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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구석방
  • 체육소녀 유채화
  • 송광용
  • 11,700원 (10%650)
  • 2026-02-23
  • : 1,860

<체육소녀 유채화 : 제3회 한솔수북 선생님 동화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송광용 / 한솔수북 (2026)

[My Review MMCCXLII / 한솔수북 13번째 리뷰] 고품격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한 번째 리뷰는 한솔수북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체육소녀 유채화>다. 한솔수북 출판사의 브랜드지수는 '애니메이션'과 '그림책' 부분에서 돋보인다. 아무래도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에서 모두 큰 인기를 얻은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한솔수북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을 넘어 '동화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구름빵>에서 보였던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선정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이 책 <체육소녀 유채화>는 초등학생 주인공의 꿈과 열정을 응원하는 한편,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했을 때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고, 그 결과의 차이도 명백하게 느낄 수 있다는 교훈을 더불어 전달해준다. 그렇다고 동화책이 '교훈 전달'에만 치우친다면 정작 동화책을 읽어야 할 어린이들에게 외면받기 십상일 것이다. 그럼 이 책이 얼마큼 재미있는지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체육소녀 유채화> 관점 포인트 : 우리 학부모들은 '체육'에 소질을 갖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기뻐할까? 운동선수로 대한민국 원탑이 된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안정환, 김연아, 박태환, 이상화, 이대호, 손흥민, 안세영 등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에 비해서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은 뼈를 깎고 살이 애이는 고통스런 훈련만 하다가 몸이 상하고 그에 맞는 보상도 받지 못한채 스러져가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실에 비춰 자신의 소중한 자녀는 '그런 험한 길'을 제발 걷지 않길 바랄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배운다면 겨우 '키 성장'이나 '몸매관리' 정도로 만족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조리 '국영수 성적'에 올인하는 안정적(?)인 길을 바랄 것이다. 더구나 올림픽 정식 종목도 아닌 '피구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열을 올리는 자녀를 본다면 응원해주기는커녕 그 시간에 다른 학원이나 가라며 뜯어 말릴 것이 틀림 없다.

그런데도 자녀가 운동에 '소질'을 보이고 제대로 된 체육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을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렇다면 달갑지는 않지만 자녀가 '좋아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할 것이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유채화'가 그런 캐ㅣ릭터다. 스케이팅 선수였던 아버지를 닮아 어릴 적부터 각종 운동에 소질을 보여줬고, 채화도 가장 잘하는 과목이 '체육'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아주 '잘하기'까지 한다. 어떤 종목의 운동이든 여 보라는 듯이 소질을 뽐냈고, 자신의 장기를 최고로 선보이며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런 유채화였기에 채화는 여자 아이들 뿐아니라 남자 아이들과 곧잘 어울리며 각종 체육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한마디로 '운동천재'였다.

이런 유채화가 어느날 '배드민턴'에 꽂혀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채화가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내주어도 좋다고 생각해 찬성했지만, 정작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아빠는 채화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래서 채화는 학교 체육시간에 하는 운동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채화는 분명히 '잘 할 수 있을 자신'도 있었는데 아빠가 반대하는 것에 놀랐던 것이다. 도대체 왜 반대하신 걸까?

그러는 한편, 운동 학원에 다니지 못한 채화는 체육시간에 '반 대항 피구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선전'에서 번번히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 때마다 늘 참여 선수가 상대편보다 적었기 때문에 불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대편보다 참여 선수가 적은 까닭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경기에 늘 빠지는 세 명의 친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얄미운 변명을 늘어놓는 '주동자'가 바로 차현욱이란 학생이었다. 채화는 '숫자만' 채우면 절대로 질리가 없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현욱이에게 '피구 경기 참여'를 부탁했지만, 현욱이와 쌍둥이 친구들은 여전히 아프다는 변명만 늘어놓으며 참석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채화는 더욱더 속상했다. 운동천재인 자신이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피구 경기'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편의 평범한 공격도 피하지 못하고 아웃 당하고 마는 선수들을 더욱 닥달하며 '잘 하자!'고 응원을 보냈고, 때론 어이없는 상황에서 아웃 당하는 선수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신경질도 내곤 했다. 채화네 반은 이렇게 '반 대항 피구 경기'에서 예선 탈락하고 마는 것일까?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동네의 외진 공터를 지나고 있을 때 차현욱과 쌍둥이 친구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피구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늘 아프다는 핑계를 대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즐거운 표정이었다. 더구나 경기 실력도 상당했다. 도대체 왜? 이런 실력을 감추고 학교에서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열외'를 자처했을까? 채화는 의문투성이였다. 그런데 차현욱과 즐겁게 피구 경기를 하던 친구들 뒤로 덩치가 더 큰 학생들이 둘러싸더니 서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까닭인 즉슨, 하나 뿐인 공터를 두고 서로 '피구 경기'를 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리고 그 우선권 결정권을 두고 '한 판 승부'를 약속했던 모양이다. 그 승부에서 진 팀이 공터를 떠날 것을 약속하면서 말이다. 현욱이는 분한 표정이었다. 분명히 이 공터에서 먼저 피구를 시작한 쪽은 '현욱이네 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덩치와 힘에서 밀리는 상황이라 어쩌지 못하고 '저쪽이 정한 룰'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욱 그런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소녀 유채화'가 등장할 적당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현욱이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운동실력이 남다른 채화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아주 작기는 하지만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욱이는 채화의 참여를 망설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피구'를 운동실력이 좋고 심지어 피구 경기를 '잘하기'까지 하는 채화의 참여를 망설인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지만 현욱이와 채화는 결국 '한 팀'이 되어 공터의 진정한 주인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이기로 한다. 그리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피구 경기'를 준비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피구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현욱이가 학교 예선전에는 왜 참가하지 않았던 걸까? 이런 채화의 의문들까지 모두 파헤칠 수 있을까?

나가는 글 :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하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이다. 이 말에 담겨 있는 뜻은 제 실력 좋은 것만 믿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하는 '노력형'에게 결국 뒤쳐질 수밖에 없고, 아무리 노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들 좋아하는 것을 넘어 미친듯이 '즐기는 사람'에게는 끝내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미쳐야 미친다'는 말로 줄일 수 있고,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것을 넘어 정신줄을 잃은 상태(다시 말해, 본능적으로)에서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경지에 다다라야 비로소 완벽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천재'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을 때 채화의 아빠가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려는 채화에게 '반대'하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분명 자신을 닮아 운동에 소질을 보이고 있고, 시키면 분명 '잘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상황에서도 반대를 하셨다. 왜 그랬을까? 당신께서 미리 '경험'을 했고, 운동이란 '소질'과 '재능'만으로 크게 빛을 볼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잘 하는 것'을 불의의 사고로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된다면 '천재'라 불리는 이들에게 더 큰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운동 말고 '다른 것'에도 더 많은 경험을 쌓아보라는 아빠의 현명한 조언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천재라도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는 아무리 훌륭한 교육자라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협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것 반', '네것 반'이 모여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1+1=2가 되는 것으로 '협력'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서 '1+1=무한대'가 되지 않고서야 '협력의 필요성'을 깨닫지도 못하고, '협력의 중요성'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1+1=2'가 될 것이라면 그냥 각자 잘 하면 되지 굳이 '한 팀'이 되려고 불편을 감수하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1+1=3' 정도만 되어도 남는 장사가 아니겠느냐 싶지만, 그럴 바에 각자 조금 더 분발해서 '1.5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훨씬 더 쉽지, 굳이 남에게 비위를 맞춰가며 '0.5의 보너스'를 받으려 애쓸 까닭이 있겠냔 말이다. 그러니 '협력'이란 무한대의 성과를 낼 수 없다면 애초에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협력을 어떻게 하면 잘 이끌 수 있을까? 사람마다 경우가 다를 수 있겠지만, 먼저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즐기는 수준'이 노멀(평범)이 되어야 한다. 거기에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협력할 마음이 된다. 여기에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비우고 이타적인 마음을 채우지 않으면 '협력'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상대를 나 자신보다 먼저 위하는 마음이 노멀이 되어야 비로소 '협력의 성과'가 무한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피구 경기'로 돌아가보자. 여럿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 '작전'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작정 공을 던지면서 '개인적인 기량'으로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하는 것으로 승패의 결과를 맡기면 승률이 높아질 턱이 없다. 그건 그냥 '개인 경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 경기'에서는 철저히 자신을 내려 놓고 '팀 승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그에 맞는 '작전'을 짤 수 있고, 그 작전의 효과도 더욱더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현욱이와 채화가 함께 참여한 피구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진면목이다.

그리고 이런 완벽히 협력이 이루어지는 경기를 치루고 난 뒤에는 '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겼다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고, 반대로 졌다고 해도 '멋진 한 판'을 치룰 수 있었다는 즐거움에 '다음 경기'를 더 잘하겠다는 다짐으로 힘든 훈련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운동경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협력을 잘 이끌어내는 리더의 역할이 빛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잘 하는 것'과 '즐기는 것'의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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