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톡 11>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5)
[My Review MMCCLXVI / 문학동네 4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다섯 번째 리뷰는 흩어졌던 유비 삼형제가 다시 만나는 극적인 이야기가 감동을 수놓는 <삼국지톡 11>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의 떠돌이 생활은 현재 중국 대륙의 하북성(허베이성)에서 시작해서 '공손찬', '도겸', '여포', '조조', '원소', '유벽', '유표', '손권'을 거쳐 '유장'이 머물던 익주(오늘날의 사천성(쓰촨성) 일대)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대유람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위촉오' 삼국이 존재한 진정한 <삼국지>는 유비가 촉나라 황제에 오르고 동오의 손권이 황제를 표방한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인정하는 <삼국지>는 유비가 떠돌이하던 시절을 포함하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허나 유비의 떠돌이 생활은 정말이지 너무 오래 걸렸다. 그 가운데 <삼국지톡 11>에는 하일라이트가 전개되는데, 헌제의 혈서를 받잡고 난 뒤의 유비가 원술 토벌을 빌미로 '조조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조조에게 발각되어 유비 삼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데, 여기서 관우의 진면목이 등장하게 된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톡 11> 관점 포인트 : 이 책이 흥미로운 까닭을 먼저 말하자면, 기존의 <삼국지연의>와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공유하면서도 '컨셉'과 '사건전개'는 완전히 새로 구성한 듯한 신선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풀어내는 색다름만이 전부가 아니다. 다시 말해, 여포가 반바지에 하와이안 남방을 입고 풍선껌을 불면서 방천화극을 휘두르고, 명마로 유명한 '적토'가 자동차 브랜드 가운에 '말'이 등장하는 페라리를 새빨강으로 칠해놓았기 때문에 신선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이 장면, 장면마다 깊이 고뇌하고 골머리를 쥐어짜며 생사를 거는 한판 승부를 벌이며 온갖 지략 대결과 근육 대결이 끊이지 않으며 불꽃 튀기며 빠르게 전개되어 독자들에게 아드레날린을 뿜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분명 이 장면에서 등장할 인물과 사건이 뻔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내 예상과 짐작을 넘어선 기상천외한 '액션'이 화려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게 만드는 점은 바로 '주요 등장인물 간의 대화'다. 이 대화에서 터지는 '촌철살인'이 아주 압권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헌제의 혈서 사건'이 들통이 나면서 의원 길평이 조조의 고문 끝에 죽어나가고, 동승의 일가족도 무려 700명 넘게 끔살을 벌이면서 조조가 일갈하는 대목이다. "나, 조조가 아니었으면 어찌 황제의 안위를 알뜰살뜰이 보살필 수 있었겠소. 그런데 어찌 고새를 못 참고, 이 조조를 죽이려 드는 것이오."라고 화를 내자, 헌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하..참으로 슬픈 거짓말이 아니오이까. 조조, 그대 같은 욕심쟁이가 하늘을 꿈꾸지 않을리가 있겠소."라고 말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대목에 이런 대사는 없다. 이런 뉘앙스만 풍길 뿐, 애초에 조조와 헌제는 서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힘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에, 그저 '충의지사' 들이 자발적으로 역적 조조를 암살하려는 시도만 거듭할 뿐, 그마저도 '귀비'나 '황후'의 친척들이 주도를 하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던 충신들이 조조 암살에 가담했다가 의도치 않은 '밀고사건'으로 인해 매번 사전에 발각되어 끔살을 당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제의 역할은 대부분 '수동적인 역할'밖에 없었다. 그나마 첫 암살시도였던 '옥대에 혈서를 담은 사건'만이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었으나, 이조차 조조측에 발각이 되자 발뺌하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는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대담한 '헌제의 대사'라니 놀랍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깜놀했다. 어디 이뿐인가? 관도대전이 한창 벌어지는 찰나 드러나는 '원소세력의 실체'로 인해서, 왜 조조보다 10배나 많은 병력을 갖고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납득이 갈 만큼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원소가 반드시 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다름 아닌 '프린스 원소'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결정적 한 방으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대세'를 만들어내는 힘은 강력했으나, 지저분하게 치고 빠지며 진흙탕 싸움, 또는 개 싸움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탓이다. 왜냐면 '프린스 원소'는 이기더라도 깔끔하고 우아하게 이겨야지, 더럽고 지저분하게 이기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조조가 '기만 작전'을 펼치고, '매복'과 '기습'을 하면 원소군은 제대로 상대도 하지 않고 지리멸렬하게 우왕좌왕하다가 퇴각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도대전' 초반에 원소군은 조조군에게 호되게 당하고 만다. 차라리 그냥 압도적인 군세로 조조의 근거지인 '허도'로 물 밀듯이 밀어붙였으면 조조는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전쟁이었기에 버티지 못하고 그냥 패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조의 적'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서량의 마등, 한수, 강동의 손책, 그리고 형주의 유표만이 원소를 도와 앞뒤로 협공을 했어도 그야말로 필패였을 것이다. 거기다 '황건적 잔당의 반란(유벽 등)'도 관대대전이 한창일 때 심심찮게 일어났기 때문에 조조는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원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들이 바로 '원소의 책사들'이었다. 전풍, 저수, 순심, 곽도, 심배, 허유 등 내노라하는 일류 책사들이 우글우글 했는데, 이들은 '일치단결'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합심'이라는 말만 알았더라도 막강한 원소세력을 앞세워서 어떤 적이라도 압도할 수 있었을텐데, 만만치 않은 적 '조조'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전풍과 저수의 '전쟁 불가론'이었고, 이에 맞서 곽도와 심배는 '전쟁 필승론'을 내놓으며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극심한 논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들 앞에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모습'만 보이던 원소가 지리멸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삼국지톡>에서 원소는 '프린스 원소'라는 별명답게 무섭도록 냉철하고 깔끔한 명령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 카리스마의 결정체가 바로 '제 발로 굴러들어온 유비'였다는 것이 원소의 패착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실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조조를 상대로 10배 이상의 세력 차이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냥 아무렇게나 싸워도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였다. 그런데 원소를 유비를 이용해서 조조를 '황제를 볼모로 삼은 역적 이미지'를 내세웠고, 이를 명분 삼아 대군을 남하하여 조조를 토벌하고자 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좋았는데, 이때 조조군에 유비의 둘째 동생이었던 '관우'가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 원소의 패착 원인이었다. 바로 원소가 아끼던 두 장수 '안량'과 '문추'가 관우에 의해서 한순간에 모가지가 날라가는 참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초전은 조조군의 사기만 북돋아주는 격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이 일로 유비는 '조조군의 첩자'로 오해를 받고 죽임을 당할 위기에 봉착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원소군 내부의 분란으로 인해 유비는 살궁리를 끝마쳤고, 원소와 조조가 대결을 이어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유표'를 원소의 동맹군으로 삼고자 약조를 받겠다며 '원소의 품'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나가는 글 : 이렇게 유비는 또다시 '원소의 품'에서 벗어나 유표를 향해서 간다. 이에 관우도 '형님'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조의 품'에서 두 형수님을 모시고 떠나려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오관육참'의 고사가 펼쳐진다. 비록 조조는 관우를 환송하며 쿨하게 보내줬지만, 조조의 부하들은 관우를 곱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관우는 부득이 '청룡언월도'를 높이 들고 자신이 가는 앞길을 막는 이들을 하나하나 격파하며 나아갔는데, 그렇게 다섯 개의 관문을 넘어 여섯 명의 장수의 목을 베어나가는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날 한시에 죽기로 맹세했던 '도원결의'를 지키고자 한 사람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강행군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홀몸도 아니고 두 분 형수님까지 대동하고서 나아가는 '남자의 모습'에서 어찌 짜릿함과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그렇게 '오관육참'을 강행하고 황하 이북으로 뱃머리를 돌려 어렵사리 원소군 진영에 닿아 유비 형님을 찾았지만, 그 사이 유비도 '원소의 품'을 떠나 조조세력의 심장부인 '허도 부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관우가 두 분 형수님을 모시고 '오관육참'을 떠난 장소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관우는 다시 강을 건너 유비 형님을 만나러 남으로, 남으로 행군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인물이 있었으니, 항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괴생명체'였다. 과연 괴생명체의 정체는?
<삼국지톡 11>은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관도대전'도 막바지에 다달았고, 유비 삼형제는 재회를 한 뒤에 조자룡이 합류하고, '유표의 품'에서 또다시 기약없이 세월을 낚으며 지내게 된다. 하지만 관도대전에서 뜻밖에도 조조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비는 수경선생에게 '복룡봉추' 이야기를 들으며, 드디어 유비와 서서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적벽대전의 시작'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바로 '유표'와 '손책' 이야기다. 이제 겨우 맛보기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만 나와 있지만, 유표의 '카리스마'가 아주 장난 아니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젠틀맨'이라고 별명을 붙이긴 했으나 굉장히 야심차고 강단 있으며, 특히나 스스로 황제라고 뻥(?)을 칠 정도로 욕망이 가득한 인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늙고 병들기 시작하면서 그 욕망의 이빨이 후드득 다 빠져버리는 모습으로 비춰질게 뻔하지만 말이다. 반면에 손책은 아직 젊었다. 그리고 여전히 '인재모집'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그 가운데 가장 눈독 들인 인물이 바로 '감녕(감흥패)'이다. 해적 출신의 능력자인데 '유표'에게 한껏 이용만 당하고 팽 당한 위인인데, 손책군에 합류하면서 크게 활약할 인물이다. 그런데 유표에게 이용 당할 적에 손책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 그만 '능조(능통의 아빠)'를 전사하게 만든 장본인이었기에 훗날 '능통'과 불구대천 원수사이가 되고 만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도 빼놓지 않고 서사에 넣어놨기 때문에 나중에 전개될 이야기를 짐작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줘서 심심치 않았다. 앞으로 유표와 손책 세력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다 '적벽대전'에 포함될 것이니 말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