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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구석방
  • 서울대 교수와 함께하는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유성호.박여운
  • 13,500원 (10%750)
  • 2023-01-12
  • : 742

<서울대 교수와 함께하는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유성호 교수님이 들려주는 법의학 이야기> 유성호, 박여운 / 아울북 (2023)

[My Review MMCLXXXVII / 아울북 4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여섯 번째 리뷰는 <서울대 교수와 함께하는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유성호 교수님이 들려주는 법의학 이야기>란..헥헥..'어린이 교양수업' 시리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정보는 '서울대'가 보이고, '교양수업'이란 단어도 보이며, '법의학'이란 명칭도 눈에 띈다. 일단 어린이책 가운데 '서울대'가 추구하는 바는 자명하다. 일단 '학업'에 도움이 되는 책이란 얘기다. 학부모들의 눈이 번쩍 뜨이는 단어다. 하지만 '교양수업'이라는 단어 때문에 망설여진다. 왜냐면 실질적인 '내신성적'이나 '대입수능'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그리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의학'이라는 명칭은 호불호가 갈리는 대목일 것이다. 일단 단언컨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과는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는 좀 다를 것이다. 미드 <CSI 과학수사대>를 즐겨 본 어린 친구라면 관심이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를 종합하면, 이 책은 어린 친구들이 '호기심'에 학부모들에게 졸라서 사달라고 할 책일 가능성이 높고, 학부모는 '서울대'라는 제목을 보고서 마뜩찮은 점이 없지 않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어서 사줄 책일 것이다. 그럼 논술쌤의 관점에서는 어떨까? 아이들에게 여러 갈래의 '학문의 길'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진학상담용책'으로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권할 가능성이 높고, 자녀의 진학상담을 요청받았을 때 '고급정보'를 얻기 위해서 논술쌤이 직접 읽어볼 가능성이 높은 책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온라인 서점에서 '상식/교양' 부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럼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10대를 위한 교양 수업 1 : 법의학> 관점 포인트 : 서울대 유성호 교수님은 SBS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문역할'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서울대 교양강의 가운데 가장 수강하기 힘들다는 인기 강의인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교양 강의를 맡고 있는 교수님으로도 유명하다. 강의 제목에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 사회가 '죽음'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는 분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자살률'이 높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죽음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면 '삶과 죽음'은 따로 생각할 수 없을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도 '태어나는 것은 내맘대로 할 수 없지만 죽는 것은 최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란 전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죽음'을 검색하는 연령이 60대 이상이 아닌 20~30대 젊은 층에게 더 많이 검색한다는 사실로 입증 되었단다. 그런 의미에서 '법의학'은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의사라는 점에서 점점 인지도를 넓히고 있는 학문이란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에 '법의학자'는 그리 많지 않단다. 법의학과를 물려줄(?) 제자가 없어서 난감한 교수들도 있을 정도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 때문에 '법의학 전공'을 선택한 분이 바로 서울대 유성호 교수님이라고 한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서 '자신이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일종의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라도 현재에는 꽤 만족한 삶을 살고 있으니 결코 후회는 없다고 한다. 이런 유성호 교수님의 노력(?) 덕분에 현재는 국내 유명 대학에 '법의학과'가 개설되어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먼저, 법의학을 전공하려면 '의과대학'에 진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의 '의대생'과 같이 6년을 공부하고 졸업한 뒤, 전공 학과를 정하고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의 실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임상 의사'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최종적으로 법의학자로 진로를 정한다면 '레지던트 과정'에서 '병리학'을 공부하고, 병리학 전문의가 된 뒤, 법의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 된다. 우리 나라에는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건국대, 연세대, 경북대 등 6곳에 '법의학 대학원'이 있고, 이 대학원에서 '부검'과 같은 실무 경험을 쌓은 뒤에 법의학자가 될 수 있단다. 치과 의사는 '법치의학자'가 될 수 있고 말이다. 법의학자와 다른 점은 '법치의학자'는 병원에서 치과 의사로 일을 하면서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란다.

'법의관'도 법의학자와 하는 일은 비슷하다. 우리 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일하는 법의학자를 법의관이라 부르는데, 법의학자는 연구와 강의를 더 많이 하고, 법의관은 국과수에서 수사에 필요한 부검을 더 많이 하는 차이점이 있다. 의대나 의학전문대학원을 가지 않고도 '법의학' 관련 일을 할 수도 있다. '검시조사관'이나 '법의간호사'가 있는데, 검시조사관은 '의료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뒤 '경찰청', '국방부', 그리고 '국과수'에서 과학 수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단다. '법의간호사'는 '간호사 면허' 취득한 뒤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얻어야 한다. 그 뒤에 '법의간호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면 법의간호사가 될 수 있단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 센터'에서 일하거나 '경찰'이나 '국과수'의 과학 수사 요원, 검시조사관으로 활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법의학자는 미국 드라마 <CSI>에서처럼 '과학수사대'의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 걸까? 아쉽게도 우리 나라 법의학자는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수사관'처럼 활약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드라마 <싸인>에서처럼 법정에서 필요한 의학 증거를 밝혀내서 사건의 결과를 뒤집는 결정적 한 방을 통쾌하게 날리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단다. 물론 법정에서 살인사건의 범죄자가 째려보는 와중에 '증언'을 하는 살풍경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죽은 시체를 '부검'하는 일을 직접해야 하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법의학자가 되면 좋은 점도 있을까? 유성호 교수님 말씀으로는 "법의학자는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의사입니다"라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사망한 사람은 죽은 뒤에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몸 속에 '자신이 죽은 원인(死因)'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학자는 '부검'을 통해서 사인을 밝혀내어 이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과 까닭까지 모두 밝혀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1987년 서울대 박종철 군이 군사독재의 추악한 면모를 낱낱이 밝혀낼 수 있었던 것도 모진 고문으로 죽임을 당한 박종철 군의 몸을 '부검'한 덕분이었단다. 당시 경찰은 박종철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사인을 밝혔지만, 당시 중앙대 병원 오연상 의사에게 사망 진단서를 발급하라고 강요 했음에도, 오연상은 침착하게 자신이 직접 죽은 걸 목격하거나 진료기록도 없으니 쓸 수 없다고 말했단다. 그러자 경찰은 '사체 검안서'라도 작성하라고 하자 오연상 의사는 자신이 본대로 '사인은 익사 추정, 사망 종류는 불상(알 수 없음)'이라고 기록하며 부검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단다. 그래서 박종철의 시신은 국과수 황적준 법의관에게 인계되었는데, 경찰이 빨리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을 화장하려 '사인을 심장 쇼크사'로 발표하라고 독촉했음에도 침착하게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고 부검 감정서에 기록했기 때문에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세상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오연수 의사와 황적준 법의관이 '죽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폭력적인 경찰의 권력에 움츠러들어 '진실 은폐'를 했더라면 6월 항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폭력 경찰들이 얼마나 지능적으로 고문을 했는지 겉으로는 상처가 거의 없었지만 부검을 하고 몸속을 들여다보자 '가슴과 목에 선 모양으로 피멍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가는 글 : 우리는 '죽음'과 관련해서 쉬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간다. 죽음은 긍정적인 면은 없고 부정적 이미지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당히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른 바 '안락사' 같이 고통스런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고통 없이 편안한 죽음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사는 것을 '웰빙'이라 한다면 잘 죽는 것은 '웰 다잉'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 드라마 같은 데에서는 '죽는 장면'을 연출할 때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서 고개를 떨구거나 손을 늘어뜨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며, 병원에서 심장박동이 멈추는 삐~하는 소리와 함께 가족들이 다같이 오열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실제 죽음'과 상당한 차이가 있단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의사와 의료기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비명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사투'를 벌이다 고통에 겨워 겨우 숨이 넘어가는 일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을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은 죽을 때 '잠자듯 고통없이 편하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좀 더 너그럽고 관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자살'을 권장하거나 방조하자는 이야기가 아님을 밝혀둔다. 죽음에 대해서 인지하자는 것은 '죽음'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잘 사는 삶'을 조명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달린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잘 살고 잘 죽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웰빙과 웰다잉은 '반대말'이 아니라 '같은말'일 것이다. 죽음에 대해 관심을 높이면 그만큼 '삶의 질'도 더 높일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차원에서 '법의학자'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더 잘 들려주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적어도 우리는 끔찍한 사고로 일어난 범죄를 단속할 수도 있고,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는 법의학자가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공헌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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