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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구석방
  •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6
  • 고우영
  • 14,850원 (10%820)
  • 2021-01-15
  • : 128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6>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LIV / 문학동네 3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세 번째 리뷰는 구태한 세태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에로티시즘을 더한 수작 <고우영 삼국지 6>다. 1980년대는 그야말로 '애로영화의 전성시대'였다. 해방 직후 사회고위층의 불륜을 소재로 한 <자유부인>(정비석)에서 사교댄스에 빠져 외갓남자와 포옹하는 장면만으로도 '외설'을 논하던 때에 비하면 1980년대에는 '여배우의 노출'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두고 벌이던 외설논란은 차치하고 '미성년자(여고생, 여중생)'를 신인여배우로 등장시켜서 배드신과 키스신을 강요(?)하던 시기였기에 그랬다. 이는 '군사독재정권의 3S 정책'의 일환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회에 불만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시선돌리기' 용도로 스포츠, 스크린, 섹스를 일반 대중에게 무한제공한 것이다. 그리하야 80년대에 프로야구 출범, 애로영화 개봉허용, 성풍속 개방이 가능해졌고, 이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함을 만끽한 국민들은 새삼스레 '자유대한민국'을 즐겼으나 이러한 '국민을 우롱하는' 우매화 정책을 간파한 지식인들은 이를 역으로 찌르는 통쾌한 비판과 비평을 마음껏 누렸다. 바로 '3S 정책'을 역이용해서 정권비판에 앞장선 것이다. <고우영 삼국지>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느 것 하나 놓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6> 관점 포인트 : 적벽대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둔 손권군과 유비군은 각자 논공행상을 실시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손권군은 딱히 얻은 것이 없었다. 왜냐면 손권측이 가장 원했던 '형주 땅'을 유비가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적벽대전에서 가장 큰 결전을 치룬 쪽은 '조조군과 손권군'이 수상에서 격돌한 것이다. 유비군은 마땅한 수상전력이 없는 형편이라 조조가 후퇴하는 길목에서 퇴각하는 조조군을 토벌하는 육상병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래가지고는 논공행상을 따질 계재조차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유비는 '형주 땅'을 넙죽 차지했다. 그 까닭으로 유표가 살아있을 때 자신에게 후사를 맡기고자 했던 것을 내세웠다. 물론 손권측도 따졌다. 그때 유표의 호의를 거절한 것은 유비 당신이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유표의 친아들 유기가 살아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마땅히 형주 땅은 '유기의 것'이고, 유비 자신은 유기의 후견인으로 보필할 따름이었던 것이라 변명을 한 것이다.

손권측으로서는 따질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애초에 유비, 손권 동맹으로 조조군과 맞서 싸웠으니 '동맹'을 깰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애초의 형주의 주인이 유표였기 때문에 유기가 뒤를 이은 것이 자연스러웠으며, 당장 조조와 결판을 낸 직후라 형주를 힘으로 차지할 병력 또한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건재했다. 신묘한 재주로 '바람의 방향'마저 바꾸는 신통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결전을 벌였을 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권측은 유기가 죽은 뒤에는 '형주 땅'은 손권측으로 귀속된다는 약조를 받아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손권은 만족할 수 없었다. 아직 젊은 유기가 언제 죽을 지 아느냔 말이다. 비록 유기가 현재 강건하지 못하고 비실대고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유가 꾀를 낸다.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을 베필로 삼을 테니 유비가 직접 신랑이 되어 강동으로 넘어오라고 말이다. 물론 화촉을 밝힐 경사스러운 일이니 불경스런 군사와 무기는 일체 내려놓고 '알몸'으로 오라고 말이다. 그런 뒤에 유비를 포박한 뒤에 '형주 땅'과 맞바꾸자는 계책은 누가 보더라도 훌륭했다. 허나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다. 제갈량은 유비가 손권의 혼사 권유에 목숨줄이 날아갈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흔쾌히 혼사를 치르라고 등을 떠민다. 그리고서는 강동 땅에 도착하는 즉시 교국로를 찾아가 자신이 손권의 여동생과 혼사를 치루러 왔다고 소문을 퍼뜨리라고 지혜를 빌려준다. 그렇게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를 만들고 나면 혼사도 무사히 치르고 새신부도 얻을 수 있으며 형주 땅도 굳건히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제갈량이 이른대로 계획은 순순히 진행되는데...문제는 강동 땅에서 무사히 벗어날 뾰족한 수가 안 보이는 것이다. 과연 유비는 살아서 형주 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애써 혼인에 성공한 새 신부도 데리고서 말이다. 두둥~

나가는 글 : 이 대목은 <삼국지>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다름 아닌 '주인공'이 치른 혼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대목만큼 찐하게 묘사한 러브스토리도 <삼국지>에서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 역사책에서는 사랑을 '치정극(불륜)'으로 묘사하고 있고, 이는 <삼국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유비와 손상향의 혼인식은 목숨줄이 오가는 순간에도 남녀간의 화기애애한 러브스토리가 찐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몰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손상향의 나이가 18세였고, 유비는 자그마치 48세였기 때문이다. 대충 반올림해도 20대 처녀가 50대 할애비와 신방을 꾸미는 셈이다. 다행히 불륜은 아니고 정식 혼인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기 딱 좋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무려 30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물론 지금 시대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요즘 50대는 젊은 축에 끼고 아직 청춘이라 부른다지만, 2000여 년에는 10대에 혼인을 하고 20대에 자수성가해서 30대에 노후를 준비하던 시절이라 40대만 넘어도 손주의 재롱을 보며 노년의 삶을 살기 일쑤였는데, 50대 새신랑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이냔 말이다.

허나 여기에는 유비가 '영웅의 반열'에 오른 덕을 크게 봤다. 한마디로 '능력자'였기에 괜찮다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부 당사자인 손상향도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서른 살의 차이를 넘어 유비와의 신혼살림에 대만족을 했고, 그 증거로 유비가 강동 땅을 떠날 때에 손상향도 '같이' 떠날 것으로 그 사랑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만족한 것이 있었다면 고향을 등지고, 자신의 친족과 영영 이별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신랑을 도울 수 있었을까? 정녕 찐 사랑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에 무슨 날카로운 비평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당시 세태가 말초신경의 만족...다시 말해, '쾌락의 절정'을 맞이한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숨막힐 듯한 억압을 경험했는데, 또 다른 군사정권에서는 하염없이 풀어재끼며 '자유'를 만끽했던 것이다. 물론 진정한 자유는 아니었다. 여전히 민주화운동은 억압받았고 정권비판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억압속에서 '탈출구'가 보인 것이다. '섹스의 자유'가 해금된 것이다. 그렇다고 '성풍속'이 하루 아침에 바뀔 리는 없으니 대놓고 '성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성욕을 풀 수 있는 해방구'가 생겼으니 다름 아닌 '매춘(윤락)업의 성행'이었다. 여기에 불을 지를 것이 흔히 '호스티스(hostess)'라고 불리던 '술집여자'가 생겼던 것이다. 술집여자는 먼 옛날에도 '기생'이란 이름으로 있긴 했지만 기생은 차원이 더 높았다. 오늘날로 치면 '아이돌 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술시중'을 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과 예능 전문인'으로 기생은 높은 인기를 끌었던데 비해서 '호스티스'는 그야말로 천한 신분으로 취급받으며 '함부로 해도 되는 여자' 취급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젊은 여성이 술시중을 드는 것을 선호했고, 자연스레 '성욕을 풀어버리는 해방구' 역할을 도맡게 되어 버렸다.

이게 사실상 도덕윤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군사정권의 독재로 사회는 어두운 시절을 겪어야 했는데, 그로 인한 억압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젊은 여성'을 해소용으로 취급하다니 말이다. 이는 과거 일본제국이 '여성 성노예'를 유린할 때 써먹던 방법이었고, 패망한 뒤에도 일본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 자국의 여성을 '미군의 성욕 해소'를 위해 매춘부로 만들어놓고 '애국자' 운운했던 것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당시 전두환이 독재를 하려는데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민적 저항이 너무 강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일본의 방식에서 해결법을 차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딱히 틀린 소문 같지는 않다.

암튼, 유비와 손상향의 세대를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감동을 주지만, 48세의 노땅들이 18살의 젊은 몸을 탐하는 추태를 비판한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런 기본적인 도덕윤리와 인권인식을 갖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유비는 목숨을 걸고 장가 들러 갔고, 유비나 되는 '영웅'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라는 예외사항을 강조 또 강조해야 할 대목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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