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8>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L / 문학동네 3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아홉 번째 리뷰는 1978년 연재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완전판으로 복간된 <고우영 삼국지 8>이다. 엄혹했던 박정희 유신정권을 이어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이 뒤를 잇는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을 '만화'를 도구 삼아 사회 비판에 앞장섰던 것이 <고우영 삼국지>의 참뜻일 것이다. 물론 대놓고 비난을 일삼지는 못했다. 건전한 비판일지라도 그것이 '부정한 권력'이라고 날선 것을 트집 삼아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으로, '삼청'으로 끌고 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몸 성히 지낸다해도 온갖 검열과 탄압이 뒤를 이었기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셈이었다. 그런 시절을 동경하고 전두환을 가장 존경할 만한 지도자로 추켜세웠던 윤석열에게 지지를 보내는 극우세력이 잔존하는 작금의 세태가 한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그토록 목놓아 부르짓는 '자유'를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짓밟으려 했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 무지몽매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8> 관점 포인트 : 8권의 핵심은 드디어 이룬 '천하삼분지계'다. 지난 7권에서 방통을 잃은 유비가 비보를 듣고 한 달음에 달려온 제갈량과 장비의 구원을 받아 유장을 궁지로 몰아 '익주의 직인'을 건내받게 된다. 이로써 천하는 조조, 손권, 그리고 유비 세 나라가 힘을 겨루는 형세를 띠게 되었다. 이제 삼국은 요충지인 '형주'를 두고 공방전을 펼친다. 조조가 손권을 칠 때도 '형주 세력'이 뒤통수를 노리고 있기에 힘을 쏟을 수 없게 되고, 조조가 유비를 칠 때도 '형주'가 수도 허도를 깊숙이 찌르는 형국이라 맘 놓고 전력을 다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그 중요한 요충지에 '관우'를 남겨 두고 굳건히 지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관우는 이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적임자'는 아니었다는 것이 <삼국지>를 분석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관우가 지키던 형주를 어이없게 잃어버린 탓이다. 이를 위태롭게 짐작한 제갈량은 '조조에겐 강경하게, 손권에겐 유연하게' 용맹과 지혜를 함께 발휘하라 관우에게 당부하지만, 관우는 어찌 된 일인지 조조와 손권을 모두 강경하게 대할 뿐이었다. 아니 너무 얕잡아 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뒷이야기는 9권에서 이어지니 다음으로 미루겠다.
유비가 유장의 세력이었던 '익주'를 차지할 때, 조조는 승상의 지위를 넘어 '왕'을 스스로 자처할 지경에 이른다. 천자인 헌제를 압박해서 '위왕'에 봉하도록 한 것이다. 왕위에 오른 조조는 더욱더 권력을 함부로 휘둘렀고, 이를 탐탁스럽지 못하게 여긴 한나라의 충신들은 '역적 조조'라는 기치를 내걸고 속속 역모를 꾀한다. 조조가 한나라의 주인도 아닌데 '역모'라 운운하는 것이 우습지만, 그만큼 조조의 위세가 황제 못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조조의 권세가 아무리 끝을 모를 정도로 하늘을 찌른다하더라도 그것은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이를 정확히 찔린 조조는 더욱더 검열을 강화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폭력과 탄압을 그칠 줄 모르게 된다. 급기야 '황후'까지 자신을 암살하려 배후를 조작했다는 증거를 몰아 죽이려 들자 '화흠'이란 자가 앞장 서서 복황후를 때려 죽인다. 신하란 자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일신의 영욕을 위해서 끔찍한 짓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댄 것이다.
이리 막나가는 조조의 최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가 맞이할 마지막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수양대군'과 '세조'에 대한 평가가 다시 입에 오르고 있다. 수양대군은 '야심가'다. 그래서 왕위에 정당한 방법으로 오를 수 없자 '계유정난'이란 반정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 하지만 비록 찬탈이라는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세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후한 편이다.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조의 업적이 빛나더라도 수양대군이 벌인 끔찍한 살육과 폭력으로 저지른 악행마저 지울 수는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세조가 되어서 수양대군 때 저지른 일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했던 것이다. 왕조시대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왕'처럼 군림하려 들면 어쩔 것인가?
나가는 글 :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고우영 삼국지>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가 바로 '역적 조조'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사실 <정사 삼국지>에서 조조는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영웅이다. 망국의 길로 들어선 한 나라의 충신으로 남고자 했으나 역부족을 느꼈기에 혼란한 세상을 평안하게 하고자 '군벌세력'을 독자적으로 키웠고, 그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패왕'이 되어 태평한 천하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새로운 왕국을 세운 위인이 많았으니 조조만을 딱 꼬집어서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삼국지> 속의 조조는 이토록 인기가 없는 것일까? 그건 다름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비'라는 또 다른 영웅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비록 역사적으로 유비는 망국을 되살리거나, 새 왕조를 개창하는 위업을 달성하지 못한 비운의 영웅이었으나, 그가 살아생전에 보인 행적은 여러 모로 귀감이 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의와 도덕의 방식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 무던히도 불의와 싸웠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조조와는 '다른 방식의 야심'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유비의 야심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해 보도록 하자.
암튼, 8권에서는 '역적 조조'를 벌하려는 우국지사들이 우르르 등장한다. 복황후가 그랬고, 도술가 좌자가 그랬으며, 아직 조조에게 굴하지 않고 '정당한 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올바른 신하들'이 속속 조조의 빈틈을 노리고 반기를 드는 장면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이들은 '힘의 격차'도 모르고 '자신의 그릇'도 파악하지 못한 바보들이라 그런 것일까? 속된 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서'도 계란이 깨어지지 않고 바위가 쩍하고 갈라질 망상에 사로잡힌 멍충이들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비록 처참히 깨어지는 쪽은 당연히 '계란'인 것을 불을 보듯 뻔히 알지만, 깨어진 계란에 의해 더럽혀진 바위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기 위해서 제 한 몸을 희생한 것이다. 이래 깨어지나 저래 깨어지나 깨어지긴 마찬가지라면 산산히 부수어진 제 몸으로 위용을 자랑하는 바위를 더럽히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한순간이나마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위는 제 몸을 더럽히고 고얀 냄새를 풍기던 것들을 치우며 '새단장'을 하고 다시 위용을 뽐내겠지만, 수많은 달걀들이 깨어지고 바위가 더럽혀지는 장면을 지켜본 눈들마저 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가 겪을 최후의 모습이다.
대개의 <삼국지>가 이런 역적 조조에 대한 묘사를 늘어놓았지만, <고우영 삼국지>만큼 탁월하게 그려낸 수작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삼국지>를 꾸준히 읽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무엇이고, 오늘날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단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역사는 '승자의 입맛'대로 써내려갈지라도 역사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포인트는 따로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