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X / 인물과사상사 3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아홉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9>이다. 일제시대 36년간 거시적인 관점에서 '망국의 한'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은 슬픔이 이토록 사무치고 기댈 곳 없는 설움이 그토록 서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민족은 그 슬픔과 설움의 현장에서 살을 에이는 고통을 견디며 삶을 이어갔다. 그 어둠속에서도 빛을 내는 존재도 있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시대를 겪으며 그간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일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고 손기정 선수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제시대를 큰 그림에서 처절하고 불우한 시절이었다고 평가내릴 수 있겠으나, 세세한 부분 부분들을 살펴보면서 낱낱이 평가해볼 필요는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일제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운 인생을 찾았다고 '일제시대 전체'를 백점 만점 주는 어리석은 짓은 제발 안 했으면 싶다. 손기정 선수가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른 뒤에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승리를 만끽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건 '개인의 영광'은 더할나위 없이 기뻤겠지만 '나라 잃은 슬픔'과 함께 기뻐해줄 동포의 아픔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개인적인 성취에 들떠서 환희를 만끽하고, 제 동포가 죽거나 다친 건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직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민족의 배반자들'은 일제시대가 아주 좋아 죽을 것처럼 좋았을 것이다. 천지개벽하여 새세상이 열린 것만 좋아라 하고 세상이 뒤집혀져서 피해를 보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해줄 줄 모르는 철면피들에게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9> 관점 포인트 : 9권에서는 특히 1930년대 풍속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책내용을 처음 접하다보면 '신세계'가 펼쳐진 듯 싶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일제시대의 암울한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1930년대 조선인들은 생동감 넘치게 각 분야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선을 멀리하고 바라보면 조선인들의 활기찬 모습은 사라지고 암울한 이미지만 가득하다. 이런 기현상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허나 분명한 것은 일제의 철저한 억압과 수탈, 그리고 차별은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조선인을 위한 식민통치'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제는 아주 교묘하게 방향을 틀어서 조선인들이 가지게 될 불만을 '다른 곳'으로 풀어내도록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 어리숙한 군중들은 일제가 '허용'한 것들에 취해서 제 몸과 정신이 다 망가지고 생채기가 나는 줄도 모르고 활기 넘쳤고, 결국 진이 다 빠진 뒤에 제 손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허무함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의 교묘한 방법이란 그런 허무감조차 '일제의 탓'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저 못난 것'만 탓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근거불명의 명제를 들이밀면서 일단 불평불만이 많은 조선인(불령선인)들은 때리고 보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일제시대에 강요된 근대화를 겪으며 '자의식'을 키웠다. 이는 일본인들과 명백히 다른 점이다. 일본인들은 '저항'을 할 줄 모른다. 아무리 불평불만이 생겨도 '위에서 억누르면' 곧 잠잠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문화는 '칼(사무라이)의 문화'라면서 명령에 불복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는 경험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한국인들은 극렬한 저항을 한다. 부당한 것에 참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것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짓밟히면 더욱더 일어나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제뜻을 관철하려 든다. 이런 우리 민족의 드센 성정을 총칼로 다스리려 했으니 '무단통치'시기에 결국 사단이 나고 끝내 1919년 3·1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뒤에 일제는 겉으로 '문화통치'를 내세우면서 한편으론 달래고, 다른 편으로는 얼르며 우리 민족을 '이간질'시키려 들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내부의 문제'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으며 독립운동에도 난항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부분열과 갈등도 뚜렷한 '자의식'이 없다면 아예 발생하지도 않는다. 갈등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상'과 '신념'은 굳건해지기 마련인데, 이때 일제를 통하거나 국외유학을 경험하고 돌아온 이들이 전파한 '서양사상'과 '서양문화'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신문물을 수용함에 있어서 한 가지 기준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 좋은 것들을 자유로운 조국에서 아무런 간섭과 차별을 받지 않은 독립된 나라에서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준 말이다. 일제는 앞선 신문물을 조선의 청년들에게 선보이면서 '이것이 압도적인 일본의 문명이다. 그러니 저항하지 말고 누리고 즐겨라. 2등 국민으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이런 의도로 자랑을 했겠지만, '자의식'을 깨우친 조선인들에게 그런 헛소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차라리 조선인 차별을 하지 않고 그들의 말대로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대우하고, 출세의 기회도 똑같이 마련해줬다면 저들의 의도대로 일제에 순응하는 '착한 조선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별이란 차별은 다하고, 수탈할 것도 몽땅 다하고서 굶주려 죽게 만들고서는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았으니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1930년대 '여성문화', '대중문화', '소비문화', '생활문화' '중독문화' 등등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며 눈이 팽팽 돌아가게 만들었지만, 일제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가는 이들이 많을지언정 그렇게 속아서 산 세월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부당했는지는 경험해보면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문화적인 것들조차 조선인은 일본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꾀했으며, 조선인들이 일본인보다 잘나면 잘났지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나 능력에서조차 뒤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자유연애'가 소개되자 '맹목적 연애'가 진짜 연애라면서 연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심취해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인 '정조'를 우위에 놓던 것을 하루 아침에 추락시켜버리고 '연애'가 주는 낭만에 푹 빠져서 불륜조차 당당하게(?) 하며 수많은 대중들이 이를 유행처럼 따라하는 일이 벌어졌단다. 심지어 조강지처가 있는데도 바람 피운 것이 들통나자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 '저승'에서 이루겠다며 내연녀가 투신 자살을 하자 불륜남도 똑같은 자리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것이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였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라디오에 심취해서 라디오 청취를 넘어 '참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커피 '소비'는 마약에 중독된 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사교댄스에 빠져서 '춤바람'을 일으켰다. 거기에 전화, 기차, 자동차, 심지어 기독교라는 종교까지 빠져들고, 마음껏 휘저으며, 결국 '우리식'으로 풀어내고 우리만의 문화로 거듭냈다. 일제시대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현재 전세계에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서양의 것, 일제의 것일지라도 일단 우리 민족의 손과 얼을 거치고 나면 결국 '한국문화'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우리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우리 것을 다시 역수출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열광한다. 낯설지 않은데 무척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만의 흥 문화'가 오롯이 담긴 덕분이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일제시대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흥'으로 최악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 것'으로 재포장해서 다른 나라를 감동하게 만드는 저력이 말이다.
나가는 글 : 딴에는 무척 기묘하다. 이 책이 출간된 2008년에는 이런 감흥으로 이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차별받고 핍박받은 어두운 그늘속을 걷는 것처럼 침울하게, 때론 씁쓸하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2026년이 된 오늘 다시 읽으니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100년 전의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일제의 강요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정말로 만약이지만,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낼 수만 있었더라면, 저들의 제국주의적 야만조차 자중하고 길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은 저들의 힘에 도취되고 한껏 부풀어서 저 잘난 맛에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 '쟁탈전'을 벌였지만, 그 가운데 우뚝 선 나라 하나가 있어서 저들의 앞선 문물을 보여줬음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저들의 것보다 훨씬 더 좋게 만들어내는 나라의 존재 앞에서 어찌 함부로 경거망동했겠냐는 말이다. 더구나 그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저들의 문물을 '재생산'해서 '역수출' 당하는 모습에 기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이 너무 과하다고? 현재의 대한민국의 위상 앞에서 쩔쩔매는 저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라. 현재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 10위권 안에서 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통적인 강대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보면 정말 대단한 위엄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런 강대국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서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자 '가해 당사국'이었던 것에 반해서,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빼앗겨버린 '피해국'이었는데 불과 100년만에 그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지언정 침략을 한 적이 거의 없는 나라인데, 현재는 '군사대국'으로 성장해서 그 어떤 나라도 함부로 건들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 흔한(?) 핵무기가 없는데도 말이다. 재래식 무기만으로 주변국을 넘어 전세계에 압도적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한류열풍을 넘어 '한국문화', '한국제품'은 일단 믿고 본다는 인식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어 버린 현재다. 도대체 이런 신뢰를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준 국가나 문화가 역사상 몇 개나 있었을까? 이게 가장 놀라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