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5>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XLIII / 문학동네 3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두 번째 리뷰는 유머와 위트가 살아있는 <고우영 삼국지 5>다. 물론 이 만화를 신문에 연재하던 1980년대의 흘러간 유머다. 그래서 21세기 최첨단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닥 유쾌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그저 그런 '옛날 개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절대적 진리를 앞세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냐면 오늘날에도 그 시절의 '독재정권'을 흉내낸 나쁜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대통령 임기 내내 정적 암살밖에 하지 않다가 여의치 않자 비상계엄을 저지른 윤석열 말이다. 80년대에는 윤석열이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았다던 '전두환'이 있었다. 이 두 명은 '비상계엄'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각각 '군사세력'과 '검사세력'을 사적으로 키워서 저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영원히 집권하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점에서 그야말로 빼다 박았다. 이런 엄혹한 시국에 '유머와 위트'는 자칫 정권 비판으로 오해를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작두를 타는 듯한' 위험천만함을 감수한 것이었다. 윤석열 때도 '정치비판' 성격의 유머는 금기시 되었고, 감히 정권을 풍자를 하면 '검사세력'이 가만 있질 않던 걸 기억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윤석열차'(2022)라는 풍자그림이 수상되었는데, 바로 정치권력이 움직여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활동제약까지 받은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고우영 삼국지>는 바로 그런 시대에 나온 수작이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5> 관점 포인트 : 지난 4권에서 유비가 '삼고초려'를 해서 제갈량을 모셔왔다. 그리고 이번 5권에서는 조조가 드디어 '관도대전'에서 큰 승리로 승기를 잡은 조조가 원소 세력을 물리치고 북쪽을 평정한 것으로 시작한다. 등 뒤를 깔끔하게 정리한 조조가 눈을 돌린 것은 바로 남쪽에 도사리고 있는 '동오 세력'이었다. 그리고 장강(양쯔강)을 넘어 강동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최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세력이 하나 남았다. 바로 '형주 땅'이고, 그 땅에 바로 '유비'가 머물고 있었다. 조조는 곧바로 유비를 치고, 손권까지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려 한다.
하지만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다. 가히 '천재'라고 불릴만한 책사가 유비에게 있는 한 호락할 순 없었다. 그래서 조조의 초반 공격을 제갈량은 가뿐하게 물리친다. 바로 '박망파 전투'다. 그러나 세력의 차이가 너무 큰 까닭에 유비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비는 홀몸이 아니다. 유비가 잠시 다스리던 '신야 백성들'이 조조의 침략에 벌벌 떨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비와 함께 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행진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얼마 있지 않은 유비군은 뒤쫓는 조조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조조군의 야만적인 폭력에 의해 무고한 백성들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제갈량의 계책으로 유비 일행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고, 제갈량은 동오의 세력과 손을 잡고 조조군에 맞서고자 손권 진영으로 넘어간다. 이른바 '적벽대전'의 시작이다.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은 늘 하이라이트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그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주연급'이기 때문이다. 유비, 조조, 손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군대를 지휘하는 책사들인 제갈량과 주유가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조측에는 곽가의 사후에 별다른 책사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조조측에 신통치 못한 책사들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가 '북방 출신'이라 물 위에서 싸우는 수전에 별다른 계책을 내세우지 못했고, 머나먼 남쪽의 지리에도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조측에서는 그나마 서서와 방통이 나서서 지략을 뽐내지만, 서서는 애초에 조조에게 속아 어머니가 죽임을 당한 것과 다를 바 없어서 돕지 않으려 했고, 방통은 오히려 '스파이'로 연환계를 꾸미는 활약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 바람에 조조군은 궤멸 당할 수밖에 없었고, 사실상 '적벽대전'은 제갈량과 주유의 지략 대결로 봐야 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흘러 간다.
물론, 적벽대전의 승리에는 손권군의 장수 '황개의 고육계'가 한 몫 단단히 했다. 조조군의 100만 대군을 싣고 있는 대선단을 '화공'으로 격파하려 했던 아이디어도 황개의 작품이었으며, 이를 몸소 실행에 옮긴 용장도 다름 아닌 늙은 황개였던 것이다. 꾀 많은 조조를 속이기 위해서 늙은 몸에 채찍질을 가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여기저기 튀기는 잔혹한 형벌의 고통도 오직 '조조'를 속이겠다는 계략의 일부였던 것이다. 거기다 마지막 화룡점정조차 황개가 타고 간 배의 앞에 엄청난 '유황불'을 짊어지고 조조의 대선단에 꼬라 박아버리는 선봉을 선 것도 황개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개는 '적벽대전'에서만큼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대활약을 벌인다.
나가는 글 : 그럼 <고우영 삼국지>에서 눈여겨 볼 것은 무엇일까? 만화의 성격상 '세세한 심리묘사나 정황설명'을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줄거리도 대략 띄엄띄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만화답지 않게 '사건 하나하나'는 대체로 세세하게 진행하며 '사건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개하였다. 거기다 앞서 이야기한 '유머와 위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 '말풍선' 하나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사람의 인지 집중력은 고작해야 5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를 뛰어넘어 10분, 20분도 지치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에로티시즘'이다. 한마디로 '야한 장면'이 독자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비록 대놓고 야하지는 않지만 원래 홀딱 다 벗은 알몸보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야함을 자극하는 법이다.
한편, 신야의 백성들은 원래 주인도 아니고 잠시 머물며 다스렸을 뿐인 유비가 조조군을 피해 퇴각하는데 따라 나선 것일까?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를 유비가 백성들에게 '선정(좋은 정치)'을 베풀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감흥을 받은 백성들이 유비를 자발적으로 따라나선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정답'이다. 유비는 유표의 죽음으로 형주를 낼름할 수 있었는데도 그리하지 않는 도덕군자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이 백성들이 자신이 살던 고향과 터전을 모두 팽개치고 유비를 따라나서게 만든 원인으로 보기에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원인은 바로 '공포심'이다. 유비군을 따라가지 않으면 싹다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공포심 말이다.
어디에서 기인하는 공포심이었을까? 조조는 앞서 서주자사였던 도겸을 공격했다가 유비에게 가로막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러자 조조는 서주에 남아있던 백성들을 싸그리 죽여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른바 '서주대학살'이다. 조조의 아버지를 죽인 '황건적 출신 장개'에게 복수를 해야 옳을텐데, 도겸에게 책임을 물었고, 그 도겸을 직접 죽일 수 없게 되자 서주의 백성을 학살하며 분풀이를 한 것이다. 이런 조조였다는 걸 전해 들었던 '신야의 백성들'은 조조군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를 직접 경험한 유비도 조조군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야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조조의 대군 앞에서 '중과부적'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유비는 어쩔 수 없이 퇴각을 하지만, 차마 백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갈량 vs 주유'의 지략 대결이다. 이 대결에서 진 주유는 "하늘은 주유를 낳고 어찌하여 제갈량을 두었느냐"면서 한탄을 했다지만, 이는 그야말로 '패배선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은 세상을 놀라게 할 천재인데, 나보다 더 뛰어난 천재의 등장을 시기하는 듯한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주유는 단 한 번도 제갈량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완벽한 패배를 당하고도 담담히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주유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는 그가 진정한 영웅이 될 그릇이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주유는 이처럼 용렬하고 불운한 천재였을까? 그건 아닌 듯 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유의 활약이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정사 삼국지>에서는 손권의 형 '손책의 의형제'로 나서서 손책이 원술의 휘하에서 벗어나 '강동 땅'에서 화려한 성공을 거두며 '소패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게 혁혁한 공을 세우는데 주유의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를 휘뚜루마뚜루 넘겨버리고 만다. 왜 그랬을까? 애초에 '동오 세력'은 <삼국지연의>에서 주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인 유비와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의 한 축을 담당하기 위해서 '조연'으로 구색을 맞춘 덕분이다. 그런 까닭에 희대의 천재였던 '주유'조차 엑스트라 취급을 하고만 셈이다. 다음 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