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톡 6>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3)
[My Review MMCCLIX / 문학동네 4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든여덟 번째 리뷰는 정사와 연의의 중간 어디쯤에 새로운 '삼국지연의'를 써내려가고 있는 <삼국지톡 6>이다.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솟구친다. 연의는 재미는 있지만 '찐 역사'라기에는 공갈이 너무 많다. 나관중이 당시 인기를 끌던 연극 쪽대본(!)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 인기가 많던 쪽대본들을 하나하나 모아 '하나의 연의'로 집대성한 것이라 <삼국지> 가운데 인기가 많은 것은 세세하게 인기가 없던 대목은 설렁설렁 넘기는 식으로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사를 읽자니 너무 재미가 없다. '참 역사'를 깨우칠 수는 있으나 역사적 진실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지톡>은 연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정사와, 또는 다른 연의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실제 역사이야기'를 전해 듣는 듯한 생생함이 살아난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연의와는 사뭇 다른 전개 방식이지만, 그렇기에 '만화책'을 읽고 있지만 '참 역사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정말 많이 배웠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삼국지톡 6> 관점 포인트 : 6권의 주요 줄거리는 여포에게 죽임을 당한 동탁이야기와 연주에 정착해서 재기를 노리는 조조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벌어지는 '도겸과의 전쟁', '여포와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원소와 공손찬의 대결에서 공손찬이 완패를 하고 두문불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6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다름 아닌 '서주대학살'이다. 바로 이 대목이 이어지는 <삼국지톡>의 뒷이야기까지 엄청난 파급력을 미칠 핵심사항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서주대학살'은 도겸의 부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조조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되었다. 허나 개인적인 복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한 짓이었다. '한 개인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서주 백성들 수백만 명을 학살할 필요가 있었을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은 서주 백성이 아니고, 서주를 다스리던 도겸도 아니고, 도겸의 부하로 있던 '황건적 출신'의 일개 장수였을 뿐인데 말이다. 진정 복수를 위한 것이었다면 '황건적 잔당'을 잡아다 족치는 것으로 만족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조조는 '개인적인 원한'만 풀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원소의 그늘에서 억눌리고 핍박 받던 스트레스를 풀듯 '연주'라는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자마자 조조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다른 군웅들의 눈치밥을 먹으며 고작 '작은 영지'를 지키고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이익에 만족하는 사나이가 아니라, 천하를 움켜쥐고 뒤흔들 수 있는 '패왕'이 되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지위를 얻고자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나이로 변모한 것이다. 조조에게 애초에 이런 야심이 있었던가? 솔직히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런 패왕의 지위에 오르라고 부추긴 것은 '정사'에서 진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진궁의 고향은 '연주'였고, 원소의 발밑에서 허덕이며 제 능력을 펴지 못하는 조조의 책사로 활약하면서 조조에게 모든 것을 베팅한 셈치고, 연주의 유지와 명망 높은 인재들에게 '조조, 한 번 믿어 보자'라고 진궁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셈이다. 그렇게 조조는 '반동탁연합'에서 대실패를 하고 쫄딱 망하고, 원소에게 빌붙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때, 진궁이 '날개'를 달아주며 마음껏 비상해보라고 부추겼던 것이다. 그것도 '패왕'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을 누릴 자질이 충분하니 해보는데까지 해보라면서 말이다.
이제부터 조조는 진정한 패왕으로 거듭나려 불철주야 노력을 하게 된다. 원소의 책사였던 순욱이 조조를 찾아온 것도 이 즈음이다. 거기에 정욱, 순유, 곽가 등등 쟁쟁한 책사들이 합류하면서 '연주의 내정'을 다지게 되고, 이런 탄탄한 내정을 바탕으로 조조의 군사는 점점 힘을 불려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재기에 확실히 성공한 조조는 아버지 조숭에게 연락을 취해 연주로 모셔오고자 한다. 조숭은 연주로 가는 도중에 도겸이 다스리고 있던 서주를 지나게 되었고, 조조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도겸은 조조의 아버지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호위까지 붙여 환대했다. 그러나 일이 잘못 되려니 하필 호위로 붙인 군사가 '황건적 잔당 출신'이라 도겸이 선물로 준 보물이 탐나서 조숭의 목숨까지 해치고서는 달아나버리고 만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이제 막 재기한 군사를 박박 긁어모아서 서주를 침공하기로 한다. 갑작스런 비보에 당황한 도겸은 조조의 군세를 보고 위축되어 이곳저곳에 원군을 요청하지만 '공손찬 군대'에 있던 유비만이 이에 응답하고 스스로 원군을 자처해서 나아간다. 공손찬에게 소규모의 병력을 지원받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는 유비가 도겸을 돕고 싶어서 도우려 간 것이 아니다. 실재로 유비군과 조조군이 맞붙어 싸우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서서 원군이 되고자 했던 것은 무시무시한 공손찬에게서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공손찬은 '북방의 귀신'으로 불릴 정도로 엄청 잔인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 밑에 있다가 눈밖에 나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에 유비군은 사실상 달아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주 자사 도겸의 처지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막강한 군대가 지척까지 쳐들어왔는데, 늙고 병든 도겸은 이를 막을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도겸도 젊은 시절에는 전장에서 빛나는 업적을 자랑할 정도로 용감무쌍했다고 전해지지만 이미 늙은 몸에 병마까지 시달리고 있어서 군대를 지휘할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돕고자 스스로 찾아온 유비군이 얼마나 고맙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조조가 서주를 침공할 때를 노려서 여포가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빈집털이하자 조조군은 서둘러 철군을 했고, 유비군은 도착해서 별로 한 것도 없이 조조군을 물리친 공을 세운 셈이 되었다. 이에 감격한 도겸은 유비의 풍모에서 귀티가 좔좔 흐르는 것을 보고 덜컥 '서주'를 안겨주고 말았다. 물론 유비는 사양을 하고 서주와 연주 사이의 작은 성 '소패성'에 머무는 것으로 합의를 했지만 말이다. 얼마 뒤 도겸이 죽자 '서주의 백성'은 자신들을 구원(?)한 유비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하며 유비는 졸지에 서주 자사가 되고 만다.
한편, 여포는 동탁을 죽인 뒤에 영웅의 자리에 올라야 정상이었으나, 동탁군 잔당이었던 이각과 곽사에 의해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마침 조조가 연주를 비운 채 서주를 공격하러 가자 빈집털이를 하러 연주를 공격한 것이었다. 부랴부랴 돌아온 조조는 진땀승부 끝에 연주를 되찾고 여포를 쫓아냈다. 그렇게 유유히 돌아간 곳이 바로 유비가 새로 취임(?)한 서주였고, 유비의 환대를 받으며 당당히 소패성의 새 주인으로 들어앉게 된다. 유비는 왜 여포를 받아들인 것일까? 바로 조조군이 다시 쳐들어왔을 때 여포의 힘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리스크(위험)가 크다. 여포는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유비는 자신이 도겸을 단박에 사로잡은 인품으로 여포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여긴 듯 싶다. 만약 여포 곁에 '책사 진궁'이 없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진궁이 여포의 책사로 있었기에 도리어 유비가 당하게 되었고, 애써 얻은 서주를 여포에게 내어주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끝내 유비는 구사일생으로 조조의 품으로 뛰어들게 된다. 마치 호랑이의 입 속에 제 발로 뛰어든 격이다.
그런데 조조의 책사였던 진궁이 어찌 여포의 책사가 되었을까? 그건 바로 조조가 저지른 만행을 견딜 수 없었기에 예전에 조조가 제 품으로 뛰어들었을 때 '죽이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서 조조 곁을 떠나고 여포에게 힘을 실어주어 '조조 죽이기'를 실현시키려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진궁을 조조를 죽이고 싶었다. 왜? 이제와서 뒤늦게야 '조조 죽이기'에 열을 올린 것일까? 그건 바로 '서주대학살'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일전에 '여백사 사건'에서도 일찌감치 알쪼였지만, 그래도 진궁은 조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왜냐면 그건 '도망자의 절박함' 때문에 벌어진 헤프닝으로 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주대학살은 달랐다. 아무리 아버지 복수라는 명분이 있었으나, 죄 없는 서주 백성들을 죽이고 또 죽이면서 시체로 산을 이루고 강을 메우는 참혹한 짓을 벌일 까닭으로는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사패짓(사이코패스 행동)'이었다. 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진궁은 조조에게 떠난다는 말도 없이 떠나서 여포에게 '조조'를 죽여달라 애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조는 어찌하여 '서주대학살'을 저지른 것일까? 애당초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는 핑계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서주 지역'을 독차지하기 위한 욕망 때문이었다. 조조가 근거지로 삼은 '연주'는 사방으로 적들에게 둘러싸인 불리한 지역이었다. 북쪽에는 기주를 차지한 원소가, 남쪽에는 원술이, 서남쪽에는 형주의 유표가 호시탐탐 조조를 노리고 있었다. 연주 한 곳에서 이들 모두를 상대하기란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조는 원소가 먼저 서주를 점령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서주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욕망이 실현될 찰나에 유비가 나타나서 홀랑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그에 대한 분노가 멈출 줄을 몰랐고, 당장 여포를 몰아내야 했기에 급히 철수해야 했으나, 이대로 유비에게 넘겨주기에 아까운 서주에 '조.조.'라는 두 글자를 심어주고자 잔인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비록 짧으나마 유비의 치세에서 안정과 행복을 누린 '서주의 백성'에게 누가 진정한 강자(패왕)인지 단단히 심어주려 했고, 무엇보다 유비에 대한 시기와 질투도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자신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던 '서주'를 유비는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덜컥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나가는 글 : 한편, 서주대학살이 벌어질 당시 엄청난 인물 하나가 '학살현장'이 된 서주에서 형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천재라고 불리는 '어린 제갈량'이었다. 훗날 제갈량이 유비와 손을 잡게 된 결정적 이유도 바로 '서주대학살'에서 겪은 충격 때문일지도 모르는 '복선'이다. 세상 똑똑한 천재가 왜 '대세'는 조조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비와 손을 잡았던 걸까? 대부분의 '연의'에서는 이 대목에 대한 설명이 없는데 <삼국지톡>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려는 듯 싶다.
암튼, <삼국지톡> 덕분에 '서주대학살'이 가지고 있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된 것 같다. 보통 '연의'만 읽게 된다면 조조가 저지른 끔찍한 만행이 잘 드러나지 않아 '서주대학살'은 그저 그런 헤프닝으로만 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주대학살'은 조조의 인품과 훗날 벌어질 일대 사건들에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 때 당한 '서주 출신 인재들'이 속속 조조의 뒤통수를 치게 되고, 서주 출신 인재들이 '유비의 편'을 들면서 금이야 옥이야 그 무엇인든 아낌 없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도 다름 아닌 '서주대학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서주 부자 출신인 '미축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다. 미축 집안이 '유비'를 지지하기로 결정을 내리자 수많은 서주의 백성들은 두 말 할 것 없이 유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에 나서고, 그 유명한 진등진규 부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며 유비를 지지했던 것이다. 물론 진씨 부자는 유비 개인에게 충성을 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 신하'로서 황제에게 충성을 다한 것이지만, 결국 유비가 헌제의 황숙이 되었기에 '로열패밀리'로서 유비를 돕는 일이 나라에 충성하는 일이 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삼국지>를 분석할 때 '서주대학살'을 중심적 사건으로 단언하고 비교분석해야겠다. 그동안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삼국지톡> 덕분에 '서주대학살'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조를 분석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로 적용해봐야겠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