 짓지 못했는데, 이번에 <퇴마록 : 외전 3>에서 죽었던 퇴마사들을 다시 살려내는 것으로 '두 가지 세계관'으로 나뉜 새로운 작품세계를 야심차게 설계했다. 그 두 가지란, 퇴마사들이 '살아 있는 세계'와 퇴마사들 '존재 하지 않는 세계'로 구분할 수 있겠다. 그래서 퇴마사들이 되살아난 세계에서 <퇴마록 : 후속작>이 펼쳐질 것이고, 퇴마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에서는 <파이로매니악>, <바이퍼케이션> 등의 작품이 펼쳐질 것이다. 이는 '이우혁 유니버스'라는 새로운 개념이며, 마치 '멀티 유니버스'처럼 다중우주라는 세계관 속에서 이우혁의 작품들이 서로 연관을 지으며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아직 그 시작에 불과한 <파이로매니악> 개정판이 첫 신호탄으로 나왔을 뿐이니 섣부른 예측은 부질 없는 짓일 것이다. 그저 이우혁의 필력을 기대할 뿐이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파이로매니악 3> 관점 포인트 : <파이로매니악>은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화약이 펑펑 터지고 각종 첨단무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형 블록버스터급 소설'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실제로 '영상화 확정'까지 되어, 애니메이션 <퇴마록>에 이은 이우혁의 두 번째 영상이 곧 찾아올 것이다. 또한, 세계 군사력 순위 5위에 오른 대한민국의 최신 방산무기들이 등장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화끈한 영상미'를 제공할 것이 당연하고, 죽어 마땅한 죄인들만 딱딱 골라서 시원하게(?) 처단하는 빠른 전개방식으로 인해 화면속 영상은 박진감이 넘치고도 남을 것이다. 거기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은 저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익'을 해치고, '국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려는 '매국노'와 다를 바 없는 놈들이기에 이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모습에서 독자 또는 관객들은 답답했던 가슴속이 뻥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아무리 '매국노'라고 해도 사법부의 판결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의 일환'으로 함부로 죽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그럼 왜 사법부의 판결을 거치지 못하고, 공권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매국노'와 같은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나쁜놈들을 '사적인 방법'으로 처단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권력의 타락' 때문이다. 기업을 상대로 사기를 쳐도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일테지만, 국가와 국민을 눈을 가리고, 입을 봉하면서 저지르는 '권력형 비리'와 권력자가 저지르는 심각한 '부정부패'로 인해서 국민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게 되고, '파이로매니악' 같은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나쁜놈들이 차지하고 있는 '권력'을 정당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는 좀처럼 '바로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이로매니악'은 그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나쁜놈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해서 살인계획을 모의했고, 그들이 지은 죄상을 낱낱이 까발림과 동시에 한 사람을 죽이기에 딱 적당량의 '폭탄'을 이용해서 확실하게 연쇄살해를 시도한 것이다. 정말 속시원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죽어 마땅한 나쁜놈들인데 '사법부의 판결'을 믿고 따르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행여나 '무죄 판결'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다면, 나쁜놈들은 다시 본색을 숨기고 단단히 준비해서 더 나쁜 짓을 교묘하게 실행할 것이 뻔하다. 그러니 그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깔끔하게 처단하는 것이 '국익'에도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러니 '파이로매니악'은 홍길동이나 장길산, 임꺽정의 뒤를 잇는 '의적의 후예'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가? 비록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나쁜놈'만 골라서 확실하게 처단하는 것을 보장한다면 '사적인 살인'을 허용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바람직할까? 그렇다면 우리가 애써 세운 '법치주의'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법치주의'라는 것이 그닥 믿음직스럽지 않지 않았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격으로 오랫동안 법을 무색하게 만들었던 검찰집단이 끝끝내 정치와 결탁하더니, 정권을 휘어잡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민 안위와 국가 위상은 생각지도 않고 '정적 제거'에만 혈안이 되어 국가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었던 장본인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에서 '군사독재'만큼이나 금기시 될 것이 바로 '검찰독재'가 되어 버렸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법치주의'를 목놓아 부르짓는 정치집단에 대해서 곱지 않은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검찰이나 경찰이 '사회정의'를 말하고, '공권력'을 발휘해서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시킬 때마다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판국에 '법치주의'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한, 나쁜놈들을 감옥에 잡아 넣고 재판을 회부해도 오늘날까지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격으로 판결이 이루어지고, 감옥에 수감하더라도 멀지 않아 '집행유예'나 '사면'으로 풀려나는 세상이 그리 미덥지 못하다.
그렇다고 21세기 홍길동을 부활시키고, 활빈당 같은 '사적집단'이 활개를 치도록 놔두는 것이 바람직할까? 물론 그들이 '도덕적으로' 아무런 흠결이 없을 정도로 깔끔한 처단을 행한다면 느려 터지고 무딘 칼날로 나쁜놈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법부를 대신해서 카타르시스 뻥뻥 뚫리는 화끈한 처단을 지켜보며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홍길동 같은 이들이 '사사로이' 판결을 내리는 것에는 정말 아무런 흠결이 없을까? 정말 나쁜놈들만 골라서 처단하고, 다른 무고한 피해자는 절대 발생하지 않을까? 이를 테면 도심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뜨려서 '나쁜놈'을 처단하는데, 우연히 살해현장에 무고한 시민이 애꿎은 피해를 보는 일은 정말로 없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파이로매니악'이 처단하는 나쁜놈들은 진짜 나쁜놈이 맞기는 한걸까? 그들이 잘못한 정보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은 1도 없겠느냔 말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사안이다.
나가는 글 : 그래서 이 책은 '문제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매국노 처단과 같은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속시원함이 지나고 난 뒤에, '이게 정말 괜찮은 일일까?'라는 찝찝함이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속에서 펼쳐지는 일이고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도 아닌 '허구의 세계속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재미만 따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데, 뭐하러 굳이 '문제로 삼아서' 불편함을 강요할 것이냔 말이다.
또 하나의 불편함은 '파이로매니악'이 살해하는 장면 묘사가 너무 끔찍하다는 점이다. 그냥 '죽어 마땅한 매국노'를 처단했다는 식으로 묘사해도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매국노들이 처절한 발악을 하면서 저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아둥바둥하고 있지만, 파이로매니악이 그런 꼴불견을 일거에 해소하듯 속시원히 처단하는 식으로 묘사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속살 하나까지 '잘근잘근 씹어서' 죽여야 최대한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식으로 절대 '곱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고,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간단하게 죽이는 방법도 쓰지 않겠다는 듯, 하드코어 고어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해부학적 살해 묘사'가 너무 끔찍하고 잔혹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누가 나쁜놈이고 누가 좋은놈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끔찍함의 정도는 가히 <바이퍼케이션 : 하이드라>에 버금 갈 정도였다. 그 작품도 이우혁이 썼는데, '스릴러 장르'에 걸맞게 정말이지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살점이 벚꽃 떨어지듯 흩날리는 장면 묘사가 정말이지 토 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구판' <파이로매니악>에서도 '개정판' 못지 않게 끔찍한 살해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만, 그 시대에는 먼 거리에서 원격으로 살해하는 방식이 아닌 근거리에서 직접 폭발물을 들고 가서 폭사시키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파이로매니악'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탈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꽤나 '인간적'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그런 죄책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매국노는 어떤 방법으로든 죽어 마땅한 이들이니 깔끔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확실하게 처단하겠다는 '사명감'만 가득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현직 검사인 고일문까지도 '파이로매니악'을 동정하고, 그들의 살인이 '진정한 악인'을 처단하는 고귀하고 숭고한 일이니 감히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방법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위태로운 '대한민국'을 살리는 최고의 방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시스템을 바로 잡아서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권력의 부정부패를 엄벌하고, 도덕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공정하고 깨끗한 '권력자'를 깨어 있는 국민들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이 아닌 '사적인 복수'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그친다면 엄청 아쉬울 따름이다. 이게 솔직한 감상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이우혁 작가를 좋아하는 까닭도 <퇴마록>에서 퇴마사들이 자신의 영광과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고 '원귀'가 된 불쌍한 영혼을 달래고, 이런 불쌍한 영혼이 구천을 떠돌게 만든 '원흉'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깨닫도록 하는 퇴마사들의 '무한한 선함'에 반했기 때문이다. 또한, 악마와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도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하나뿐인 목숨을 잃을지언정, 누구 하나 퇴마사들에게 고마워하지 않을지언정, 그들의 '퇴마행'을 멈추지 않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이우혁 작가가 <파이로매니악>, <바이퍼케이션>에서는 악마가 된 듯 잔혹한 일을 서슴없이, 가책없이 묘사하고 있어서 매우 불쾌한 느낌을 받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굳이? 왜?
암튼 이우혁 작가의 오랜 팬으로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매국노 같은 나쁜놈들을 곱게 죽이거나 갱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입 바른 소리를 하지는 않겠지만, 뼈와 살이 훤히 드러나고 살점이 꽃잎이 날리듯 흐드러지게 튀기는 잔혹한 묘사는 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리 '퇴마사'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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