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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구석방
  • 삼국지톡 8
  • 무적핑크
  • 16,200원 (10%900)
  • 2024-08-27
  • : 490

<삼국지톡 8>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4)

[My Review MMCCLXI / 문학동네 4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 번째 리뷰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주인공들이 선명하게 돋보이는 <삼국지톡 8>이다. 사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유비, 조조, 손권 등 주요 인물만 열심히 살펴본다. 상대적으로 다른 인물들은 비중이 많지도 않지만 그닥 '자세히' 나와 있지도 않는 것이 사실이라서 그닥 주목을 하지 않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삼국지톡>을 읽으면서 새삼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다. 원소와 공손찬이 그랬고, 원술과 손견/손책이 그렇다. 앞서서는 '원소 vs 공손찬'을 자세히 다루면서 몰랐던 사실도 새로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원소와 공손찬, 두 사람 모두 '천한 신분'이었다가 모진 고생을 한 뒤에 '대명문가'의 일원으로 인정 받으며 출세를 한 케이스였단 사실이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런 설명이 전혀 나오지 않고, 정사 삼국지에 자세히 나와 있었을 테지만, 그 딱딱한 책을 어찌 꼼꼼하게 읽어나갔겠느냔 말이다. 그나마 조조, 유비, 손권 정도만 자세히 살펴봤지...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바로 '원술 vs 손견/손책 부자'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삼국지톡 8> 관점 포인트 : 원술과 손견의 악연은 '반동탁연합군' 때 원술이 선봉으로 나선 손견에게 군량을 보급하지 않은 일화 때문이란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보급을 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바로 '손견'이 원술의 부하였기 때문에 공을 먼저 세우는 것을 방해했다는 사실이다. 손견은 '강동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맹장으로 소문이 났지만, 그가 세운 공로와 전리품은 모두 원술에게 갖다 바칠 수밖에 없는 '쫄병'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원술은 손견이 공을 세워서 이름을 떨치는 것을 막고자 일부러 군량미를 제때 보급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손견은 원술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하게 전장을 누비다 끝내 유표의 부하 황조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럼 원술은 왜 그리 심술을 부렸을까? 사실 원술이 부린 심술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술은 그야말로 '금수저' 가문의 적통으로 태어난 귀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손견은 '천한 가문'에서 이름도 없이 몸뚱이 하나 믿고 전쟁통을 누비며 공을 세워 출세를 하려는 빈털털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원술은 신분 높은 자신이 '아랫것'들하고 어깨를 견준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체 높은 대명문가의 후손이라면 이런 사소한 트집을 잡아 심술을 부리는 것이 체통에 맞지 않다는 것쯤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원술은 심술퉁이처럼 행동했을까? 그건 다름 아니라 어렸을 적에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 집안에서 '천한 신분'이 있었는데, 그 천한 것이 심지어 자신의 '형님'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거의 발작버튼처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천한 것들을 향한 분노를 참지 않았던 것이다. 원술의 형이 누구였던가? 바로 '원소'였다.

원소는 원술의 아빠와 몸종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양반과 평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서자'라고 부르는데, 그보다 아랫단계가 양반과 천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바로 '얼자'라고 불리는 신분이다. 조선시대에는 '적서차별'이 심했고, 조선후기에 들어서 '서얼철폐'를 논의하기도 했지만 결국 근대화 이전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원소는 바로 그토록 천하디 천한 '얼자' 신분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원술의 아빠가 원술이 어릴 적에 '조카형'이라고 속여서 집안에 들였고, 진실을 눈치 챈 원술의 엄마가 '원소'를 괴롭히니 어린 원술도 눈치 빠르게 원소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원소는 원술의 형이 슬하에 자식이 없자 '양자'로 보냈고, 원소는 양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두 분이 돌아가시자 무덤을 6년 동안 목숨을 걸고 곁을 지켜 '묘살이'를 훌륭히 해낸 공로(?)를 인정 받아 '대명문가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원소는 당당히 명문가의 자손이 되었고, 동탁이 원씨 가문을 몰살시켜버리자 남은 것은 원소와 원술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원씨 가문의 적통은 '원술'이 이어받아야 마땅하건만 세상 사람들은 원술보다 형인 '원소'를 원씨 가문의 후예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원술이라면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 이렇게 원술은 '천한 신분'의 사람들을 경멸했고, 그들의 재주가 비상하다고 하더라도 철저한 신분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주인을 잘 섬기는 종놈' 취급하는 것을 당연시 했던 것이다.

그러다 손견이 '반동탁연합군'으로 활약할 당시에 '전국옥새'를 발견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원소와 원술은 '전국옥새'를 탐냈고, 정사에서는 손견이 원술에게 순순히 갖다바쳤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손견이 시치미를 뚝 떼고 품에 지니고 있다가 황조에게 비명횡사한 뒤, 아들 손책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원술에게 '전국옥새'를 바치고 군사를 빌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를 바탕으로 <삼국지톡>에서는 손책이 원술에게 건내주는 것으로 퉁치고, 원술 밑에서 모진 고생을 다하며 강동땅을 점령해나가는데 단 한 번도 전투에서 진 적이 없어서 '소패왕'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하지만 그런 별명으로 불린들 손책이 세운 공로와 빼앗은 전리품 들은 모두 원술의 차지였다. 원칙적으로 '원술의 부하' 신세였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한 일이 한동안 지속되지만 손책은 원술의 밑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원술이 여전히 대명문가의 지위를 누리며 수많은 이들의 추대와 아첨을 받는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술은 나름대로 야심을 착착 진행시켜서 결국 스스로 '황제'가 되어서 '중(仲)나라'를 세우고 만다. 헌제가 버젓이 살아있었는데도 말이다. 원술에게 헌제는 그저 조조에게 붙잡혀서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는 '가짜 황제'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원술은 스스로 황제에 오르면서도 자신만이 유일한 '진짜 황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면 자신은 귀한 신분의 혈통이고, 이런 난세에 제 역할을 못하는 '가짜 황제'는 황제라고 할 수도 없고, 남이 준 것이지만 '전국옥새'가 자신의 차지가 된 것을 '명백한 운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술이 황제를 표방하긴 했지만, 실력이 그 자리를 뒷받침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난세에는 적으로 둘러싸이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아야 했으나 원술은 '동맹'을 만들지는 못하고, '실력'도 없으면서 자신의 발밑에 꿇어 엎드리기만을 바랐으니 일찍 망한 것이 당연한 셈이다.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난세에 '신분 차별'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잘 보여주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일수록 '인재'는 생명줄과도 같다. 단 한 명의 인재가 수백 만명의 생명을 장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원술은 손책 같은 인재를 휘하에 두고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는커녕 부려먹기만 하다가 결국 품에서 떠나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나가는 글 : 한편 원술이 허튼 꿈을 꾸고 있을 때, 서주의 유비는 모처럼 얻은 '자기 세력'을 규합하고, 서주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하지만, 여전히 서주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조조가 두려웠다. 이미 한 차례 '서주대학살'로 큰 아픔을 겪은 서주 백성들은 행여라도 조조가 쳐들어왔을 때 유비에게 더욱 의지하려 들었고 말이다. 그런데 조조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받아들인 '여포'가 결국 눈엣가시였다. 사실 여포의 책사 진궁이란 작자가 더 꼴뵈기 싫었지만, 유비가 잠시 한 눈을 팔고 원술을 상대하고 있는 틈을 타서 여포가 서주를 차지하고 만 것이다. 졸지에 유비는 모든 것을 잃고 조조와 여포 사이에 낑겨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유비는 과거 독우를 폭행하고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한 것처럼, 이번엔 여포에게 뒤통수를 맞고 조조에게 몸을 기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유비는 헌제를 알현하게 되고 '유황숙'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유비에게 득이 된 것일까?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를 아주 큰 이득으로 단정지었고, 더구나 명분은 유비에게 있다면서 '촉한정통론'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대세는 결코 유비에게 있지 않았다. 그리고 헌제가 먼 친척에 불과한 유비에게 '유황숙'이란 타이틀을 준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조조라는 무시무시한 짐승의 상대가 되어서 자신을 구하는 '충신'이 되어라는 강요인 셈이었다. 대놓고 그러면 아무리 '유황숙'이라고한들 조조는 단칼에 죽여버릴 위험도 있었으나, 헌제의 처지에서는 그런 위험을 이해할 필요까진 없었다. 유비가 진정 조조와 맞서 싸울 영웅이라면 좋고, 그로 인해 조조의 미움을 사서 개죽음을 당하더라도 헌제 입장에선 결국 '신하' 한 명 죽은 것뿐이니 손해볼 사안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유비는 영리했다. 자신이 조조 앞에서 '감투'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죽임을 당할 수 있었기에 철저히 몸을 낮추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황궁 옆에 살면서 늘 호화생활을 할 수도 있었건만 '조조의 감시'에 들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납작 엎드려서 농사만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유비는 조조의 감시에서 벗어나 도망갈 수 있을 것인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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