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해요 : 나태주 시 그림책> 나태주 / 심보영 / 한솔수북 (2026)
[My Review MMCCLVI / 한솔수북 1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든다섯 번째 리뷰는 따뜻한 마음과 다정한 말씨를 한껏 감상할 수 있는 나태주 시인의 시가 담긴 그림책 <사랑한다고 말해요>다. 동시는 어린이의 마음가짐으로 순수하게 써내려간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고, 어린이의 감성을 자극해서 가슴은 따뜻해지고 마음은 하늘만큼 땅만큼 넓어지는 것이 동시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동시를 어린이만 읽어야 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동시가 '어린이를 위한 시'인 것은 맞지만 '어른이 직접 썼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간혹 '어린이 시인'이 쓴 동시도 있지만, 그런 어린이 동시를 책으로 엮어낸 것은 정말 찾기 힘들다. 그런 까닭에 <동시집>은 어린이만 읽어야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반드시 어른인 '엄마아빠가 함께 읽어야 할 시집'인 것이다. 그래야 화룡점정과 같이 마지막 '마음의 점'을 함께 찍어 마침내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사랑한다고 말해요> 관점 포인트 : 먼저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작가가 '나태주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까닭에 시인의 글을 읽으면 '동시'를 읽는 듯 순수함이 함박 묻어나기 때문이다. 어른의 감성으로 쓴 시인데도 나태주 시인의 눈과 손과 마음을 거치고 난 글들은 '예쁜 글씨'로 새롭게 태어난 듯 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 [풀꽃1 전문] 읽기만 했는데도 눈앞에 풍경이 선해지지 않은가. 이런 시인이 시는 그저, 그냥 줍는 것이다 //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 버려진 채 빛나는 / 마음의 보석들 <사랑한다고 말해요> 중 [시 전문] 이라고 말한다. 어느 시인은 '시집' 한 권을 애써 펴내도 사람들이 사지 않아 빈털터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굶주리고 있다고 한탄을 해서 안쓰러웠는데, 나태주 시인은 '그냥 주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나태주 시인의 시집만 사달라는 건 아니다. 그냥 마음 따뜻해져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시인의 안타까운 사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고, 자신이 애써 쓴 시를 사람들은 '인터넷'에 선심 쓰듯 '공짜'로 올리지만, 정작 그 시를 쓰며 고생하고 노력한 시인은 굶주리다 못해 죽을 지경이라면 한탄을 해서 안쓰러웠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를 '골라' 읽지만 말고 마음에 드는 시가 있다면 시집 한 권쯤 '사서' 읽어달라는 하소연 담긴 사연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데도 나태주 시인은 '그냥 줍는 것'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그렇게 주운 시가 '마음을 빛나게 해주는 보석들 같다'고 노래했다. 시인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냥 길거리에 뒹굴고 있을 돌에 불과했지만, 시인에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눈에 꼭 들어와서 보석이 되었노라고 얘기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런 수준의 시를 어린이들에게만 읽으라고 골라주기만 하는 엄마아빠라면 아무리 '보석같은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그냥 돌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도 충분히 '보석 같은 시'를 건져내는 능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천재적인 아이일지라도 처음에는 가르쳐줘야 한다. 이것은 그냥 단순한 돌이 아니라 보석이라고 말이다. 아이들 눈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그냥 신기해 보이겠는가? 수천만 원의 값어치를 가진 소중한 보석이라고 간파하겠는가? 그저 신기해서 쳐다볼 뿐일 것이다. '가치'는 가르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아이 혼자 보게 만들지 말고 엄마아빠가 함께 읽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보석같은 시그림'을 찾아내어 아이와 함께 '감상'을 해보라는 말이다. 그래야 아이도 나중에 홀로 그림책을 읽고, 시집을 읽으면서 길거리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나가는 글 : 요즘 어린이들은 어린이답지 않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들조차 말이다. 비록 사교육이긴 하지만 나도 독서논술을 가르치는 선생이라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40여 년이 넘도록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나태주 시인의 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분도 어찌 그런 경험이 없었겠느냔 말이다. 버르장머리 없고, 못되 처먹은 심보를 가진 고약한 어린이들을 숱하게 경험하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나태주 시인은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써낸다. 옛말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되새겨 보게 되었다.
우리는 '나쁜 어린이'라는 주홍글자를 새기기에 바빴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어린이까지 탓하지 말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굳이 종교적인 해석도 필요없다. 애초에 <성경>에도 없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출처조차 알 수 없지만, 이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까닭을 더욱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나태주 시인을 떠올릴 때마다 이런 생각이 앞섰다. 그리고 그분의 시가 담긴 그림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어른이 되자고 말이다. 그렇게 바라보고, 더 자세히 바라보면, 그냥 돌멩이가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 눈이 썩어서 보석을 알아보지 못한 주제에, 아직 다듬지도 않은 않은 '원석'같은 보석들을 휘황찬란하게 빛나지 않고 있다고 탓을 먼저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좋다. 너무 좋다. 부끄러운 마음가짐을 갖고 있던 나를 뉘우치고 따뜻한 마음으로 새로 태어나게 해준 이 책이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